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기행문
삼척항에 발을 디딘 순간, 바다는 이미 한 편의 문장이었다.
항구에서는 특유의 비릿함과 디젤 냄새를 실은 바람이 불었다. 반면 눈으로 담는 동해는 놀랍도록 푸르고 단정했다. 오늘의 길은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약 4.6km 남짓의 해안도로, 이름부터 근사한 이사부길이다. 지역민에게는 ‘새천년해안도로’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히기도 했는데, 그런 수식은 막상 길 위에 서면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눈앞의 풍경이 이미 증명하게 될 테니까.
이사부길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단색이 아니었다. 햇빛이 부서지는 각도마다 코발트와 비취색이 번갈아 나타났다. 검은 바위는 그 색을 고스란히 받아 미묘한 빛깔로 반짝였다. “푸른 동해를 따라 걷는다”는 말은 흔하지만, 이사부길에서는 그 말이 이상하게 새로웠다. 바다는 옆자리에 앉아 나란히 달리는 친구처럼 가까웠고, 때때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손에 닿을 듯했다.

도로 옆으로 사람이 다니는 데크와 자전거도로가 나 있었다. 얇은 민소매 싱글렛 차림으로 달리는 러너가 종종 보였다. 경사진 길을 따라 달리기가 힘들 법도 한데 러너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운전하고 있던 나도 차를 세워두고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기분이 든다.
이사부길의 가운데쯤에서 분위기는 한 번 더 달라진다. 소망의 탑과 해상스카이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망의 탑에 달린 청동종.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종을 울렸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랑이 더 오래가길, 건강이 더 버텨주길, 그리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길. 동해는 묵묵한 표정으로 소원을 들어주었다. 사람들의 소망은 맑은 종소리로 퍼져 나갔다. 하늘을 향해 조심스레 모은 손을 닮은 소망의 탑과 잘 어울리는 소리였다.

소원을 빌고 나면 자연스레 발길은 해상스카이워크로 향한다. ‘바다 위를 가볍게 걷는다’는 낭만적인 문장보다, ‘용기를 내어 걷는다’에 가깝게 발에 힘이 들어갔다. 스카이워크는 절벽 끝에서 바다 쪽으로 출항하려는 거대한 배를 닮은 구조물이다. 어찌나 거대한지 가까이서는 한눈에 담아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 감각이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철골로 만든 선체가 절벽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가듯, 스카이워크는 바다 쪽으로 과감하게 뻗어 있었다. 투명한 강화유리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깊이’로 다가왔다. 순간순간 몸이 흔들릴 때마다 “여긴 정말 바다 위”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짓궂은 관광객 한 명은 강화유리 위에 누워 자신의 담력을 과시했다. 감히 그 장난을 따라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바닷바람에 몸이 식은 나는 카페로 몸을 옮겼다.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거친 파도가 거품을 내며 일어난 뒤 사그라졌다. 온기가 도는 창가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스카이워크에서 긴장한 모양이었다. 아찔한 스카이워크와 편안한 카페. 바다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적절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부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의 심장은 조용히 뛰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동해가 내게 하려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였다. “괜찮아, 너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사는 게 지칠 때면 내게로 와.” 나는 분명히 들었다.
파도는 쉼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난다. 바다는 사람에게도 그런 리듬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삼척을 떠나기 전, 나는 한 번 더 동해를 바라봤다.
해가 진 바다는 여전히 짙푸르고, 여전히 넓고, 여전히 역동적이었다.
이사부길은 ‘아름다운 해안도로’이기 전에, 마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조금 더 다부진 표정으로 여행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