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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122호
Culture
색실 누비, 강릉의 자수
VIEW.11007
조상원_강원일보 기자
정리 조은노
사진 이제욱, 박상운, 전영민


빨간 천 한 가운뎃점을 중심으로 오방색의 색실을 수놓아 온 사방으로 뻗어 나간 문양이 새겨진 강릉 수 보자기(이하 강릉 수보)를 처음 접했던 것은 2천년대 초반이었다.


한국의 전통색인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이 가진 특유의 화려한 색감이 현대적인 문양과 결합해 최고의 규방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화려한 깃발을 새겨놓은 줄 알았는데 나무를 형상화했고, 그 끝에는 새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눈을 부릅뜨고 숨은그림찾기처럼 꼼꼼히 살폈다. 정말 네 귀퉁이, 사방에 새가 있었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해 이토록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다니...’

뿐만 아니라 자수 문양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참 여러 차례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다.



수보(繡褓)는 자수(刺繡)를 놓은 보자기로 강릉 지방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민보를 말하며 강릉 수보(江陵繡褓)라고도 한다.
‘예향 강릉’에 참 어울린다 싶은 이 강릉 자수가 최근 다시 지역에서 회자하고 있다. ‘강릉 색실 누비’라는 오롯이 강릉만이 가진 고유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강릉 자수’ 서포터스. 이들 30여 명은 지난 6월 28일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에서 첫 모임을 하고, 강릉 수보에 나타난 새와 전통문양을 섞어 도안을 만들고, 수를 놓아 작품을 완성했다. 강릉문화 도시지원센터가 강릉문화 도시 조성을 위한 예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산제 사업인 ‘작당 모의’ 공모 사업의 하나가 이렇게 결실을 보았다.

사실 강릉 수보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려는 과정에서 널리 소개되었다.
평창올림픽 예술 포스터 당선작으로 강릉 색실 누비의 문양과 바느질 패턴을 그래픽으로 활용한 겨울스티치(현재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에서 전시)가 선정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 우리나라 전통 규방 공예품으로 공개되었던 것. 이 포스터는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300여 년 전 제작된 ‘색실 누비 쌈지’를 현대적인 디자인과 색으로 재해석했다.



학계에 따르면 강릉 수보 문양 가운데 가장 빈번히 사용된 것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 나무 문양이다. 이는 강릉 지방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민속신앙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강릉단오제가 열리는 시기에 단오 굿을 하는 동안 외출을 허락받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도안화한 것으로 추측되며, 일반적인 나무 형태와는 달리 나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도안이 이뤄져 있는 것이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강릉의 옛 여인들이 남편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이라는 색실 누비 쌈지와 나무에 잎이 퍼지듯 사방으로 펼쳐져 강릉 수보의 전형적인 문양으로 수놓여진 강릉 수 보자기.
이 강릉 자수는 예상외로 강릉 사람들의 일상에 깊게 녹아있다.

전통 자수로 생업을 이어가거나 공예방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고 전통 자수 작품을 관람하고 관련 수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들도 꽤 여럿 있다.

강릉 수보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동양자수박물관에는 흉배·후수·수병풍 등 선시대 궁중 자수, 버선본집·수저집·수 보자기 등 생활용 자수, 회화용 액자수, 근현대 자수도 전시돼 있다. 오죽헌 기념품 판매장과 강릉전통기념품 판매장은 다양한 생활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강원도무형문화재 제30호 김순덕 전통 자수장이 운영하는 예림원도 있다.



“지난 40여 년간 강릉 수보의 역사를 이어오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왔다”는 김 명인은 자수의 기본기법, 강릉수보 제작기법, 자수천의 프레임 접착기법 그리고 여의주문 이어붙이기 기법 등 자수 제작기법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동호회원들을 이끌며,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수해왔다. 세월이 흐른 만큼 종류도 참 다양하다. 신사임당 초충도 병풍을 비롯해 자수함, 오복 주머니 등 전통 자수의 기법과 문양을 되살려 혼례 용품, 선물용품, 가구류 등 다양한 전통 자수 작품을 출시하며 칠순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매년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강릉 자수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상품도 출시되고 있다.
박인숙 임영보자기 연구회장은 지난 2017년 제20회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강릉 수 보자기 안경 닦이’로 대상을 수상,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선물용으로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정확히 계획된 디자인, 정교한 조형미로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강릉 규방 문화 정수를 보여주고,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강릉 자수.

최근 2년간 명품 스카프를 핸드백에 리본을 매어 연출하는 패션 아이템이 유행하면서 자기만의 스카프로 핸드백에 맵시를 내는 스타일이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라오기도 했다. 강릉 자수보가 그렇게 대중적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문의
● 동양자수박물관 www.orientalembroidery.org ☎ 033-644-0600
● 예림원  ☎ 033-648-9165  강릉시 죽헌길 157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