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꽃
마을 주민들이 준비해 초청하는 선물 같은
고한의 Village Hotel 18st
2020.5.19.
팀원으로 합류 한 첫 취재 일정으로 잡힌, 정선 사북 고한으로 향하던 그날.
축하 인사라도 건네려는 듯, 곧 다가올 여름을 알려주려는 듯, 때늦은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18번가.
다소 이국적인 이름이 붙여진 이 거리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달리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살고 싶은 마을, 찾고 싶은 마을을 만들고 싶은, 이 동네 주민들의 오랜 기다림의 발화점이 될 마을호텔의 개관식 때문이었다.
골목길 450m, 그리고 마을호텔 18번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마을호텔’이라는 이름은 이 짧은 거리에 자리 잡은 가가호호들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일종의 아주 작은 리조트 단지랄까.
개관식 당일, 새롭게 단장한 아기자기한 골목길 풍경 사이로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는 배너 하나가 있었다.
18번가 스토리.
2017.10 하늘기획 이전
2018.1 이음플랫폼 개소(지원기관: 강원도 공간재생사업), 고한18번가 마을 만들기 위원회 구성
3~4. 18번가 경관 디자인 계획 수립(지원 기관: 고한읍), 마을 만들기 선포식
6~7. 정씨 할머니 댁 집 수리(지원 기관: 3.3재단) 지역아카데미 개최(지원기관: 공추위, 3.3재단)
9. 야생화 마을 경관 조성 사업 실시(노후주택 21채 외관 리모델링)
10 18번가 부녀회 공예 수업 실시(지원 기관: 3.3재단, 강원도)
12 마을 호텔18번가 소규모 뉴딜 선정(지원기관: 국토부, 강원도, 정선군)
2019.1. 마을회관 리모델링, 들꽃사진관 개소(지원 기관: 고한 로터리 클럽, 정선군 도시재생 지원센터)
3. 18번가 짜장면 데이 이벤트 실시(매월 1회)
5.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 개최(지원 기관: 정선군, 고한읍)
8~9. 골목 정원 조성(지원기관: 고한읍, 도시재생센터, 전춘화님) 마을호텔 아카데미(6개 강좌, 견학)
10. LED 야생화 공예 아카데미(지원기관: 고한읍)
12. 마을호텔 초원점 리모델링 완료
2020.1. 공예카페 수작 개소(지원기관: 강원도 공간재생사업)
4.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설립
5. 마을호텔18번가 초원점 개장
참 숨 가쁘게 달렸구나, 지난 3년간
그동안 총지배인의 역할을 해오면서 개관 행사를 주관했던 하늘기획 김진용 대표는 “관광객은 늘어났지만 청년은 계속 사라지고 빈집이 급속히 늘어나서 점차 쇠퇴하는 걸 지켜보면서 고심할 때 강경환 영화감독이 마을호텔을 제안했다”며 “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도시재생 전문가들을 만나서 멘토들의 따듯한 조언을 구하고, 각종 기관들의 지원을 받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의 헌신이 더해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감사를 표했다.
어쩌면 대한민국 최초일지 모를 이 마을호텔의 탄생은 사실 정선 사북 고한 주민들의 일상을 지배했던 *폐특법 폐지 시한이 다가온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시작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문을 열게 된 마을호텔 1호 초원점. 여성으로서 마을 최초인 유영자 이장이 객실 관리 지배인을 맡았다.
정작 객실이 되어줄 건물을 찾지 못해 그 부분만 진척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자 유 이장이 결단을 내려 한때 한우 맛집으로알려졌던 초원식당의 주인이었던 그가 5년간 무상사용으로 통 크게 내어 놓았던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 구조 변경을 거쳐 마침내 첫 숙박시설로 재탄생 했다. 사실상 이날을 가능하게 한 숨은 주역이다.
정문을 열고 나오면 한눈에 다 보이는 이발소와 세탁소는 호텔의 편의시설이고 중국음식점, 해물 음식점, 초밥 전문점이 호텔 레스토랑이다.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한 LED 야생화 만들기와 다육 아트 체험 프로그램은 카페 수작이 진행을 하는 데 조식도 제공한다. ‘이음플랫폼 co-work 스페이스’는 예약, 서비스, 시설 안내 담당으로 호텔 프런트 역할이다. 광고기획사 ‘하늘기획’은 비즈니스센터. 숙박 객들에게 각종 사무기기를 무료 제공 중이다. 주민들의 회의 장소이기도 한 마을회관 2층의 널찍한 회의실은 단체 손님들의 워크숍을 위한 컨벤션 룸이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고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지역 투어 상품을 진행하는 스튜디오'들꽃 사진관(본보 111호 소개)'도 있다.
이미 영업 중인 마을 상가들을 연결해 하나의 호텔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호텔 플랫폼이다.
개별 상가의 주인들이 협동조합원들이자 운영의 주체이고 호텔 부대시설이자 편의시설의 점주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사업의 조기 안착과 추가 객실 조성이다. 또 앞으로 만항재, 정암사, 바로 코앞에 자리 잡은 하이원 리조트와 연계한 여행상품을 운영하려고 한단다. 이날 개관식에 이곳의 대표들이 참석해 한마음으로 축하를 건넨 이유일 터이다.
고진감래.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는 마을이다.
텅 빈 골목, 흉가 같은 빈집들이 어둠에 묻혀, 잊히기 직전까지 갔었던 동네 골목길.
지난 2년간 70대부터 20대까지 아우른 주민 대표단, 전문위원, 자문위원 등 총 26명으로 구성된 ‘마을 만들기 위원회’를 꾸려 21채의 낡은 건물들을 직접 정비했다. 각 상점들의 고유색을 호텔 서비스로 접목시키기 위해 빈집 본연의 기능을 최대한 살려 재생 키고자 고민을 거듭했고 이제 그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야생화, 밤에는 LED 꽃이 반겨주는 빛의 정원'
탄광 이전의 화전민 마을에서부터 존재했다는 국일 반점은 4대가 이어오는 중국집. 종일 일하느라 마을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주인 부부는 호텔 리모델링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쉬는 휴일을 반납해가며 무료 짜장면을 대접했다. 이제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2,500원 반값 ‘짜장면 데이’를 열고 있다는 데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다.
그러는 동안 벽화가 그려진 집들과 대문 앞 꽃을 심은 집들도 점차 늘어났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만든 LED 야생화 공예 작품들도 하나, 둘, 만들어 밤거리에 불을 밝혔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발길 끊긴 고한의 밤을 꽃빛으로 환하게 밝히고 싶었단다. ‘인생 사진 포토 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개관 한지 한 달 반. 초원점의 예약률은 100%. 만실이다.
마법이라도 부린 듯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젊은 청년 사업가들이 이끌어낸 변화는 마을 변화의 변곡점이 되고 있다.
요란한 관광지가 아니라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는 이들이 대상이 되는 커뮤니티 호텔.
지역의 매력을 발굴해서 관광객과 이어주고, 지역민과 관광객 간의 직접적인 교류와 소통이 이뤄져서, 종국에는 지역 전체를 브랜딩 하여 경제 상승을 유도하는 역할.
앞으로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이 해나갈 일 들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호텔에 투숙하게 되면 객실 열쇠와 더불어 주변 상가를 10% 할인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카드를 주고, 국일 반점은 자장면 데이의 수익금을 이미 모두 마을 기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숙박 객들은 마을 18번가 호텔에 묵는 것만으로 이미 이 마을의 후원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어쩌면 관광 *노마드가 아닐까 싶었다. 마을 전체가 당신의 호텔이 되는 곳.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꽃’이 되고픈 고한2길 18번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원고를 정리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따라 2호점, 3호점이 생기다 보면 이 골목이 450km가 될 수도 있겠구나!’
*폐특법 : 폐광 지역 개발지원에 따른 특별법으로 낙후된 폐광 지역의 경제를 진흥하기 위하여 폐광 지역 진흥 지구를 지정·개발하고 해당 지역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법(네이버 국어사전)
*노마드(nomade) :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을 이르는 말(네이버 베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