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횡성군 둔내면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에서 만난 칡소는 숯으로 그린마냥 시커먼 줄무늬를 갖고 있었다. 한우 무리 속에서도 위풍당당 꺾이지 않는 기세가 온몸을 휘영청 감싼 저 줄무늬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품종개량이 늦은 탓에 한우보다 몸집은 작았지만 다부진 골격, 두툼한 어깨 근육은 정지영 시인이 말한 ‘향수’ 속 영락없는 얼룩빼기 황소였다.
국내 보존된 칡소는 단 2,718두, 그중 강원도에 815두(29.9%, 2020년)가 있다. 이 괄목할 만한 성과의 일등공신이 바로 이곳 축산기술연구소다. 30여 년 전, 육종시험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한우개량 전문가 박연수 박사를 필두로 멸종 위험 품종인 칡소 보존을 위해 일찍이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1994년 수소문 끝에 홍천, 정선, 인제에서 어렵사리 구매한 칡소 3마리를 시작으로, 매년 질병에 비감염된 씨수소와 가임 암소 1~2 두를 선정해 정액과 수정란을 확보하며 우수 유전자원 보존에 주력해왔다. 그렇게 늘린 칡소가 지금은 103두다.
“지금의 한우가 있기까지 개량하는데 50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에 비하면 칡소 개량은 시작 단계예요.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 워낙 개체 수가 적어서 쉽지 않습니다”라는 박 박사의 말속에 그간의 노고와 각오가 사무쳤다. 정액 무료 공급, 성장기별 모색 변화 모니터링, 개체별 DNA 샘플 수집 등 도내 칡소의 안정적 성장과 혈통 확립에 적극 나서며, 사육 두수 확대에 매진해온 그들이었다.
지난해 12월, 연구소는 또 다른 성과로 이목을 끌었다.
1두당 44억 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우량 보증 씨수소 1두를 새로 선발해 강원한우 종모우 20호(KPN1392) 탄생을 알렸다. 이로써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모우를 배출하며, 한우개량의 산실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도내 칡소 사육 1위의 영광이 빛나는 고성은 올해 4농가가 늘어 총 29농가에서 283두가 자라고 있다. 2위로 이름을 올린 철원의 2배 수준이다. 이 영광 아래에는 지역 축산인들의 품과 땀이 서려있다. 칡소 축사에서 만난 한국가축인공수정사협회 강원도지회 송명근 회장은 “한우보다 발육도 늦지, 무게도 덜 나가지, 여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에요”라며 칡소 사육의 어려움을 토했다. 일반 한우에 비해 발육 기간이 6개월 더 걸려 33개월이 되어야 출하할 수 있고, 무게도 100~150kg 덜 나가 보통 200만 원 낮게 매겨진다. 장기적으로 경제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농가들의 칡소 사육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근데 누군가가 안 키우면 칡소는 없어지니까. 우리는 사명으로 키워요”라고 말하는 송 회장에게 칡소는 경제가축이 아닌 자부심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10년 넘게 칡소 100여 두를 기르며 칡소전문정육점을 운영하는 임근성 대표도 고민을 함께 했다. “처음 칡우가 시중에 나왔을 때는 한우보다 130% 정도 더 비싸게 유통됐어요. 지금은 유통망이 사라져 곧바로 등판소로 보내지는데, 현 한우등급판정 체제를 따라 한우가 아닌 육우로 분류되면서 낮게 평가돼요”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임 대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유명 케이블 TV 프로그램에 고성 칡소 고기가 소개된 후 지금까지 한 달에 4마리는 잡아야 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른 터다. 작년 여름 이후로 칡소 판매가 2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워낙 입소문이 난 터라 구이용 사태는 품귀현상이 있을 정도다.
더 이상 잃어선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유전자원 칡소. 누구보다 열렬히 우리 것을 지키려 우직하게 외길을 걸어온 연구소와 강원 축산 농가들 덕분에 칡소의 미래가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칡소의 부활을 조심스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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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 횡성군 둔내면 현궁로 101. 033-340-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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