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초가을 색바람이 불던 9월 말, 7번 국도를 따라 나선 취재길은 설렘이 앞섰다. 도로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망망대해 동해와 그 위를 후련하게 일렁이는 파도 따라 마음이 들썩인 터다. 한국의 나폴리, 삼척의 팔색조 매력은 말할 것도 없다. 봄마다 연분홍 벚꽃비와 노랑 유채꽃 물결로 만조한 맹방, 여름 태양아래 연둣빛 창파로 가득한 소한계곡, 사계절 낚시인 성지 덕산항과 솔향기 가득한 맹방비치캠핑장, 요 근래 방탄소년단(BTS) 앨범 커버 촬영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맹방해수욕장까지! 들러야 할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이번 취재의 종착지인 덕봉산(德峰山)도 그중 하나다.
해변에 웬 산?
맹방해변과 덕산해변의 고운 모래사장 한가운데, 바다가 낳은 작은 봉우리 덕봉산(해발 53.9m)이 솟아있다.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덕산도(德山島)라고 기록되어, 본래 섬이었다가 후세에 육지와 연결돼 육계도(陸繫島)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모양이 물독(방언으로는 물더덩)과 같아 더멍산으로 불리다가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한국지명유래집)
1968년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남한 동해안으로 침투해 민간인 40여 명을 살해한 ‘울진 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해안 주요 지점이 폐쇄되면서, 이곳 또한 일반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53년 세월을 가로막은 군 경계 철책이 사라진 건 지난 4월이었다.
2019년 삼척시는 국ㆍ도비 총 20억여 원을 투입해 해안생태탐방길 구축에 나섰고, 이듬해 10월에는 군 당국과 협의하여 산을 둘러싼 408m 철책과 3개 철문을 한 달 만에 모두 철거했다. 2년여 공사와 정비로 올 3월 해안코스(626m)와 내륙코스(317m) 등 총 943m 탐방로를 준공하며, 사연 많은 덕봉산은 우리에게 돌아왔다.
시작부터 꽤 재미지다.
맹방해변에 놓인 폭 1m, 길이 60m의 난간 없는 섶다리(덕산해변에도 200m 섶다리가 놓여있다)를 아슬아슬하게 건넜다. 산 둘레를 따라 즐비한 기암괴석들 사이로 새하얀 파도가 개운하게 몰아친다. 대나무 숲 창파를 가르며 오르내리길 30여 분, 벌써 해안코스 섭렵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내륙코스는 생각보다 가파르다. ‘천국의 계단’이라 이름 붙여진 길을 따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즈음, 계단 끝으로 정상을 알리는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였다.
드디어 정상, 덕봉산전망대다!
반세기 만에 돌아온 덕봉산에 대한 그리움, 아니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쪽빛 동해가 유달리 눈부시게 아름답다. 양옆으로 한없이 뻗어있는 모래사장, 그 뒤로 병풍처럼 들어선 백두대간, 그 아래 평화롭기 그지없는 덕산마을이 보인다. 사방팔방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한편에 남아있는 콘크리트 군사 초소가 최근까지 이곳이 민간인 통제 구역이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듣자 하니 밤 풍광도 한 폭의 그림 같단다. 야간 경관조명과 투광등이 설치돼 날씨가 좋은 날에는 24시간 출입이 가능하다.
‘쉬이 잊을 수 없는 이 청량감을 짧은 글에 담는 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의문이 든다.
올겨울 눈 내린 대나무 숲의 절경은 또 어떠할지 내심 기대가 차오른다.
자연이 그리운 날, 바다가 보고픈 날, 덕봉산 정복으로 허기진 마음에 풍요를 되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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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산136.
입장료 무료. 24시간 개방 ※ 풍랑주의보, 태풍 등 기상특보 발효 시 입장 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