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무용의 대중화를 꿈꾸는
윤혜정 단장을 만나다
강원자치도민 누구나 예술을 누리고,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가치 실현의 추구.
강원의 고유성을 담은 차별화된 콘텐츠로 도립예술단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문화예술 텃밭을 일구고자 고군분투해온 문화예술단의 핵심 축 역할을 해온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
지난 2022년 7월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창작 무용극 ‘강호’. 이틀 공연에 만석의 관객을 모으는 성과를 거두며 무용단의 입지를 단숨에 전국 순위로 끌어올린 이는 바로 속초 출신으로 당시 8년째 단원의 내실을 다지고 이끌며 상임안무자로 수장 역할을 맡았던 윤혜정 예술감독이었다.
2024년 1월 서울시무용단장으로 옮겨가기까지 그가 해온 일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강원 출신 한국무용 명무들과 도립무용단이 공동 참여한 유(류)파별 춤 전 기획 공연, 창단 이래 가장 심도 있는 전통무용으로 호평받았던 ‘무(舞)의 무아(無我)’ 앙코르 무대까지. ‘강원 춤 여행’, 기획 공연 ‘불휘’, 창작 기획공연 ‘창작 공감’, 대전 한여름 밤 댄스 페스티벌,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기념 강원 & 제주 교류 공연까지. 오롯이 한국 춤을 평생 그려온 그의 감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서나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노력을 알아준 화답일까. 올해 초부터 해외에서 낭보가 터졌다. 제1호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 인류 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무용단의 작품 ‘일무(One Dance)’가 지난 1월 20일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뉴욕 댄스 & 퍼포먼스 어워드(베시 어워드)’를 수상했다. 한국 국공립 예술단체의 작품으로는 처음이다.
춤꾼으로서의 그는, 무형유산 21호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춤 전수자이자 서울시 무형유산 제45호 한량무 이수자, 김백봉 춤 보전회 이사, 월륜춤보전회 회장 경력이 있다. 지방무용단의 서울 무대 진출 성공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남기고, 서울시무용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레퍼토리 공연의 전회차 매진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계에 한국무용을 알리는 데 한몫하고 있는 속초 출신의 그를, 특별한 강원인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註)

Q. 서울시무용단의 예술감독이자 단장으로 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2024년 2월에 자리를 옮겼으니까요. 첫해에는 아무래도 서울시무용단의 고유 특성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난해는 본격적으로 감독으로서 방향성을 드러냈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서울시무용단은 한국 창작 춤의 산실이라고 불리며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무용단으로서 단원과 시민의 자부심도 있고 또 역할도 있었으니 조금 더 다양하고, 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관점에서 작품을 구상하게 되더군요. 하는 일이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무게 또한 비교할 수 없는 일이긴 한데도, 역시 관객의 수요와 시선을 주는 주체가 달라지니 고민이 깊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Q. K-한류를 타고 춤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진 듯싶은데요.
그런 면에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막 부임했던 시점이 마침 무용단이 새롭게 주목받는 시기였어요. 50년의 명성을 되찾는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창작 한국무용의 독보적인 위치’라는 키워드가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k-한류 붐을 타고 세계에서 국악이 회자하고 팝 댄스와 한국 춤도 그 흐름을 탔죠.
덕분에 지난해 4월 첫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던 ‘스피드’가 꽤 호평이었죠. 전석 매진이었죠. 11월 미메시스 공연도 전회차, 전석 매진으로 다들 놀랐습니다. 미메시스는 교방무, 한량무, 소고춤, 장검무, 살풀이춤, 승무, 무당춤, 태평무를 재창작한 작품으로 멈춤의 미학이 있는 전통 춤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는데 의도가 적중한 거였죠. 한해에 신작 두 작품이 매진된 사례가 서울시무용단 창단 이래 처음이었다고 하더군요. 인기몰이와 흥행까지 이뤘으니 무척 기뻤죠.
사실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던 터라 꽤 고심했거든요. 예술감독으로서 해보고 싶었던 부분을 한껏 욕심냈다고나 할까요. 재정적으로나 시스템, 구성 요건이 다 갖춰져 있는 상황인데 과감한 시도를 해야죠. 지난 2년은 오로지 예술감독으로서 작품을 구성하면 되는 시간이었거든요. 타악기와 전자음악의 협업을 했죠. 국악 그룹 SMTO 무소음의 황민왕,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프랑스 출신 음악가 해미 클레멘 세비츠도 섭외했죠. 모래시계 형태의 대형 오브제도 설치하고 LED 영상과 라이브 연주로 삽입했는데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진 거예요. 재연을 요청하는 후기가 많아서 단원들도, 세종문화회관 운영진도 만족했죠.

Q. 새로운 레퍼토리, 창작, 참 부담스러운 단어들입니다.
그럼요. 하지만 우리 같은 예술 종사자들은 크로스오버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창작의 영역이란 항상 새로운 도전을 요구받는 분야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해요. 소위 날 것의 감각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숙명이죠. 그래서 그림을 보거나 뮤지컬, 대중음악, 국악,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찾거나 춤에 관해선 많은 공연을 직관하려고 해요. 필요충분조건인 거죠. 다행히 요즘은 정보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라 시선만 조금 돌려도 의도에 적합한 작품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Q. 도립무용단에서의 8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쉬울까요. 돌이켜보면, ‘보람 있는 순간들이었다’ 싶습니다. 2016년 1월이었어요. 대학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지 26년 만에 이뤄진 화려한 귀향이었던 셈이죠. 강원을 대표하는 무용단을 맡게 됐으니까 고향 속초에 계셨던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의욕도 넘쳤지요. 내심 ‘강원의 이름을 전국에 알려보자’ 이런 마음이 있었거든요.
국립무용단에서도 최연소 주연, 최초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또 2000년도에 창단해 몇 년간 운영하며 다양한 부침을 겪었던 ‘부리푸리무용단’의 경험, 서울종합예술원 무용과 전임교수로서의 활동을 모두 녹여봐야지 했습니다. 공립 예술단의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으로 개인이 아닌 공공 문화예술이 가져야 할 방향성, 문화예술 행정이 지향해야 할 가치, 단원의 운용과 관객 반응에 대한 책임까지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Q. 춤꾼으로서 삶이 50년 가까이 됩니다.
정말 50년이네요. 유년 시절 무용을 하고 싶었던 어머니가 속초에 처음 등장한 무용학원에 절 보냈는데 그때가 5살이었어요. 처음 춤사위를 접하고 제 인생이 결정된 거죠. 무용에 빠져들어서 고집을 피웠죠. 예중, 예고도 없는 곳에서 일반 고교생으로 학원에 다니며 전국 대회를 출전했죠. 얼마 전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당시에 성적 유지를 조건으로 내거셨지만, 경희대 무용학과에 입학했을 땐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셨는데 아버지의 지지는 저를 일관되게 무용가의 길을 걷도록 지탱하는, 제 인생을 관통하는 주춧돌이었습니다.
대학 내내 교수를 목표로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며 춤과 공부에 매진했다가 졸업과 동시에 춤꾼으로의 삶을 선택했던 국립무용단 입단,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교 강사를 거쳐 도립무용단을 맡았을 때 생각했죠. 춤꾼으로 해보고 싶었던 무대가 이제 만들어졌다고. 그런데 요즘 다시 그 당시와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춤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이 머무르는 지금, 호시절이 찾아왔다고.
Q.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실까요?
한국 무용은 느리고, 정적이며, 고요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지난 2년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거든요. 아직은 여기에 집중하려고요. 현재에 충실히 하고자 해요. 올해야말로 마음속 모든 것을 표출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어요. 우선, 속도감 있고 가변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레퍼토리 ‘스피드’를 앙코르 요청에 힘입어 5월에 다시 무대에 올려요. 또 서울굿을 모티브로 한 창작 춤 ‘무감서기’를 오는 9월 초연해요. 단원들의 DNA가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힘껏 해볼 작정이에요. 지금은, 무대에서 앙코르 박수를 받는 단원들을 보면서 행복한 순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