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자부심으로 완성하는
토종 포도 와인, 홍천 ‘너브내’
국내 와인 대상, 영월 ‘예밀’
유기농 포도 와인, 춘천 ‘만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처럼 알알이 박힌 포도를 두 손에 가득 따면서 행복해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곧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게 될 포도 농사꾼들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잖아요? 새벽마다 풀을 뽑고, 꽃이 피어 알이 맺히고 커지면서 색색이 물들어 가면 녀석들이 어떤 와인이 될까? 머릿속으로 그려봐요. 흘리는 땀만큼 좋은 포도가 나오고 그 정성으로 와인을 완성합니다. 여기에 와인 10만 병이 채워지는 상상을 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서울 사업을 접고 홍천에 정착한 지 14년 차인 샤또 나드리의 임광수•이병금 대표 부부.
포도주가 목적인 이들은 국내 최초로 ‘토종 포도 와인’을 출시하고 지금껏 그 길을 고집하고 있다.
‘토종 와인의 국내 점유’를 꿈꾸는 그들의 포부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와인 시장의 성장세다.
최근 수입 와인 시장의 점유는 몹시 가파르다. 2020년 와인 수입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 19로 ‘혼 술’과 ‘집에서 한잔’의 분위기가 결정적이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2019년보다 80%가 늘어난 54,126t을 수입, 3억3천만 달러(한화 3,793억 5천만 원)가 훌쩍 넘었다.
올해 들어서는 이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고 있다. 상반기에만 40,368t으로 거의 2년 전의 한 해 수입량과 맞먹는 수치로 빠르게 수직 상승 중이다. 4천억 원대를 넘는 중저가 와인의 판촉 경쟁 시대가 열렸는데 모두 외국산. 칠레·프랑스·미국 순이다. 거대해지는 수입 시장에서 아직도 전통주로 분류되는 국산 포도주. 홍천 너브내 와인에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현재 임 대표의 농원 규모는 16,528㎡(5천여 평).
포도 농사에서 토종 신품종 와인으로 이어져 2만여 병의 수장고를 갖추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임 대표는 농사와 주조를 맡고 아내는 펜션 운영과 체험 프로그램, 마케팅을 전담했다. 이 씨의 샹그릴라(가향 와인)와 뱅쇼(와인에 시나몬, 과일을 첨가하여 따뜻하게 끓인 음료) 만들기는 제법 인기다. 이들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초생 재배로 환경 친화 농법으로 13년짜리부터 2~3년생 포도나무를 기른다.
“수년에 걸쳐 완벽하게 숙성하고 싶은데 수입원이 없다 보니 너무 빨리 팔아요. 제일 아쉽죠. 주변에서라도 농산물을 수급하고 싶은데 어렵더라고요. 작년에 애플 와인이 인기가 좋아서 재미가 쏠쏠했는데 만만치가 않았어요.” 궁하면 통한다더니,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이 안정적으로 맛을 내자 애플 와인을 출시했는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을 위해 배울 곳을 찾아다녔지만 여의치가 않자 2017년에 이탈리아까지 가서 탱크를 주문 제작해오고, 반복되는 실패 끝에 완성한 샤르마 방식(국내 최초 성공이라고 한다)의 발효 기술이 수익으로 돌아오고 있다.
“신품종인 블랙 스타는 씨가 없고 당도가 높아요. 이 로제를 보세요, 아주 진한 장미색이잖아요? 풍미도 그만입니다. 청향이나 블랙 아이가 카베르네 소비뇽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역사의 차이일 뿐이죠. 우린 이제 시작이지요. 품질 좋은 와인이 재구매를 유도해요. 제일 힘들지만, 특정 지을 수 있는 한국 와인이 가능하다면 정말 보람 있을 거예요.”라고 임 대표는 강조했다.
‘씻어 먹으면 손해’라는 유기농 영농의 춘천 만나 포도원
“우리 포도는 씻어 먹으면 손해예요. 포도의 당이 표면에 형성한 과분과 영양소까지도 섭취할 수 있는, 껍질째 먹어도 안전한 포도인데 아이들이 씨가 있다고 싫어한다니 안타까워요.”
춘천 만나 포도원의 김기천·위경옥 대표 부부는 평생을 유기농 농법을 고수하며 포도농업의 다른 이정표를 보여주었다. 2001년부터 친환경 유기 재배 인증을 받아 씻지 않고 먹어도 되는 포도를 생산, 학교 급식으로 납품하며 와인도 출시하고 있다.
유기농은 실제로 인증 마크 획득이 쉽지 않다. 지독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무농약은 기본이고 유기 비료와 미생물 자재를 쓰며, 생물학적 방법으로 병충해를 방지해야 한다. 또 유기농 종자를 사용하고, 5년 이상의 윤작, 천적 서식을 도모하는 고난도의 영농법이다.
35년 동안 말 그대로 태양과 비 그리고 바람으로 키워냈다.
유기농 재배를 시작하고 15년 만인 2001년에 인증을 따내고, 매년 규모를 넓혀 지난해까지는 약 3만㎡(9,000평)에서 40t의 포도를 수확했다.
“말도 마세요, 계속 실패해서 땅도 팔고 빚만 늘었죠. 큰애가 휴학해야 작은애를 학교에 보냈어요. 나도 가고 싶다고 우는데 억장이 무너졌어요.” 계기를 묻는 말에 사연을 쏟아내는 아내, 위 씨에게 와인은 눈물의 포도인 게다.
하지만 고창리 농원의 포도 넝쿨 아래에서 만난 남편 김 대표는 뜨거운 대낮에도 부듯하기만 한지 웃음을 머금는다. “처음에 내 땅 갖고 시작했는데 다 팔고도 부채가 1억4천만 원까지 갔어요. 유기농을 인정하면서 직거래 장터가 활발해져 부지런히 참여해 5년 만에 부채를 갚았죠.”
8년 전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했지만, 재투자를 하다 보니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지는 불과 5년.
2006년부터 제조한 와인이 크게 도움이 됐다. 효모를 제어한 자연 발효의 천연 유기농 포도주와 포도즙을 찾는 고정 고객들이 생긴 것. 2015년에는 농가형 와이너리도 완성했다.
현재 그의 포도원에는 거봉, 머루, 샤인 머스캣, 토종 블랙 아이와 레드 드림 등 총 10여 종의 포도가 자란다.
8월부터 10월까지 수확해 40%는 포도주와 포도즙으로 재가공한다.
지난해 팔린 와인이 4천여 병. 임대 기간이 끝나고 올해 농사는 1만㎡로 줄었지만, 포도주가 17개의 대형 스테인리스 통에서 숙성 중이다.
“전년 매출이 9천만 원 정도였어요. 토양에 따라 15년에서 30년까지 가니까 해 볼 만해요. 일본은 유기물이 많아 50년도 한다니 강원도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웃었다.
와인 대상 ‘금상’ 수상, 영월 예밀 포도
최근 와인 품평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예밀 와인은 영월 김삿갓면 예밀촌길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다.
캠벨얼리로 2019년 대한민국 한국 와인의 주류 대상을 수상한 이들의 고품질은 농부들의 자부심이 깃든 포도에서 시작한다. 석회암 토질과 큰 일교차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친환경으로 재배, 19Brix 이상의 당도를 유지해 지역 대표 특산물이 된 지 오래.
포도주 생산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5년 출시를 시작해 비교적 젊은 와이너리이지만 이들은 어떠한 첨가물 없이 포도 100%를 발효, 숙성한다. 타닌 성분이 많은 포도주로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꼽힌다. 매년 김삿갓 예밀 와인 축제를 개최하고 지난해부터 와인 족욕과 시음을 할 수 있는 체험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문의
● 영월 예밀촌 마을. www.yemilchon.co.kr ☎ 033-375-3723, 3720
● 홍천 너브내 와이너리. www.neobeunaewine.com ☎ 010-5047-2908
● 춘천 만나 포도원. ☎ 0507-1400-5052
● 삼척 끌로너와. neowa.invil.org ☎ 033-552-5967,1659. 010-8942-5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