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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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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강원인: 김영미 산악인
VIEW.31
: 조은노
사진 : 주민욱 본지 객원 작가
남극현지사진 : 김영미



특별한 강원인

산악인 김영미 대장을 만나다!

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소속





영하 35도의 남극 70일, 100kg의 썰매, 1,786km 횡단

한국인 최초,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4번째

남극 끝까지 한 걸음,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2025.1.17. 12:13(칠레 현지 시각). 

한국인 최초로 남극대륙 단독 횡단에 성공했다. 평창 출신의 산악인 김영미 대장이 69일 8시간 31분이라는 대장정을 완료한 순간이자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4번째로 남극대륙 단독 도보 스키 횡단을 완성한 탐험가가 되었다. 2024년 11월 8일, 남극 내륙 해안가 허큘리스 인렛(Hercules Inlet, 고도 160m)에서 출발한 그는 남극점(남위 90°, 고도 2,835m/1회 보급)을 거처 해안 끝 레버렛 빙하(Leverett Glacier, 고도 약 100m)까지 1,786km를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견뎌내며 100kg의 썰매를 끌고 걸었다.


이에 앞서 2023년에는 51일 동안 남극점까지 1,130km를 걸어 무 지원 단독으로 도달, 화제를 모았었다. 이 길이는 이어도 섬 끝부터 백두산(2,744m)까지 직선거리와 동일한 거리라고 한다. 이미 2002년 국내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7대륙 최고봉 완등, 2013년 네팔 히말라야 암푸 1봉(6,840m) 세계 초등, 2017년 시베리아 바이칼(724㎞) 호수 단독 종단 등 일일이 명기할 수 없을 정도의 이력을 보유한 국내 대표 산악인이다.


지난 6월 23일 강연을 위해 춘천을 찾은 김 대장을 상상마당에서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 편집자 주(註)





Q. 남극에서 돌아온 지 6개월 남짓한데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네. 아직 피로감은 남아 있고 체력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건강은 좋아요. 이제 좀 글이 읽어져요. 거의 80일 가까이 혼자 지내서 귀국 후 ‘말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예상한 일인데도요. 남극보다 도시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 뭐든지 빠르게 체감되어서 적응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얘기를 듣는 것 조차도요. 남극에서는 손톱이 안 자라요, 먹은 게 없어서. 느리게 자라는 게 느껴질 정도죠. 그곳에서 이미 기본 체력 이상을, 어쩌면 미래에 쓰일 것도 끌어서 당겨썼다 싶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서 휴식을 잘해야 해요. 체력 회복도 단계적으로 해야 하고요. 먹는 것도, 운동도요. 점점 나아지고, 회복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약속한 일을 하나씩 진행하면서 정상 궤도로 진입해, 일상으로 복귀 중입니다. 




Q. 선자령, 강릉 해안 등 도내에서도 자주 훈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이고, 친구도 있으니까요. 설악산도, 추억도 있죠. 또 강원 트레일 러닝 대회 (TNF100강원: 김 대장이 코스 디렉터로 경포~대관령 옛길~선자령~경포에 원점 회귀하는 100km의 절경 루트를 설계했다) 도 매년 열리니까요. 논스톱 산악 마라톤 대회인데 저에게 맞는 훈련 코스를 만들어서 향상도 측정에도 적합한 코스예요. (동해안에서 타이 어를 끌고, 평창 일원에서 동계 훈련을 했다)




Q. 전문 산악인으로 시작은 언제인가요? 

기억하는 순간부터 이미 산을 올랐던 것 같아요. 알고 계시듯이, 평창에 자란 곳이 사방 팔방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덕분에 언제부터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네요. 전문 등반이라고 하면, 1999년 강릉대 산악부 입회 후에 접했다고 봐야죠.




Q. 30년간 한계에 도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기가 있었을까요. 

특별한 동기나 이유는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전혀 불가능해 보일 수 있는 일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해볼 만할 수 있고, 시도하지 않아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듯이, 그런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죠. 저의 경우는, 20대에는 정말 많이 갔어요. 경험을 쌓기 위해서. 소위, 닥치는 대로랄까, 팀 등반은 기회가 쉽지 않아요. 첫 원정부터 23년 동안 원정 등반을 38번 갔습니다. 1년에 200일을 나가 있었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최근에 와서야 2~3년에 하나씩 큼직한 등반을 하죠.


아무튼, 어느 순간에 ‘걷던 길을 계속해서 가야겠다’라는 다짐은 분명하게 했었던 것 같아요. 삶의 정답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여러 이유로 이제껏 걸어 온 거죠. 돌이켜 보면, 강릉대 산업공예과에 섬유 디자인전공으로 입학해서 대학 생활이 답답해서 산에 갔던 건데 잠깐 낯선 길로 들어섰던 우연이 계속 연결된 거죠, 지금까지.


산의 능선이 정상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삶도 그렇더군요. 열심히 해내려 노력하다 보니 견디는 법을 배우게 됐죠.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나, 계획한 대로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들, 모두 소중했어요. 주어진 순간을 즐거워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단 하나의 후회도 없이.


이렇게 특별한 시간을,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어서,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에너지와 대자연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기회를 부여받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제공 김영미

제공 김영미



Q. 이번 남극 횡단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을 꼽는다면요? 

준비가 제일 어렵죠, 이번만이 아니라 항상요. 

히말라야 등반과 남극의 수평 등반은 전혀 달라요. 쓰는 근육도, 필요한 장비도 완전히요. 대부분 현장에서 겪는 직접적인 어려움에 대해 궁금해하죠. 바람이나 블리자드(blizzard), 화이트아웃(whiteout) 같은. 그런데 특수한 자연환경 조건은 당연히 알고 선택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첫발을 디디기까지 이뤄진 준비 과정이 더 힘들고 그만큼 중요해요. 전체 일정은 아주 세밀하고 촘촘해야만 하죠. 오차 없는 마스터 플랜을 위해서는 자료 조사 선행이 필수예요.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고요. 정말 만만치 않거든요. 국내에는 자료도 드물 뿐만 아니라, 극지에서 사용하는 장비조차 살 수 없어요. 


남극에서 신는 스키 부츠 주문 메일을 노르웨이로 보냈더니 한국의 첫 고객이라면서 ‘보내기 어렵다’라는 답이 왔어요. 비일비재한 일이죠.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훈련, 필요한 장비 확인과 구매, 구체적인 비용 산출, A부터 Z까지 어느 것 하나 경중의 차이 없이. 철저한 준비만이 위험과 위기를 맞닥뜨릴 확률을 낮춰주니까요. 계획이 완벽할수록, 한계를 좀 더 끌어올리고, 계속 밀어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져요. 





Q. 그러면 이번 남극 여정은 언제부터, 얼마나 오랜 시간 준비하셨나요? 

사실상 10년이 넘어요.

2025년의 남극대륙 단독 도보 스키 횡단은 남극 여정의 마지막 프로젝트예요. 처음부터 횡단이 최종 계획이었죠. 2013년에 목표를 설정하고 자료 조사를 시작했거든요. 총 3단계로 첫 번째가 2017년 시베리아 바이칼호 종단이었고, 2년 전 남극점 도달도 과정의 하나였죠. 이번에는 내륙의 해안가(inner coastal) 허큘리스 인렛에서 출발해서 남극점을 경유해 레버렛까지 약 605km를 더 갔어요. 생각해 보면, 2004년에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 4,892m) 등정을 하고 하얀 수평선을 보면서 ‘다시 여기에 온다면, 저 끝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겠구나!’ 했는데 그때가 수평의 등반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Q.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먼 미래는 아직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의 남극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여전히 진행형이에요. 남극 횡단이라는 프로젝트에 맞춰 설계한 10년이라는 시간에 마무리 마침표를 찍지 않았어요. 내 등반의 완성은 경험을 재생산하고 다시 순환하는 것이에요. 굉장히 먼 곳, 누구나 갈 수 없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을 직관한 경험을 그림, 혹은 언어로든,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는 것, 거기까지가 남극의 여정 마무리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 책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이란 주제로 일간지 연재를 시작했어요. 남극 횡단하면서 매일 한 줄 자구를 남겼어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마지막 문장이 끝까지 한 걸음이었어요. 그간 해왔던 훈련이라든가, 경험, 장비와 얽힌 사연, 과거와 현재 이야기도 정리 중이죠. 책상에 앉아서 남극의 여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사 귀환을 해서 돌아온 지금이 얼마나 평화로운지요. 아직은 충분히 누리고 싶네요. 그러고 나서는 지금까지처럼 걷던 길을 계속해서 걷겠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또 한 걸음씩 나아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