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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
126호
Travel
트레일 러너의 웨딩 스폿, 설악산 대청봉
VIEW.2387
장보영_<아무튼, 산> 저자이며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작가
사진 주민욱

 


트레일 러너들이 찾은 웨딩 스폿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휘날린 순백의 면사포


   


레저 스포츠나 산악 전문인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지만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이라는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강원도 청년들이 있습니다. 트레일 러닝은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마라톤과 달리 말 그대로 산길, 둘레길, 해안, 강변에서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리는 산악 종목의 아웃도어 스포츠입니다. 강원도 출신의 트레일 러너들이 설악산 대청봉에서 웨딩 포토를 촬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본지 게재를 요청했습니다. 원주 출신의 김지섭 트레일 러너는 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소속으로 원주 치악산이 주요 훈련장소입니다.

 그는 2017년 VIETNAM MOUNTAIN MARATHON 42km, 2019년 THE NORTHFACE 100K KOREA 50km와 HONGKONG LANTAU50 54km, SEOUL ULTRA TRAIL RACE 100K 50km 대회 우승 선수입니다. 인제 태생인 장보영 트레일 러너는 2017 VIETNAM MOUNTAIN MARATHON 42km 우승, 2017 Inov-8 CUP JAPAN 45km 4위, 2018 THE NORTHFACE 100K CHANBAISHAN 50km 5위, 2019 THE NORTHFACE 100K TAIWAN 50km 5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설악산에서 다시 없는 풍광을 보여주는 이들의 이색 기록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註




‘내 인생은 과연 내 것일까?’ 이 질문에 우선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인도와 네팔 같이 가고 싶은 나라를 여행했고, 좋아하는 ‘산’도 원 없이 다녔고, 지난해에는 산에 다닌 이야기를 정리해 책도 냈다. 그리고 인생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다.
트레일 러너인 ‘김지섭’과 처음 만난 건 산악 잡지 기자로 일하던 2014년. 그가 이탈리아 북부 산군 330km를 달리는 트레일 러닝 대회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하면서 인터뷰할 요량으로 만났는데 둘 다 강원도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우리가 산에서 결혼할 수 있을까
5년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두고 하고 싶었던 결혼식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수는 없더라도 웨딩 아치 정도는 세우고 싶었다. 그랬지, 내버킷리스트에 ‘산에서 결혼하기’가 있었다는 것을 오래 잊고 살았다.
예식장 계약을 보류했다. 부랴부랴 ‘산에서 결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봤다. 우선 산 아래 카페나 교회를 대여해 식을 올리는 야외 웨딩을 알아봤다. 그런데 비용이 너무 비쌌다. 그건 세상이 판을 짠 또 다른 좋은 것, 예쁜 것일 뿐이었다.

‘야외 웨딩이라니, 스몰 웨딩이라니 당최 무슨 소리냐’
내 인생은 정령 나의 것인가. 내 결혼은 나의 것인가. 내 결혼은 누가 하는가.

부모님의 반대와 친구들, 직장 동료들, 이런저런 인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산 아래에서의 결혼도 이렇게 신경 쓸 것이 많은데 하물며 산 위에서의 결혼이라니.

아찔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뿐인 정상의 순간
산에서 웨딩 사진을 찍기로 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산에서 결혼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으니 식과는 별개로 아쉬운 대로 산에서 웨딩 사진이라도 찍기로 한 것이었다. 산에서의 셀프 웨딩 촬영을 위해 먼저 중고 물건 거래 사이트인 당근마켓에서 화관, 면사포, 부케, 나비넥타이를 샀다. 그리고 무엇을 입을지 논의했다. 민소매 기능성 티셔츠와 반바지로 구성된 ‘트레일 러닝 복’을 입기로 했다.

 

이어 ‘어느 산’에서 찍을지 궁리했다. 그가 훈련하는 원주 ‘치악산’이 유력한 후보에 있었지만, 우리는 고민 끝에 ‘설악산’에 오르기로 했다.
해발 1,708m의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자 강원도의 최고봉. 우리에게 설악산은 치악산 이상으로 특별한 산이었다. 토왕성폭포를 보러 갔었고, 오색 산악 영화제에 함께 갔으며, 방송 촬영을 위해서 새벽녘 오색에서 대청까지 같이 캠코더를 들고 오르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룡능선을 함께 종주했던 2015년 여름을 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연인이 아닌, 한창 각자의 산에 빠져 있던 시기였지만 그 시절의 순수했던 열정과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만들어줬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땀 흘려 오른 끝에 소청대피소에서 끓여 먹은 라면은 얼마나 맛있던지!

장소를 정했으니 ‘촬영 감독’을 섭외해야 했다.
산악 잡지를 만들던 6년 동안 전국의 산을 함께 취재했던 직장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주민욱 작가라면 트레일 러너인 우리를 가장 멋있게 찍어줄 것 같았다.
두말없이 기꺼이 제안을 받아준 그와 달뜬 마음으로 드디어 오색으로 향했다.
오색을 통해 대청에 오른 뒤 600m 남짓 떨어진 중청 대피소에서 웨딩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중청과 대청을 오르내리며 촬영하기로 했다. 거칠고 험난한 민낯이 보란 듯이 드러난 산길 위에서 힘에 겨워 몇 번을 멈춰서야 했지만, 초록이 무성한 여름의 숲 터널에서 숨 쉴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가 지나 도착한 정상에서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만큼의 세찬 강풍이 불었다. 사방의 골짜기에서 귀신 우는 듯, 거센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할 수 있을까?’
대피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내내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던 패기는 설악산 강풍 앞에서 보기 좋게 쓰러졌다. 게다가 때는 오후 3시, 대다수의 등산객이 하산하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산에는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주 작가가 김밥을 입안에 욱여넣고 바람막이 재킷의 지퍼를 턱까지 닫으며 외쳤다.



“좀 힘들더라도 우리 한 번 제대로 찍어보자! 후회 없이!” 순간, 거짓말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여전히, 내 인생은 나의 것
아무도 없는 평일 늦은 오후의 중청과 대청을 오르내리며 우리는 이 산을 전세 낸 듯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느 산악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이곳이 알프스산맥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낌없이 눌러지는 카메라 셔터와 설악산 정상석 앞에서 웨딩 피켓을 꺼내 들었다. 버려진 철사를 수집해 공존과 균형을 주제로 조형물을 만드는 친구이자 철사 아티스트 ‘좋아 은경’과 함께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웨딩 피켓이었다.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기분으로 진행한 촬영은 노을이 지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서야 마무리됐다. 대피소에서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관리공단 직원들이 다가와 “축하한다.”라며 “더 늦으면 위험하니 지금쯤 하산하는 게 좋겠다.”라고 종용했다. 중청 대피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메고 오색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고마웠어, 잘 지내고 있어, 다시 올게, 설악!”
헤드램프를 켜고 고요히 하산하는 산길 위에서 우리는 오늘 함께 작당하고 모의했던 ‘평생 잊을 수 없을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에 담았다. 정상에서 멀어질수록 조금씩 꿈처럼 아득해졌지만, 그날의 설악산은 알려 주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임을.
살면서 어쩌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세상과 타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마다 휘날리는 강풍 앞에서 면사포 붙잡고 산 정상에 우뚝 섰던 그 순간의 기억이, 용기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