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
운탄고도1330, 강원을 걷는다!
UNTAN 1330 Natural High Mountain Trail
강원도가 태백, 삼척, 영월, 정선을 아우르는 폐광지역 걷는 길, 운탄고도 1330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평균 고도 1,000m 이상, 173.2km의 길로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하여 삼척 소망의 탑까지 가로지릅니다. 석탄 싣고 달리던 차들이 오가던, 최고 높이 1,330m의 만항재(정선)를 포함해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한때 지역과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탄광의 흔적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일부 구간을 개통, 내년 7월까지 삼척 구간을 공개합니다. 본지에서는 이번 4~5구간 소개를 시작으로 구간마다 담긴 이야기를 취재,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註
하필, 눈이 내렸다.
시작점인 만항재에서 상고대를 댓바람에 만났으니 운이 참 좋았다.
전나무 숲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한 몸처럼 움직여 빛을 뿜어내어 온통 반짝인다. 정선 주민인지 관광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흩날리는 눈발에도 삼삼오오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는 약 44.5km.
운탄고도 4번째와 5번째 구간으로 과거에 묻어둔 미래를 찾아가는 길, 광부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이라는 이름을 각각 얻었다.
그래봐야 걷는 길인데 폐광이란 명패가 주는 의미가 제법 무겁구나 싶다.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고개인 만항재.
함백산 소공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영월 상동과 이어지는 길목이다. 국내에서 차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데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피고 져 매년 시민 축제가 열리고, 잦은 안개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풍광, 그리고 겨울 설경으로 탐방객을 모으는 곳이다.
오른쪽이 운탄고도이다(運炭高道). 이 고장에서 도로와 철로, 그리고 또 다른 세 번째 길이라 불렸다는 탄을 캐는 길이다. 탐방 경로를 만들면서 스토리 작가들은 운탄을 雲灘으로 바꾸면 ‘구름으로 이루어진 여울을 건너다’라는 뜻을 품으니 雲灘으로 쓰고 운탄이라 부르자 했단다.
구름 위의 산책이라.
듣기만 해도 좋구나! 상고대가 피었던 날이라 구름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정표를 따라 40분 남짓 걸으니 풍력 발전 단지가 위용을 드러내고, 맞은편 함백산 산마루가한눈에 걸린다. 탄성은 자연스럽게 터졌다.
여기서부터 쭉 걸으면 화절령이다. 고도!
산꼭대기 주변으로 탄맥이 발견되고, 채굴한 탄을 기차역으로 운반하던 잊혔던 이 길이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동원탄좌가 있던 고한의 지장산 자락에 들어선 강원랜드의 스키장 개장이었다. 고원의 옛길을 정비하고, 백운산 (1,426m) 주변의 산책로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걷기 좋게 만들었다. 하이원의 하늘 길이라는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350여 종의 야생화가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뤄 피고 지니 리조트 투숙객들과 도보 여행객은 물론 주민들도 환호했다. 매년 산악자전거와 오프로드 대회가 열렸고, 이제는 비박 코스로도 자리 잡았다. 하이원의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만항재와 도롱이 연못의 중간 지점으로 완만하고, 또 힘들면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수 있어 호평을 받았다.
물론 모처럼 올라갔으니 1177 갱과 도롱이 연못, 아롱이 연못까지 보면 더할 나위없다.
1177 갱은 민영 탄광으로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인데 지난 2015년 12월 강원랜드에서 이 갱의 일부를 원형 복원했다. 화절령 근처 도롱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의 지반침하로 생겼는데 이제는 고라니, 산토끼,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의 샘터가 된 생태 연못이다. 언젠가부터 서식한 도롱뇽들이 생존하는 한 탄광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광부의 아내들이 도롱뇽의 서식 여부를 늘 확인하였다는 사연이 있다.
역시 이 구간의 백미는 화절령.
‘꽃(花)을 꺾는다(切)는 뜻으로 ‘꽃꺼끼재’라고도 불릴 만큼 계절마다 피는 야생화 군락으로 나름의 유명세가 있는 곳이다. 정선을 기록하는 청년 사진작가이자 로컬 크리에이터인 이혜진 작가는 이번 촬영이 “빙판과 바람으로 역대로 매운맛”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새비재까지 28.8km다.
여름이라면 1,800여 년 된 주목이 있는 두위봉을 들러도 좋으리라. 이 작가는 올해도 철쭉 촬영을 위해 다녀갔는데 “신록이 산허리를 휘감고, 연분홍 철쭉이 화사하게 뒤덮어 절경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게 촬영 팀원들과 탄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 GMC M35(일명 제무시)가 내달리던 신작로를 걸었다고 했다.
해발 1,000m를 가뿐히 넘는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평탄한 임도. 가진 사연이 차고 넘친다. 북쪽의 민둥산, 동쪽의 백운산과 태백산, 남쪽의 매봉산이 모두 보인다. 내년 봄에는 꼭 한 번 다시 와 보리라.
다들 비슷한가 보다. 지난 10월에 열린 개통 행사의 참가자들도 다시 오고 싶어지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듯 천혜의 걷기 길’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종착 지점은 새비재.
새가 날아가는 형상의 산세를 가졌다고 해서 이름 붙은 새비재. 해발 850m에 만들어진 도로인 만큼 예미역 방향에서 올라오면 경사가 만만치 않다. 아래로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 끝이 까마득하다. 인가하나 없는 이곳에 뜻밖에 낯설지 않은 이정표가 자꾸 등장하는 데 바로 ‘엽기적인 그녀’와 ‘타임 캡슐 공원’. 차태현과 전지현 배우가 영화에서 3년 후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면서 타임캡슐을 묻었던 ‘엽기 소나무’가있는 곳이다. 영화가 인기를 끌자 정선군이 관광 명소로 조성했다. 한 블록당 400여 개의 캡슐을 설치할 수 있는12개의 원형 블록이 있는데 타임캡슐을 구입하고 설치하면 100일, 1년, 2년, 3년 후에 꺼내 볼 수 있단다.
'이곳에서 미래를 약속하고 다녀간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중에 또 영화 소재로등장할 수도 있겠구나!…'
배추밭을 오가는 트럭들과 마주치며 내려오는 길.
상고대를 보여주었던 정상과 달리 깊은 가을을 보여주는 숲이 마냥 기껍다.
운탄고도 코스 안내
- 4~5구간 명소와 가는 길
타임캡슐공원(033-560-3462, http://time.jsimc.or.kr), 두위봉, 간이역 함백역, 안경다리 마을의추억의 박물관, 천년고찰 정암사,
삼탄아트마인.
- 자동차로는 타임캡슐공원을 목적지로 하고 도착 후 주소를 정선 신동읍 방제리 434-26로 변경
운탄고도 전체 코스
* 구간 : 영월 청령포 - 각동리 - 모운동 - 정선 예미역 - 화절령 - 함백산 소공원 - 태백 순직 산업 전사 위령탑 - 삼척 도계역 - 신기역 - 소망의 탑. , 173.2km
* 주요 경유지 : 영월 - 청령포, 고씨동굴, 예밀촌, 모운동, 망경대산, 석항역
정선 - 예미역, 타임캡슐공원, 두위봉, 화절령, 만항재
태백 - 순직 산업 전사 위령탑,
삼척 : 도계역, 신기역, 소망의 탑
* 접근 도로 : 국도 38번・88번・31번・421번
코스별 특징
1길.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 영월 청령포 - 각동리, 15.60km
2길.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각동리 - 모운동(벽화마을), 18.80km
3길. 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다. 영월 모운동 - 정선 예미역, 16.83km
4길. 과거에 묻어둔 미래를 찾아간다. 예미역 - 정선 화절령, 28.76km
5길.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 화절령 - 만항재, 15.70km
6길.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
만항재 - 산업 전사 위령탑, 16.77km 7길. 영서와 영동의 만남. 산업 전사 위령탑 - 통동 - 삼척 도계역, 18.63km
8길. 간이역과 만남. 삼척 도계역 - 신기역, 16.94km
9길. 오십천을 건너 바다에 이르다. 신기역 - 새천년도로 소망의 탑, 25.1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