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폐철도,
도시를 연결하는 숲이 되다
원주 치악산 바람길숲
시간이 멈춘 듯 고요히 잠들어 있던 옛 철길이 도심 속 푸른 숲길이 되어 돌아왔다.
지난 7월, 비 갠 뒤 맑게 빛나던 원주의 바람길숲. 반세기 동안 국토 중심을 누비던 중앙선의 원주역 이전과 함께,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폐선 구간이 이제 아름드리 나무와 다채로운 꽃들로 가득한 도시숲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80여년간 철길로 불편을 겪은 시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도시환경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목적으로 기획한 ‘도시 바람길숲 조성 사업’이 2020년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도비, 시비까지 총 236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 4여년간의 대규모 재정비를 거쳐 지난해 12월 1차 준공을 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개방된 구간은 우산동 한라비발디 아파트 앞에서부터 반곡역까지, 원주역을 제외한 총 10.3km에 달한다. 바람길 따라 심어진 나무만 23만 주. 원주를 상징하는 은행나무부터 느티나무, 왕벚나무, 메타세쿼이아, 이팝나무까지 바람길은 사계절 각기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다채로운 경관을 선사한다.
# 기억의 옛 철길, 이제 새로운 일상 속으로
여정의 시작은 학성동 대왕참나무 수국길. 말끔하게 정돈된 산책길에 하얀 수국들이 길 벗 삼아 늘어져 있다. 오래된 녹슨 철길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피어 오른 옛 풍경이 정겹다. 이제 길섶 옆으로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자연의 속삭임만이 남아있다.
도심과 연계된 바람길숲의 공간 활용도 돋보인다. 원주의 터줏대감 중앙동 도래미시장 인근의 바람길숲 중앙광장은 시장의 활기가 잠시 쉬어가는 특별한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발길을 옮긴 봉산동 거향수길 봉산정원은 이미 마을 주민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듯하다. 아침 조깅 코스, 한낮의 한적한 산책길, 저녁의 시원한 마실길로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바람길은 다양하게 활용된다.
봉산 구역 바람길 끝에서 마주한 길이 150m의 원주터널은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문 같다. 시커먼 터널 내부에 설치된 LED 조명들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밤하늘을 총총 수놓은 별들처럼 은은한 빛이 흐르는 은하수길과 누런 보리밭 조명이 마치 아련한 꿈길을 걷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번재마을숲의 넓은 잔디광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놀이터. 폐역된 유교역에 들어선 무지개 철길과 파라솔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부리기에 충분하다.
# 바람 따라 넓어지는 도시숲, 2단계 사업과 관광열차
올 하반기에는 바람길숲 조성 2단계 사업이 본격화된다. 우산 철교를 재정비해 새 옷을 입히고, 옛 원주역 자리에는 센트럴파크를 조성해 바람길숲 전 구간이 완성될 계획이다. 벚꽃 명소인 반곡역 또한 철도 역사와 문화를 담은 복합 테마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플라워 가든, 파빌리온 등 근대 문화유산이 녹아 있는 공원 조성과, 반곡역에서 금대역까지 총연장 6.8km 구간에 시속 25km로 주행하는 2층의 관광열차 두 대를 놓아 회당 최대 6백여 명의 관광객을 수용, 올 하반기에 시범 운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기억의 철로 위로 부는 새 바람, ‘치악산 바람길숲’
오래된 철길이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의 만남, 도시와 자연의 어울림.
버려진 유휴공간의 화려한 대변신, 바람길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듯 하다.
● 원주 치악산 바람길숲
대왕참나무 수국길. 원주시 학성동 355
바람길숲 중앙광장. 원주시 평원동 100
거향수길 봉산정원. 원주시 봉산동 1050-50
바람길숲 원주터널. 원주시 개륜1길 15-5(봉산동성당공동묘지 입구 건너편)
폐유교역 무지개 철길. 원주시 행구동 산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