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닫기
2026. 04
Travel
고성 청간정을 만든 사람들과 자연
: 이대로(강원 고성군)
사진 : 박상운, 전영민 강원특별자치도 대변인실



독자 기고




아내와 춘천에서 이곳 고성 천진리에 제2의 새터를 튼 것이 어느덧 4년이 되었다. 

동해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 해서 주저함 없이 정했다. 여름은 춘천에서 농사일, 겨울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휴식하며 춘천을 왕래한다. 


새터의 이름은 휴(休), 천진(天津)은 하늘나루터, 청간정은 관동수일경(關東秀逸景). 

새터에서 천진해변 10분, 청간정 20분, 천진낭만 거리를 아내와 천진난만의 가슴으로 수 없이 걸었다. 자찬이지만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작년 3월, 청간정 자료실에서 우연히「관동팔경 청간정 시문」책 한 권을 저자로부터 받았다. 총 167수의 한시에는, 조선의 문장가 허균과 그의 스승 이달, 임진왜란의 민중 영웅 서산대사, 북벌론의 중심 허적, 태산가를 지은 양사언 등이 망라되어 있었다. 청간정의 명성은 이 문인들이 만든 업적이리라.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러다 올해, 이곳에서 휴식하며 책의 해제를 읽다가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청간(淸澗)의 옛 이름은 청간(靑間)이다.”였다. 그 이름의 변천 과정이 궁금해 저자를 찾아갔더니 고성군지 6권 파일을 흔쾌히 주셨다. 모임 때문에 춘천으로 온 나는 밤을 새워 고성과 청간정에 몰두했다. 이유는 내가 개명했기에, 이름을 고친다는 것은 공동체와 개체의 운명을 새로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료편 세종실록지리지에 “청간(淸澗)의 옛 이름은 청간(靑間)이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靑間은 자연의 푸른 공간을, 淸澗은 물줄기와 계곡의 감각적 이미지가 사전적 해석인데, 바뀐 때와 과정은 찾을 수 없었다. 동음에 삼수변(⺡)만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 중, 천진리의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눈이 확 밝아지는 대목이 나왔다. 


본래 이름이 건진리(乾津里)였는데 천재지변(양간지풍-양양과 간성에 부는 바람, 지금의 놉새바람, 2019년 고성 산불이 금방 떠오른다.)으로 곤경에 처하자 건(乾)자는 마른다는 의미로 좋지 않아 조선 말엽 천진(天津)으로 바꾸게 되었다 한다. 주역 건괘의 乾은 하늘이다. 글자는 다른데 뜻이 같은 절묘한 작명으로, 문인들의 정치적 장치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청간은 동음이의어로 삼수변(⺡)을 더해 본뜻을 살리면서 천재지변 불을 물로 대항하려는 공동체 의지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청간정의 역사로 유추해 보았다.

 


청간정 최초 시문이 고려 명종 때 문신 김극기(1150-1204)인 것을 보면 청간정의 역사는 고려 이전까지도 소급할 수 있다. 그 사이의 자연재해 기록을 알기란 어렵지만, 청간정은 조선 1560년 간성군수 최천이 중수(重修)한 이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84년에 불타 없어진 것으로 끝난다. 최소한 7백여 해를 버틴 것이다. 이것이 靑間을 淸澗으로 개명한 이유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부정하긴 더 어렵다. 


이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이 현 위치로 재건, 1953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중수되었고, 중수기 날짜가 1953년 5월 10일로, 휴전협정이 7월 27일인 전쟁 중에 제1군단장 이형근 장군에게 중수를 명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청간정은 표지 기능이 바뀐다. 지금까지 문인이 이때부터는 무인(武人)이다. 청간정은 북위 38.25°, 낙산사 인근 38선 표지석 이북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공간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청간정은 없다. 청간정 중수는 국군통수권자로서 북진통일의 의지였다. 그리고 그 의지로 1954년 화진포 김일성 별장 대척점에 자신의 별장을 포진했다. 화진포는 전쟁이란 인재(人災)의 불을 자연의 물이 균형 유지를 위해 무언의 힘을 겨루는 청간정의 현대판이다.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이 관동수일경(關東秀逸景) 시판(詩板)을 이승만 대통령 현판 맞은편에 게판(揭板)했다. 


결국 청간정 개명의 시원은 알 수 없었으나, 이 땅을 몸으로 읽어온 민초들의 강한 생존의 의지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자연재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중에도 세운 그 의지가 징표다. 

청관정으로 가는 관동수일경(關東秀逸景)의 낭만가도가 운명을 다시 쓰려는 나의 현재 진행형의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