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재미로 시작한 그림, 그리고 선택한 조소
“화가를 꿈꾸지도 않았는데 조각가요? 생각조차 한 적 없었죠. 17살까지는.”
이제 몇 년 후면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에 이르는 조각가 지용호.
20대에 이미 미국 화단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란 별호를 얻은 그. 미대 입학은 예정에 없었던 10대였다고 했다.
지표 없는 입시생으로 보내는 하루하루가 재미없어지던 고교 1학년의 어느 날. 문득, 앞자리 친구가 어깨에 메고 다니던 화구통이 몹시 궁금해졌다.
‘재미있을까?’ 그래서 다니기 시작한 춘천의 미술학원. 생의 그래프 좌표가 탄생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좋아했죠. 찰흙이든 뭐든 손으로 만드는 건 다 좋았어요. 남들과 다르게, 빠르게, 잘했죠. 호기심도 충만했죠. 장난감도 만들었고, 과학상자로 전국 상도 탔으니까요.”
천편일률을 거부하는, 세상을 뒤집어 보고 싶은, 그의 작품을 관통해 온 세계관은 이미 그때부터 완성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Chapter 2. 동질성을 거부했던 미대생, 조각에 미치다
200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훌쩍 넘어간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궁금했어요. 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의 사실 여부가. 직접 확인하러 간 거죠.”
결국,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 미술과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각가로서 그의 이력은 독보적이다.
대학 재학 당시, 학교 과제로 제출했던 ‘Mechanical mutant’가 중앙미술대전 우수상(2003년)을 받게 되고, 가나아트 갤러리 소속으로 선정되며 신진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직접 보고,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전통 방식을 거부했죠. 다른 걸 해야만 했어요. 소재를 고민하고 재료를 계속 찾다가 폐타이어로 시도했죠.”
뮤턴트(Mutant·변종, 돌연변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당시 폐타이어로 표현한,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노출된 인간의 불안과 인간의 파괴적인 행위로 인해 힘을 잃어가는 야생 동물들을 결합한 새로운 변종 생명체의 등장에 평단은 주목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4년.
거칠 것 없었다. 제작한 작품만 100여 점. 한 달 평균 2~3점을 만들었다.
“미쳤던 거죠. 아이돌 같았달까. 요청이 들어오고, 주문을 다시 받고, 또 만들고, 팔려나가는 재미에 푹 빠졌던 거예요. 너무 바빴습니다. 미국, 유럽, 홍콩, 아시아, 세계 아트페어는 모두 갔어요. 소더비경매까지 다 해봤죠.”
그랬다. 2007년 11월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시리즈 '상어'가 14만 5,000달러(약 1억 7천만 원)에 낙찰되자 뉴욕 미술계가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에게 주목했고 이후 행보는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다.
2004년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건축과 조각의 만남: 인간, 시간 그리고 공간, 간삼 파트너스 아트센터.
2005년 Between, Lange Nacht Der Museen 슈투트가르트 독일, Touch, Touch 광화문 갤러리.
2007년 미국 뉴욕 다니얄 마흐무드 갤러리 개관 기념전, 33본드 갤러리 I Love New York.
2009년 미국 미시건 크라슬 아트센터, 일본 마루가메 겐니치로 미술관, 타이완 소카 아트센터. 2010년 미 타임스퀘어, 홍콩 중국.
2011년 암스테르담 캔버스 인터내셔널 갤러리. 2013년 아부다비 F1 경기장.
Chapter 3. 세상을 움직일 명작(名作)을 꿈꾸다!
그리고 귀국. 모교인 홍대 주변에 터를 잡고 지금껏 머물렀다. 그 화려한 시장을 뒤로하고 왜 돌아왔는지 물었다.
“돌아오고 싶었으니까요. 좋은 친구와 교수님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또 가고 싶진 않아요. 지독하게 운이 좋았죠. 솔직히 그 나이에 알면 뭘 얼마나 알았겠어요? 그저 직관적으로, 철학적 고찰도 없이.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죠.”
그렇게 흐른 시간이 21년.
그동안 날개 달린 사자, 황소, 재규어, 버펄로, 상어 시리즈, 두상 시리즈 수많은 뮤턴트가 탄생했다. 이제는 브론즈, 알루미늄, 3D 프린트, Shark_NFT, Lion_NFT, 디지털 오브제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또 동시대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전통조각과 캐릭터의 하이브리드를 시도, 2년 전 ‘아이언 다비드’를 전시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제작 과정 일체를 공개했다. 3D 드로잉 후 FRP와 레진으로 프린팅하고 합성수지를 이용해 가볍게 만드는 과정과 기존 조각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타이어 뮤턴트는 변종을 통하여 인간의 미래에 대한 오만과 확신을 경계하는 주제로서 고통과 왜곡된 형태로 다루어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었다면, 디지털 오브제를 사용해 제작하는 작품들은 신과 신, 신과 캐릭터, 캐릭터와 캐릭터 등 긍정적인 모습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한다.”라고도 밝혔다.
이처럼 친절한 전시관이 또 있을까 싶다.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하고자 하는 미술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설치했는지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주제를 정하고 소재를 찾는 사유와 철학을 담는 과정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는 오늘도 평범한 직장인처럼 일상을 보낸다.
9시에 스튜디오(파주)로 출근해서 작품을 구상하고, 상상하는 이미지를 수시로 구현해 컴퓨터 드로잉을 하거나 작업하고 오후 6시면 퇴근한다.
“단 한 작품으로 세상을 뒤흔들어 미술의 개념을 바꾸고 확장한 마르셀 뒤샹의 ‘샘(남성용 소변기, 1917)’ 같은, 시공간을 떠나서 새로운 출구를 열어주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 정의한 그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