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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
151호
Nature & Travel
철원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
VIEW.74
: 전영민 강원특별자치도 대변인실
사진 : 박상운 강원특별자치도 대변인실



철원의 궤적을 따라,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


 

초록 장삼에 붉은 가사를 두른 일목대왕 궁예의 모습이 위엄차게 다가온다.

천백여 년 전 후삼국의 격랑 속에 철원을 도읍으로 삼아 태봉(泰封)을 건국했던 그의 기개가 영정 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듯하다. 철원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에서 마주한 한 폭의 초상을 통해 한 시대의 숨결을 느낀 순간, 몹시 궁금해졌다.

이곳에 담긴 철원의 의미와 그동안 알지 못한 궁예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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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민통선 철책을 넘어 향한 철원 홍원리.

한때 ‘천하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제후의 땅’ 풍천원(楓川原)으로 불린 마을은 오늘날 최북단 접경 지역이자 비무장지대 (DMZ) 남방 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닿은 마을이 되었다. 종전 이후 지난 70여 년간 민간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탓에, 마을은 마치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듯 시린 역사의 장면을 품고 있다.


민통선 검문을 지나 평야를 내달리길 10여 분, 북녘으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역이었던 월정리역에 닿았다. 시간마저 멈춰 세운 듯 폭격 맞은 객차 잔해가 정적 속에 서 있다. 전쟁의 깊은 상흔을 온몸으로 전하는 녹슨 철마는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분단의 과거에 묶인 이 대지 위에 화해와 상생의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 2011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에 따라 월정리역 바로 옆에 조성된 DMZ평화문화광장이 생태, 통일,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며, 분단의 역사와 평화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희망의 물결은 10월 1일 개관식을 연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으로 이어진다. 2017년부터 시작된 한반도생태평화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국도비 등 총 191억 원을 투입해 36,919㎡의 대지에 태봉국 도성을 재현한 체험형 역사 테마 공원을 조성, 메인 전시관인 태봉국역사체험관과 궁예 영정을 봉안한 선양관, 태봉국 도성을 1/20 크기로 축소한 미니어처 정원 등 태봉국 철원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한데 담아냈다.


월정리역 주차장 너머로 작은 미니어처 철원성이 옹기종기 모습을 드러낸다. 궁예가 머문 궁성, 관아가 있는 내성, 주민들이 거주한 외성으로 이루어진 성은 은은한 기품을 품은 전각들로 빼곡하다. 실제 여의도 면적의 다섯 배에 달하는 한반도 최초의 사각 방형 도성인 철원성은 현재 남아있는 성터가 DMZ 군사분계선을 관통하고 있어, 그 모습을 작은 모형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한국전쟁 격전지로 대부분 유실된 도성 유물 중 사진으로만 전해지던 약 3.5m의 ‘풍천원 석등’도 작은 모형으로 재현돼 태봉국 문화의 깊이를 다함없이 보여준다. 





“사실 태봉국역사체험관은 남북 공동 발굴로 성터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졌어요. 일반 전통 한옥처럼 보이지만 현대식 공조시스템을 갖춘 어엿한 전시관이죠.” 취재를 동행한 신동우 주무관(철원군청)의 안내로 체험관에 들어서자, 긴 복도를 가득 채운 4개의 대형 영상 디스플레이에서 궁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복도 양 끝으로 태봉국의 시작과 끝을 담은 제1전시실과 분단의 역사 속 철원을 소개한 제2전시실이 꾸며져 태봉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을 돕는다. 특히 제1전시실의 디오라마관에서 상영하는 미디어 아트는 철원의 과거를 되짚고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보는 뜻깊은 시간을 선사한다. 





공원 남쪽 깊숙이 국내 최초로 세워진 궁예 사당, 선양관이 자리한다. 2022년 영정 봉안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문을 연 순간 코끝에 은은한 향내가 풍겨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역사학자들의 고증과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궁예왕 영정. 단종, 이사부 등 역사 속 위인의 영정을 그려온 전통 인물화의 대가 동강 권오창 화백의 손끝에서 완성돼, 2024년 11월 문체부 표준 영정 101호로 지정되며 그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


다시 민통선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밖으로 스치는 광막한 평야, 황금빛 들녘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자니, 과연 이곳이라면 성을 쌓아 태평성대를 꿈꿀 법도 하다는 생각이 울연히 일어난다.





태봉의 기억을 품은 철원.

분단의 아픔을 딛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는 궁예왕 역사공원.

한반도 평화의 궤적이 다시금 이곳에 선명히 새겨지고 있는 듯 하다.



철원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 철원군 홍원리 703-8번지 일원. 문의 033-450-4748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은 노동당사 앞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출발하는 무한궤도열차버스를 타고 약 2시간 동안 월정리역과 역사공원을 탐방하는 철원평화안보투어 상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민통선을 통래해야 하기에 조기 예약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