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닫기
2024.02
141호
Special Gangwon
특별한 강원인, 춤꾼 정영수를 만나다
VIEW.463
조은노
사진 주민욱 본지 객원 작가





푸른 용의 해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23년은 지정학적 갈등으로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이어졌지만, 도내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이라는 새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김진태 도지사는 1월 2일 올해 첫 도청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사자성어로는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 라는 의미의 마부정제(馬不停蹄)를 선택,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자세로 더 열심히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어려울수록,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느낍니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기사를 읽다 보면, 잃어버린 용기를 다시 북돋울 수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궁금했지만 잘 만날 수 없었거나, 혹은 전혀 몰랐 을 수도 있는, 숨겨진 특별한 강원인들을 만나 소개하고자 시리즈를 기획,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註) 





Chapter 1. 부채를 부여잡고 온 춤꾼의 꿈


무용가 정영수는 ‘춤꾼’이라는 단어로 그의 인생을 압축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관통했던 그 전율, 어쩌면 스탕달 증후군처럼 그 순간에 이미 사로잡혔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춘천 중앙시장에서 장사하셨어요. 다들 어려웠던 시절이니까요. 친구들하고 항상 어머니 주변에서 뛰놀았죠. 아마 7살쯤? 근처에 제법 유명한 식당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에 이끌려 들어갔다가 춤사위를 본 거예요. 주인이 귀여웠던지 기본 동작을 가르쳐주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 마음속 깊이 각인했었지 싶네요.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를 졸라 결국, 9살에 무용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니까요. 부채를 들면 세상 더없이 좋았어요.”


진로를 일찍 정하고 온전히 ‘춤’과 함께한 인생. 

초등학교 2학년부터 배우기 시작해 고3이 될 때까지 꽤 두각을 나타냈다.

도 대회에서 1등, 명실상부 도내 고등부 최고로 올라섰단다. 

그래서 호기롭게 도전한 대학입시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첫 실패였다.

“계속 배우고 싶은데, 도내에는 무용과가 없었어요. 몰래 원서를 냈는데 서울의 벽이 높다는 현실만 아프게 깨달은 거죠.

춘천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하염없이 울었죠.


결국, 숭의여대 무용과에 합격하고, 생활비는 벌어서 다니겠다고 선언하고 서울로 입성했죠.”


그 후, 스물두 살에 한국 무용계의 원로인 고(故)이숙향 무용단 소속으로 2년간 활동하다가 그 뒤 몇 년간은 솔로로 전환해 국내와 해외로 행사와 공연을 많이 다녔다. 프로 무용수로서 삶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Chapter 2. 인생의 변곡점이 되어준 전통 무용


그러다가 28살이 되던 해, 변곡점이 되는 순간을 맞았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살풀이춤 공연을 보면서 평생 가야 할 나의 길을 찾은 거지요. 알다시피, 무용으로 온전하게 먹고살기는 힘들잖아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춤을 언제까지 잡고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딱, 정명숙 선생님 공연을 보다가 벼락 맞은 것처럼 이거다 싶었던 거죠. 저런 몸짓, 저런 춤을 그려내고 싶다, 그런 마음이 확 들더라고요.” 


그렇게 전통 무용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지 꼬박 32년. 지난해 11월 서울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그의 60년 이야기 ‘정영수의 춤・ 길’을 선보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인 정명숙 선생에게 사사했던 10년, 이후 서른아홉부터 13년간 한국 전통춤의 거목이자 인간문화재였던 고(故) 이매방 선생에게 배웠던 승무(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와 2008년에 이수한 살풀이춤의 깊이를 힘 있고, 우아한 곡선으로 담아냈다.



무대를 준비하는 내내 마치 어제처럼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주대사습놀이 무용 부문 장원으로 기뻐했던 자신,

우봉 이매방 전국 무용 경연대회에서 명무부 대상을 받았던 일,

50이 넘은 만학도로 상명대학원에서 공연예술경영 석사학위를 끝낸 일,

또 지난해 4월 춘천 문화예술회관에서 도립무용단과 함께 공연한 ‘불 휘’ 무대에서 한바탕 추었던 살풀이 춤사위도 스쳐 흘렀다.

(사)우봉 이매방춤 보존회 회원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춤 이수자이자 전승자가 되기까지 ‘춤꾼’으로서의 모든 시간을 무대에 올려 풀어냈다.





Chapter 3. 명무(名舞)로 남아 


요즘 그의 일상은 춤과 함께 시작해 춤으로 하루의 끝을 맺는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정적 미의 단아함과 한의 비장미가 스며있는 신비한 춤으로 꼽힌다. 격렬한 움직임 속 태고와 같은 적막의 감각을 표현해야 한다. 전통춤 학습의 마지막 단계에 주어지는 춤이라 불리는 승무는 고도의 정신력과 기술이 요구된다. 한평생 춤을 추는 이들도 매일 새롭고, 또 어렵게 느끼는 이 춤을 잡고 있으려면 매일 연습은 필수다.

오전에는 전공자와 학생, 강사들을 지도하고 오후는 개인 연습 시간이다. 


명확한 장단, 호흡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절제된 몸짓에서 표현되는 아름다움. 유려하게 흐르는 손짓에 오늘도 담고 싶은 그것.

마음을 비우고 욕심 없이 춤 길을 걸어왔다.

이매방 선생이 춤으로 전했던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 그 춤사위에 그의 인생도 얹는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도 승무·살풀이춤 전승 교육사인 김명자 선생(이매방 선생의 부인)이 운영하는 전승교육관에서 지도를 받아 승무 이수 과정을 마쳤다.

배움은 평생이다. 


이제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물었다. 

“지난해 강원예술단 기획 공연에 참여하면서 고향 생각을 새롭게 했어요. 

춤판에서 모를 수 없는 사이들인데 강원 출신인 줄 몰랐던 거예요. 그때 다들 못내 아쉽게 생각했던 것은 문화재에 우리 춤, 강원의 춤이 없다는 거였어요. 대전, 부산, 광주, 목포에도 있고 경기도에는 경기 승무, 서울 승무도 있거든요.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그 작업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작은 무대라도 고향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껏 춤을 추는 이로 동창 중에 유일하게 남았단다. 

“그러니 저는 꿈꿉니다. 이 몸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춤출 수 있기를 소망 하죠. 장단이 좋고, 춤추면서 행복하고, 그러다 보면 세상 모든 종류의 음악과 춤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과정을 거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야금 소리 같은 우리 멜로디, 우리 음악, 

우리 장르에 흠뻑 빠지게 되는 거지요.


사람들에게 이런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