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頭
타陀
부슬부슬 내리는 비.
어차피 나선 길. 댓재 휴게소에서 배낭끈을 조여 매고 출발 준비를 시작합니다.
해발 900여 미터. *두타산까지는 400여 미터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하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두타를 거쳐 청옥산 정상까지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백두대간 24구간 중 열여덟 번째인 이 구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요.
청옥산까지는 9km.
긴 오르막 구간이 제법 많아 개인마다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약 5시간 정도면 되는 길입니다.
頭陀.두타.
알수록 참 예쁘고 심오한 말입니다. 불교 용어로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합니다. 국내에 두타로 불리는 명칭이 유독 많은 걸 보면 다들 알고 있지 싶습니다.
두타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로면과 하장면 그리고 동해시 무릉계곡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353m로 청옥산, 쉰움산과 이어져 있고 바람의 산이라 할 만큼 바람이 모질게 부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용소와 주목군락, 철쭉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도 발길이 묶었던 이 명산은 정상을 오르는 방법도 여럿이 있습니다.
수행에 나선 이들이 정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 절기마다 절경을 보여주는 무릉계곡에서 출발하거나, 쉰움산 천은사와 쉰움산을 지나는 코스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듬직한 백두대간에 속한 구간이 이 산행 길이지요. 무릉계곡과 같은 화려함은 없으나 댓재에서 고도를 치고 올라갈 때 주는 만족감이 남달라 산악인들에게도 제법 유명합니다.
일명 대간 꾼(백두대간 종주 자들을 이르는 말)들에게만 나름 핫플레이스인 장소도 있습니다.
바로 댓재 휴게소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안식처로 여진 이곳을 지난 20여 년간 변함없이 지켜온 노 식(69세)사장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많이 사람들이 여기서 쉬고 간다”고 강조합니다. ‘두타산’을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산세 풍광 사진만큼이나 인심 좋은 민박집으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휴게소를 지나 산행 길로 접어들면 거대한 낙엽송이 우리를 반깁니다.
완만한 경사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경사는 서서히 급해지지요. 악명 높은 일명 깔딱 고개의 등장입니다.
얼굴에는 거미줄이 달라붙고,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야영할 배낭의 무게에 어깨는 점점 더 무너져 내립니다.
비에 젖은 옷과 배낭은 무게를 더하고 달라붙은 바지는 순식간에 방해꾼으로 등장합니다.
부처가 누운 모습이라는 능선의 형상에서 붙여졌다고 하는 두타의 능선을 그렇게 타고 정상을 향해 갑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온종일 흘러내렸던 땀은 그동안의 과식, 과욕, 과음, 모든 과했던 것들을 비워내는 과정인 듯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운하다!’
운이 좋게도 비가 그친 정상에서 운해를 마주했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운해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장관을 보여줍니다.
발걸음을 재촉해 청옥산으로 향합니다.
이미 늦은 오후라 헤드 랜턴을 켜고 산길에 집중해서 가야 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힘겹게 도착한 청옥산.
함께 모여 허기진 배를 달래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노라면 조금 전 힘들었던 시간들은 싹 잊어버립니다.
불빛도 없는 어두운 이곳은 적막한 바람 소리만 더욱더 크게 들리지만 둘러앉아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힘들게 걸어온 시간들을 달래봅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 마주한 일출.
다른 모든 것들이 잊히는 순간입니다.
일상의 고민도, 마음을 괴롭히던 미움도…….
다음 산행까지 매일을 버티어 낼 수 있는 힘을 주는가 봅니다.
TIP
●삼척시 하장면 두타로. 하장면사무소 570-3604(지역번호 033)
●교통 : 삼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장 방향 버스를 타면 댓재에 내릴 수 있다.
하루 세 번(07:30, 13:30, 16:30), 40분 정도 걸린다. 이 버스가 하장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삼척으로 간다.
동해 개인택시(532-6000), 동해 콜택시(531-3000).
●맛집 : 묵호 물회(534-0478)는 물회와 회덮밥이 별미. 매콤한 양념에 부드러운 뼈가 있는 회를 버무려 살얼음으로 마무리했다.
양념 맛이 강해 호불호가 나뉠 수 있으나 가성비가 좋아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냉면권가(533-9911)는 3대째 이어온 70년 전통의 냉면 맛집. 개인적으로는 물냉면은 평양, 비빔냉면은 함흥을 추천한다. 통닭도 담백해서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