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겨울은 양미리의 계절
속초 양미리

12월 속초항.
해안을 따라 산책로, 낚시터,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한 노점이 늘어선 항구는 혹독한 계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기찬 삶의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매년 이맘때 항구는 겨울 바다의 귀한 손님 '양미리'를 맞이하는 어부들과 인부들의 뜨거운 노동과 속초를 찾은 관광객들의 미식의 향연으로 꽤 북적입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전,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 기운을 머금은 속초항.
항구는 귓불을 에는 듯한 고추바람만이 매섭게 흐릅니다.
'배가 언제쯤 들어 오려나'
고요 속에 모여든 인부들의 묵묵한 기다림 이어집니다.
동천에 솟은 붉은 햇살에 항구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 무렵,
오들오들 추위와 싸우던 이들은 이른 새벽 수평선 가까이 나갔던 어선을 맞이할 준비를 마칩니다.

마침내 아침 햇살을 가르며 항구 어귀로 어선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입니다.
밤바다의 수고를 짊어진 채, 항구에 서둘러 몸을 맡기는 어선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오매불망 양미리를 기다려 온 이들의 표정에 익숙한 기다림과 조업에 대한 설렘이 교차합니다.

배가 정박하자마자 곧 힘차게 그물 당기기가 시작됩니다.
어부들의 손끝, 그물 속에 한가득 몽글몽글한 양미리가 물을 튀기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장의 풍요로움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분주한 작업에 오래 세월 이어져 온 숙련된 리듬이 스며듭니다.
어부들은 그물을 쭉 당겨 바닥에 늘어놓고,
그 사이사이로 인부들이 자리 잡고 앉아 그물에 박힌 양미리를 조심히 떼어냅니다.
말 그대로 '손발이 척척'.
숙련된 손끝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상처 하나 없이 그물에서 떨어져 나온 양미리들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 정교한 속도와 능숙한 움직임에 경이로움이 터집니다.

쉼 없이 이어진 작업 속에 찬찬히 흐르는 항구의 시간.
어느덧 중천으로 향하는 해를 등지고 하루의 수고를 대변이라도 하는 듯
한편에 포개어진 양미리들이 소복이 산을 이룹니다.
한 시간가량 흘러 그물은 제 모습을 찾고,
인부들은 마지막까지 남은 양미리가 있는지 살뜰히 그물코를 살핍니다.
이제 겨울 바다가 건넨 선물, 싱싱한 양미리를 모아 시장에 내보낼 차례.
경매에서 구해온 양미리는 곧장 항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난전으로 향합니다.
"양미리 20마리에 도루묵 4마리 더해 3만 원!"
가게마다 울려 퍼지는 정겨운 외침이 시장을 가득 메웁니다.
연탄 화기를 가득 머금은 드럼통 위에 석쇠가 올려지고,
그 위로 갓 잡은 양미리들이 일렬횡대로 나란히 자리합니다.

날렵해 보이던 양미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제법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타닥타닥 양미리가 보기 좋게 그을려지고,
어느새 구수한 구이 냄새가 코끝에 묻어옵니다.
연탄 온기에 얼었던 몸은 노곤해지고,
통째로 입안을 가득 채운 양미리의 고소함에 정신마저 황홀해집니다.
혹독한 겨울, 마치 바다의 수고를 다독이듯 주어진 풍성한 겨울의 맛.
12월에서 1월, 강원 동해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따뜻한 겨울 풍경.
지금 강원은 양미리의 계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