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현우_동해시 동호지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정리 조은노_강원도청 대변인실
사진 박준욱_본지 객원 작가
묵호 등대와 광활한 바다를 만나는 하늘 산책로
동해 너울 파도를 발아래
스카이밸리와 오션 프런트

그리움 가득한 묵호의 바다
어느 날 문득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계절이 속삭이는 숲길을 걸을 때보다, 물안개 피는 호숫가를 서성거리는 것보다, 어쩌면 더 아득하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사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일은 무수한 감정으로 소란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는 벅차오름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필자에게도, 묵호에 터전을 잡은 이들에게도 바다가 그런 그리움으로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한때 잘나가던 도시의 화려함 한편에는 묵묵히 바다에 삶을 위탁하고 순응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다.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표현한 것처럼 밤마다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한 집어등이 도시를 밝혔고 그 불빛을 바라보며 안녕을 고했던 사람들은 그리움이 흘러 넘쳤다. 어느덧 찬란했던 도시의 역사는 뒤안길로 물러서고 오롯이 남은 등대만이 그날의 증언자로 남았다.

고대했던 바다를 만나러 가는 길
묵호의 바다를 만끽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거닐고 사색하며 서두르지 않고 다가서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정히 그 첫걸음을 묵호역에서 시작하길 바란다. KTX 열차가 정차하는 묵호역은 묵호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흥청대던 어느 날처럼 빨갛고 커다란 고무 통 한가득 생선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도 사라지고 광장 앞을 내달리던 리어카들도 없지만 사이좋게 빽빽이 붙어 있는 나이 든 건물들을 바라보면 그날을 어림짐작하게 된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했던 발한 삼거리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도시의 얼굴이다. 옛 강원은행 건물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중앙시장의 장칼국수 등 묵호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시장을 지나 걷다 보면 서로의 경계를 내려놓은 빼곡한 집들과 좁은 골목들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런 좁은 골목길에선 항상 묵호등대가 보인다. 여기서부턴 조금 더 묵호 같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도 이곳을 ‘안묵호’라 부른다. 아직 내밀한 묵호의 바다는 고뱅이 시큰거리며 오르던 논골에 올라서야 비로소 그 얼굴을 드러내고 마침내 그리움 가득한 바다로 채워진다.



하늘에 풍덩, 바다를 날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그간 인내하고 수고로웠던 걸음을 위로한다. 이내 눈에 들어오는 또 하나의 풍경은 바로 묵호의 하늘이다. 바다와 서로 맞닿아 그 경계가 뚜렷하지만 어쩐지 계속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푸름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 거대한 푸름을 응시한 채 묵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2010년부터 진행되어 온 논골의 골목은 여전히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으며 헤매는 길목마다 채워진 아름다운 벽화는 묵호의 옛일들로 인도하고 있다. 누울 곳만 있으면 집을 지었다던 논골의 집들은 고되고 처연했던 묵호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듯 지붕 없는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여기에 또 다른 여행의 목적지가 생겼다. 봄날, 바다를 탐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2018년부터 꼬박 3년이 걸려 조성한 이곳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푸른빛들이 보여 ‘도깨비불’이라 여긴 사람들에게 도째비골로 불렸다는 구전을 살려 이름을 붙였다.
높이 30m. 바다를 향해 뻗은 보행로 180m.
묵호등대에서 바라볼 때만 해도 그 거대한 구조물이 ‘혹여 바다의 풍광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마을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하늘 산책로에 들어서서 동쪽을 바라본 순간, 그런 걱정이 무색해졌다. 마침 흐린 날씨 탓에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았고 마치 하나의 존재가 된 듯, 그 푸름이 주변을 압도했다.
산책로 중앙으로 다가서자 하늘자전거와 슬라이드 체험시설이 보였다. 하늘 전망대(스카이 워크)만으로 아쉽다 싶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와이어에 매달린 하늘 자전거(스카이 사이클)를 타고 공중을 달리거나 자이언트 슬라이드를 타고 입구까지 내려오면 된다.
동심 그대로 달리고 미끄러져 마치 바다와 하늘에 풍덩-하고 빠질 듯!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햇볕 쨍하는 날에는 그 맑음 그대로, 품 넓은 동해를 보여주리라.
그 무렵, 할 일 다 한 태양이 느긋하게 넘어가 잠시 바다를 잊게 했다.
전망대에서 또 다른 볼거리로 눈에 들어온 오션 프런트.
해안도로 방향으로 내려오면 눈짓으로 인사했던 파도와 마주치게 되는데, 도깨비방망이 이미지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일종의 해상 보도 교량으로 그야말로 바다까지 뻗어있다. 길이85m, 높이는 5~7m.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바다 위. 어쩌면 파도가 높은 날에는 바다 위를 거닐 듯, 더 유연하게 넘실거리는 파도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바다를 보고, 걷고, 빠지고 싶어 하는 걸까?’
바다를 바라보니 물음 또한 어떤 그리움일 것만 같았다.

다시 빛나는 밤
밤바다를 수놓았던 불빛들은 이제 새로운 빛으로 옮겨져 다시 묵호를 밝히고 있다. 산제골과 논골을 비추는 가로등은 마치 촛불을 켜놓은 듯 일렁인다. 운이 좋은 날, 월소 택지에서 바라본 달빛은 검은 바다를 휘저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도째비골의 형형색색 조명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조용하고 어둑한 길목마다 저마다의 불빛들이 도시를 밝힌다. 뜨겁고 치열했던 대낮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호젓한 그리움이 위로를 얻을 무렵 묵호의 밤바다는 더욱더 짙어진다.





문의
●동해시청 미래전략과 전략사업팀 ☎ 033-530-2042
●도째비골 스카이 밸리·오션 프런트 개장 예정일 - 5월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