깎아지른 듯 바위 절벽 강가돌 틈 사이로 피어오르는
경칩의 할미꽃과 함께 시작되는 동강의 봄
빠른 속도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몇 장 담다 보니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나갈 때 위험할 것 같은데…….
그냥 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또 오기 힘든데…….
왼손에는 랜턴을, 오른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깜깜해지기 시작하는 동강 주변 바위들을 기어 다니다시피 넘어 다니며 랜턴을 비추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셔터를 누릅니다!
두 발로 서있기도 힘든 곳에선 돌들을 바닥에 괴어 랜턴 빛을 고정시켜 놓고 한 손은 바위나 주변 나뭇가지를 붙잡아 중심을 잡고 한 손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보랏빛 유혹에 빠져 칠흑 같은 어둠이 온몸을 둘러싸고 나서야 무서움에 서둘러 빠져나옵니다.
팔꿈치도 까지고 아끼던 신발도 성한 구석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 부딪혔는지 소리도 못 들었는데 필터도 깨져있습니다.
다음 날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 홍원기 / hwk94.blog.me.
이렇게 많은 사진가들을 유혹하는 동강할미꽃.
정선군과 영월군 동강 일대 석회암 절벽에 서식하는 한국 고유의 다년초 식물로 할미꽃과 달리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다. 학명(Pulsatilla tongkangensis Y.N. Lee et T.C. Lee)에 ‘동강’이라는 지명을 새겨 넣은 세계에서 유일한 고유종이다.
김정명 씨가 동강을 거슬러 오르며 생태사진을 찍다가 이 꽃을 발견해 처음 세상에 알렸고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 박사가 동강 지역에서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확인, 지역명인 ‘동강’을 붙여 세계 학계에 공식 발표했다. 이후 귤암리 주민들은 ‘동강할미꽃 보존 연구회’를 창립해 보존에 힘쓰고 있다. 정선군에서는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함을 잃지 않는 정선 사람들의 굳은 의지와 미래를 향한 열정을 상징한다고 해서 군화(群花)로 지정했다.
한때 무분별한 관광객들의 채취와 사진작가들의 훼손, 초대형 태풍 루사와 매미로 개체 수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동강할미꽃 보존회원들과 주민들이 씨를 받아 모종을 기르고 공급하는 일을 십수 년간 해오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또 지난 2007년부터 매년 3월 마지막 주에 ‘동강할미꽃 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바새 앞 ‘뼝창’이라 부르는 깎아지른 듯 바위 절벽 강가 돌 틈 사이에 피어오른 할미꽃 군락이 있는 동강 제장마을을 대한민국의 시민유산 2호로 선정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매년 15명 남짓한 사람들만 모아 문화유산 투어를 갖고 있다. 영월 댐 건설 백지화 운동을 통해 지켜낸 동강의 아름다운 자연을 잊지 않고 되새기려는 노력의 하나다.
벌레들이 놀라 겨울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驚蟄)과 함께 피어오르는 동강할미꽃.
석회암 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싹이 돋아 첫 꽃이 필 때 한 송이, 이듬해에 두 송이가 피며 해가 거듭될수록 꽃송이가 늘어난다고 하는 여러해살이 식물. 보송보송한 솜털이 이른 새벽이슬을 받아 머금고 반짝이는 자태가 시선을 모으는 이유는, 어쩌면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내일을 기약하고자, 스스로 내면의 의지를 세우는 모습과 유사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홍빛에 스며든 청보라색과 붉은 자주색, 흰색.
한 뿌리에서 나고 자라는 데 제각각의 색을 피워내는 꽃술도 어쩌면 한 몸에서 태어나도 나름대로의 성향을 다 달리 타고 나는 아이들 같을지도.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동강 할미꽃과 마주하는 것으로 봄을 시작해도 좋겠다.
TIP
●문의 www.idonggang.com
정선 동강할미꽃 마을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033-563-3365
정선군생태체험학습장(동강생태체험전시관) 정선군 정선읍 동강로 2908, 033-560-3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