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닫기
2021.08
126호
Nature & Crafts taste
강원 토종 포도 ‘청향과 블랙 아이’
VIEW.1660
조은노
사진 김연미_푸드전문사진작가
일러스트 최혜선_본지객원작가


국내 최초 와인 전용 포도 품종 개발과 포도주 출시

청향•블랙 스타•블랙 아이•블랙 썬•허니 드림
토종 와인 시장의 석권을 꿈꾸다



   




포도의 학명은 Vitis vinifera L.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하여 유럽에서는 한때 신의 과일이라 불리었다는 포도.
주스, 잼, 통조림, 씨에서 추출한 식용유까지. 버릴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포도는 그 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맏며느리에게 먹였다고 하는데 이는 포도가 다산을 상징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칼륨, 철분, 비타민 및 미량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타닌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하고 알려진 품종만 3,000여 개이며 그 중 80여 종 정도가 포도주 제조와 과일로 소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으로 일컫는 정도이니 오랫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과일이다. 포도 알갱이를 말려서도 사용할 줄 알았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에 이어 술통을 처음 만들어낸 갈리아인, 수도사들이 점차 양조 기술을 발전시키며(그랑 라루스 음식 백과) 고대부터 현재까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중에서도 포도 가공식품 가운데 발전을 거듭해온 포도주는 현재 세계 시장 규모만 3,725억 달러(2019년, 한화 428조 25억 원). 향후 5년간 연평균 4.2%씩 성장해 오는 2024년에는 4,570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인들이 지난해 식사 중에 마신 와인만 235억ℓ(2019년, 식품 산업통계정보)라고 한다.

국내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포도와 와인 소비량이 꾸준히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7월 농업관측 보고서에서 올해 포도 생산량이 전년 대비 6%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수출액은 49.5% 증가했으며 2020년에도 전년 대비 34.7% 증가한 3,100만 달러였다.



이런 시대적인 추세를 예견, 강원도가 국내 최초로 와인 전용 포도 품종을 개발하고 와인을 출시하며 토종 와인 시장을 이끌며 국내 와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청향•청산•청풍•나래•블랙 스타•블랙 아이•블랙 썬•허니 레드•허니 드림
듣기에도 예쁘고 고급스러운 이 이름들은 강원도가 개발한 신품종. 토종 왕머루와 포도용 와인을 결합해 만든 교배종인 블랙 시리즈와 청산과 청풍은 말 그대로 토종 포도이다.
강원도 농업기술원 과수화훼 연구팀이 만들어낸 야심작들로 박 영식 담당과 팀원들은 업계에서 일명 포도 박사로 불린다. 국내 최초로 와인 전용 품종 육성을 선언한 뒤 이들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국내산 토종 왕머루와 와인용 포도 MBA를 결합 교배하여 ‘블랙 아이’ 개발에 성공, 청산과 청풍을 탄생시켜 끝내 미국 과수학회지에 발표 등록까지 마쳐 국내 포도주 시장에서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2000. 와인용 포도 품종 교배 육종, 파종 실시
2006. 조생 품종 청향을 최종 선발•육성•보급
2008.9. 영월 포도, 전국 톱 프루트 품평회 대상 수상
2009.8. 강원도 기후 특성에 적합한 씨 없는 3배체 포도 육성•품평회 개최
토종 머루 와인용 포도 청산•청풍 품종 등록(미국 과수학회지 등록)
2010.8. 씨 없는 포도 ‘청향’ 현장 평가회 개최
2014.8. 씨 없는 3배체 포도 확대 보급 육성 방안 세미나 개최
2016.8. 씨 없는 삼색 ‘청향•블랙 스타•레드 드림’ 포도 현장 평가회 개최
와인용 포도 블랙 시리즈 품종 등록, 너브네 토종 품종 와인 출시
2017.9. 씨 없는 ‘청향 포도’, 양재동 하나로 클럽에 첫선
2019.9. 블랙 썬, 블랙 아이, 강원 53호, 56호 가락동 시장 테스트 실시
2020.6. 강원도 육성 신품종 포도 와인 시음회 개최



 이들이 그려온 궤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다.

1990년대 당시 이미 경북의 점유율이 55%가 넘는 상황에서 혹한의 겨울을 견뎌야 하는 강원도의 기후 특성상 포도 육성을 고집하기가 사실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1999년에 시작한 청향이 2009년에 와서야 품종등록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선견지명 덕분이었을까?
2004년 4월 체결된 칠레와의 FTA 발효로 국내 포도 시장이 수입포도에 잠식되면서 씨 없는 포도가 휩쓸자 식용 청향도 알려지기 시작해 사업 진행에도 숨통이 트였다. 기후변화도 한몫했다. 한반도 연평균 기온이 증가해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0.5도씩 상승하면서 재배 분포 선이 북상했던 것. 농가도 서서히 늘었다. 2008년 영월 포도는 전국 품평회 대상을 받으며 인지도를 높였다. 삼척 도계 해발 600m 석회암 지대 너와 마을 주민들은 친환경 농법으로 머루를 생산, ‘끌로 너와’ 와인이 탄생했고 2013년 코리아 와인 어워즈 그랜드 골드 수상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드디어 2009년, 토종 머루 와인용 포도인 청산과 청풍 개발이 성공했다.
국내 최초였다. 현재 1.4ha에 달하는 시험 연구 단지 조성은 이렇게 시작했다. 독일의 경관용 포도 농원을 목표로 삼은 이들은 추위에 강하고 토질에 적합한 고품질 품종 생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만 6년 만에 씨 없는 삼색 포도와 레드 드림, 블랙스타, 스위트 드림 품종 등록을 끝냈다. 여세를 몰아 수입 포도주 대체용 특산 와인 개발을 내세우며 농가 재배를 확대했다. 홍천 내면과 양구에서는 청향으로 농사를 시작했으며 강릉과 홍천 포도원들은 스위트 드림을, 원주 농가들에게는 청향과 스위트 드림을 밀어붙였다. 인제는 삼색포도 단지를 조성했고 영월은 고랭지 포도를 생산했다. 시제품으로 출시한 청풍 와인은 소믈리에 기호도 품평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가공 시제품도 시도해 음료, 무설탕 잼, 포도 양갱을 만들고 2018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강원도 주관 행사에 건배주로도 내놓았다.

마침내 지난 2020년 6월.
꼬박 22년 만에 강원도가 육성한 신품종으로 양조한 포도 와인 공개 시음회를 했다. 와인 전문가, 포도 연구원, 발효 전문가, 와인 농가, 관련 공무원 등 300여 명을 자체 포도원인 춘천 미래농업교육원 인근 과수 연구 포장으로 초청했다. 와인 발효 기술 안정화를 위해 농촌진흥청의 와인 제조법을 결합해 원료부터 생산까지의 과정을 밝히고 신품종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 3종과 레드 와인, 로제 와인, 총 아홉 종류를 선보였다.



와인마다 개성은 뚜렷했다.
스파클링과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화사하면서 한편으로 부드러웠다. 화이트 스위트 와인은 단맛과 신맛의 절묘한 배합으로 시음 평가단을 홀렸다. 청향의 성과였다. 블랙스타로 만든 로제 와인은 과일 향이 가득했고 블랙 아이와 블랙 썬으로 양조한 붉은 포도주는 프랑스산 와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겨울철 추위에 강하고 병해충을 잘 견뎌 도내 어디서든 재배가 가능하다는 ‘블랙 아이’, ‘블랙 썬’ 품종은 산지와 유휴 농지 활용에 적합한 작물로 인정되었다. 호평 일색이었다.

오랫동안 포도를 고집해온 이들의 노력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산과 들을 헤매며 야생 머루를 수집해 포도와 교배를 하고, 머루 씨의 유전자를 분석해 비교해 보고서를 만들었던 일, 신품종을 개발하고 12~15년 정도를 길러 농촌진흥청 국립 농업과학원에서 시험용 와인을 테스트하고, 강원 1에서 시작해 강원 12 코드로 불리며 부적합으로 판단되어 폐기한 것도 여러 번.

박 팀장은 강조했다.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되면서 국민 소득이 높아지니까 와인 시장 확장 추세가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우리 와인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막상 해보니까 외국산 포도가 우리 토양과 기후에 맞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머루를 찾아냈죠. 외국산보다 안토시아닌도 풍부하고 또 토종이니 딱 맞았지요. 교배만 성공하면 되니까 이거다 싶었지요. 이제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수확의 계절이 돌아올 때, 포도주를 마시며 자연의 축복을 감사하며 농부와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농가형 와이너리도 생겼고 와인의 평가도 좋으니 아마도 곧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강원도의 포도 재배면적은 236㏊. 452 농가들이 생산하는 포도는 2,763t으로 전국 대비 생산량 2%대의 점유율이지만 이들이 생산하는 강원도 토종 포도의 당도는 19° BX(브릭스) 이상이다. 토종 품종으로 한 농사로 포도주를 양조하는 홍천 너브네, 아홉 농가가 운영하는 영월 하동면 예밀의 와인 체험 마을에서는 지난해 8천여 명의 체험객이 1만 2천 병의 와인을 구매해 갔다. 135t을 수확해 30t은 와인을 만들어 2억 5천여만 원의 수익을 냈다.

 


이들은 말한다. 토종 와인이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생산량은 비록 적지만 강원도는 국내 토종 포도주 시장을 이끌고 있다. 포도의 계절, 산지에서 체험하며 농원에서 수확의 기쁨을 즐기는 파티를 꿈꾸는 이들. 포도주 주조를 통해 부가가치와 소득을 높이겠다는 이들. 강원도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포도주 한 병을 구매해 돌아간다는 설정. 절대 작지 않은 꿈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