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까지 개관 기념 김환기 화백 특별전 개최
□ 4월의 오후 햇살 아래 하얗게 눈부신 미술관이 드러났다
동해의 푸르름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백색의 미술관 ‘솔올’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자로 재듯 반듯하게 허공 위에 그린다. 브리지 형식의 긴 진입로를 걸어 입구에 다다르면 미술관은 전면을 유리의 투명함으로 열어 보인다. 또 그렇게 미술관 내부로 는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안과 밖은 서로의 경계를 풀고 이어진다. 미술관은 자연광이 충분하다. 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은 흰 벽과 바닥 위로 격자의 긴 그림자를 사선으로 드리운다. 전시실을 찾아 이동하는 이들의 그림자도 따라 움직인다.
□ 관람객은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작품세계와 마주한다
바다의 고장 강릉에서 김환기의 청회색 ‘점화(點畵)’는 먼바다를 담아둔 것처럼 더 아련해 보인다. 캔버스 위에 한 점 한 점 작 은 점들이 가득한 전면 점화는 1963년, 김환기 나이 50세에 시작된 뉴욕 시절의 십 년 남짓한 시간에 일궈낸 완성이다. 우주에 빛나는 별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화폭 가득 점을 채우는 날들. 그리운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서러움을 승화시킨 작품들이다. 김환기 작업의 빛은 점이고, 점들은 별이 되어 빛난다.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전시실 안의 작품만 감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술작품인 건축물이 담고 있는 숨은 의미도 사유한다. 안과 밖으로 연결되는 동선을 따라 복도와 계단, 경사로를 산책하듯 걷는다. 또 내외부의 기하학적 형태와 비율도 눈여겨본다. 백색이 연출하는 장면과 도시의 풍경을 이어본다. 실내외에 설치한 발코니와 테라스는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고, 이때 공간이 만들어낸 근경과 원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 도시와 사람, 자연과 예술이 만나고 있다.
미술관은 새로 조성된 도심의 숲 산책길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지평선 끝과 잇닿은 동쪽 바다를 그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다. 솔 올.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옛 지명이 그대로 미술관의 이름이 되었다. 솔올 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이미 큰 관심을 끌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스튜디오 마이어 파트너스(MeierPartners)사가 설계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지난해, 솔올 미술관은 두 번의 기획전시를 진행하며 국내외 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작가의 작업과 한국 작가를 연계하여 조명하는 전시 기획이 새롭고 탁월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건축가 그룹이 지역의 산수와 한옥의 건축적 특성을 반영하여 표현한 건축적 영향력도 한몫했다는 평이다. 미술관 마당 가운데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햇살에 반짝인다. 강릉시 소유 부지에 민간 아파트 시행사가 지어 기부채납하는 형태로 건립한 이 미술관은 올해 강릉시로 운영 주체가 이관되어, 4월 ‘강릉시립미술관 솔올’로 이름을 바꾸고 개관, 특별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뉴욕시대’를 오는 6월 29일까지 개최한다.
□ 다시 찾은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지역의 공공미술관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외국의 이름있는 뮤지엄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미술관은 소수의 애호가가 예술품을 수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에서 모두의 미술관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세기, 미술관은 산업 발전의 견인차였던 발전소나 공장들이 쇠퇴하며 낙후된 지역 이미지에 활기를 불어넣는 도시재생의 모델이 되었고, 전쟁과 분단으로 희생되고 상처받은 시민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기념 공간이 되었고, 불균형한 발전으로 도시가 안고 있는 해묵은 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었다.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이 확장되었고 다양해졌다. 이제 공공미술관은 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체험하고 공감하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 미술관 언덕에서 멀리 열린 하늘과 바다와 마을을 굽어본다.
시립미술관 개관전의 전시 제목이자 김환기의 1970년 작품처럼 새로운 미술관에서 고향과 다시 만나는 감회가 새롭다. 미술관 가까이 올망졸망 둘러있는 집들을 보는 감회도 그렇다. 공공미술관으로서 솔올이 앞으로 열어갈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대해 본다. 더 많은 시민이 예술의 빛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