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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
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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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강원인: 글렌 윈켈
VIEW.24
: 조은노
사진 : 박상운, 전영민

특별한 강원인

특별한 귀화인 신대현(글렌 윈켈, Glen Winkel) 

2025년 8월 15일, 광복 80주년 맞아

한국인이 되다! 



2025 독립유공자 건국포장 추서된 신을노 선생의 후손으로 춘천에서 살다

2025년 3월 1일, 강원특별자치도는 강원대학교 춘천캠퍼스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0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고(故) 신을노(Philip Eulno Shin) 독립유공자에게 정부 포상의 건국 포장을 추서했다.

신 선생은 1942년 미국 하와이에서 중한민중동맹단, 한미공채위원회 위원,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 지부 집행위원, 상무부 선전부, 정신 부장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표창을 전수한 미국 출신의 외손주 신대현(글렌 윈켈, Glen Kalani Winkel) 씨가 재외 동포 비자 취득을 위해 서류를 제출했고, 변호사와 법무부 심사 담당자가 그의 외조부가 독립운동 기록이 남아있는 신을노 선생임을 확인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권했고, 국가보훈부가 추서했다.

마침내, 손주 신 씨는 특별한 귀화인으로, 광복 80주년을 맞는 오는 8월 15일 한국인이 된다. 춘천 의암호 주변 자택에서,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이민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Episode 1. 70대에 이룬 소망, 한국인이 되는 것 

특별한 귀환의 여정은 2020년에 시작됐다.

어머니마저 별세했던 그해, 유품에서 모친의 뿌리인 한국 외가에 관해 오래 보관한 자료를 발견하고 한국인 친구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2022년 한국을 찾아왔다. 첫 방문이었던 당시에, 마치 신의 계시처럼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인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자료를 찾고, 한국어 학당에서 공부하고, 이민국을 방문했으며 주변에 도움을 구하고, 미국에서 이사를 오고, 변호사를 고용하고, 마침내 춘천에 집도 샀다.

지난 3년간 한국인이 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고 해도 절대로 과하지 않다.

사실, 그는 처음에 무척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의학·생명과학에 특화된 주립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에서 신경과학(Neuroscience)을 연구했고, 1985년 박사학위를 취득 후 회사 운영은 물론 30여 년간 건강, 피트니스 분야에서 스포츠 코치이자 고문으로 일했다. 이 경력이면 F-4 비자(영주 비자. 외국인이 한국에서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자격)발급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국 입국을 서둘렀건만, 결과는 의외였다. 거절을 당했다. 


“정말 쉽지 않더군요. 일단 나이가 문제였어요. 경력은 전혀 의미가 없었어요. 필수 조건인 어학 코스를 1년 만에 포기했죠. 매일 수백 개 단어를 외우고, 새로운 문법을 배우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 젊은 세대의 높은 자살률을 이해할 정도였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더군요. 결국, 그 비용으로 변호사에게 의뢰했습니다.”

외가의 역사 추적에서 비롯한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Episode 2. 기적처럼 알게 된 외조부 신을노 선생의 독립운동 

의욕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외가의 한국 기록이 희망이었건만 출생증명서조차 없었다. 하나씩 추적했고, 관건은 ‘미국 배 승선 명단 유무’로 좁혀졌다.

탑승 기록을 조사했고, 결국 찾아냈다. 



외증조부 신태영 씨가 1894년 신을노 씨를 낳았고, 1903년 SS도릭호에 승선해 하와이로 건너갔다. 신 선생은 1922년 한국인 이민자 가정의 사라 성과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두었고, 둘째 고(故) 신영희 여사가 바로 신대현 씨의 모친이다. 1955년에 미국으로 귀화했고, 그해 신대현 씨가 태어났다. 


이 ‘한국인 선조의 존재 증명’으로 3년짜리 비자를 받고 2023년 2월 14일 입국할 수 있었던 것.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밸런타인데이가 되었다.

그리고 2024년. 각고의 노력 끝에 독립신문에서 독립운동자금 기부 명단에서 조부의 이름을 확인했다.

하와이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며 자금을 계속 송금한 사실이 독립신문에 보도됐다.

1943년 10월 27일 100원, 1944년 2월 3일 유지금 5원, 1944년 3월 15일 군수 금 500원. 정부는 2025년 3월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인 윈켈 씨는 오는 8월 12일 법무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후손이자 특별 귀화인으로 국적 증서를 수여한다.


“법무부와 변호사의 도움으로 조선민족혁명당(1937년 창당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당) 활동 이력까지 알아냈을 때 흥분했고, 깜짝 놀랐죠. 미국은 부정적으로 취급할 수 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독립유공자라고 하니 감동했죠. 아무도 몰랐어요. 가족도, 심지어 이모 두 분도 금시초문이었고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고 올해 3월 1일, 강원자치도가 주최한 기념식에서 포상을 대신 받았어요.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죠. 일제 강점기를 어렴풋이 알았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역사가 곧 제 집안의 이야기가 된 거지요. 한국을 더 깊게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랑스럽고 더없이 기쁩니다.” 



Episode 3. 남은 생의 새 이름,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의 ‘신대현’ 

어떻게, 왜 춘천이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많이, 오래 했죠. 사이클을 좋아합니다. 세계 사이클 대회 챔피언을 9번 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사이클과 벨로드롬으로 키워드를 넣었는데 다섯 개 도시 중 하나가 춘천이었어요. 또 관심 분야인 바이오로 검색해도 우선순위에 있었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열심히 시청한 드라마 겨울 연가에도 나왔죠. 정말 놀라운 일은, 지금 사는 이 집에 이사를 7월 4일에 했는데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자 어머니 기일과 같은 날이라는 거죠. 신이 기회를 만들어 주었나 싶었어요. 더 기막힌 건 미국에서 살던 곳 주소 끝자리 55가 똑같은 거예요. 소름이 딱 끼쳤죠.”


교집합은 또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경기 마니아인 그는, 한국 이름 ‘대현’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22 금메달리스트인 황대헌 선수에서 따왔는데 공교롭게도 강원자치도청 소속이었다.

이제 그는, 족보를 찾는다. 단서는 조부의 이복형인 신갑노 씨. 1914년 호놀룰루에서 화가로 활동하다가 1917년 귀국했다. 성씨의 매울 신(辛)으로 영신 신 씨 이거나 영월 신 씨일 가능성을 둔다.

“40년째 일기를 쓰고 있어요. 제가 겪은 경험과 사실을 책으로 내려고요. 증조부와 조부의 삶에는 한국인의 역사가 있으니까요. 사진과 자료를 이야기로 남겨두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확인 후, 70세 맞이 기념으로 서울에서 춘천까지 자전거 일주를 했다는 그. 75세는 춘천에서 서울로, 80세는 다른 도시로, 5년마다 투어를 계획한다고.


“한국의 최고령 사이클링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라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강원자치도에서, 춘천에서 남은 생을 보낼 또 한 명의 강원인을 진심으로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