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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Diary of the Gangwon
삼척,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글ㆍ사진 : 권나경(대전광역시)



독자 기고_생활수기



오래전 가을인생의 항로가 크게 바뀐 적이 있다

잔잔한 바다 위를 유유히 항해하던 배가 비바람을 맞고 길을 벗어나 바다 위에서 한없이 떠돌아야 했다

결국은 상처투성이가  채로 작은 바닷가 마을에 닿았다.


지인이 강원도 삼척의  바닷가에 마련해  집이었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낡고 허름한 집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 갈매기 소리에 잠을 깨고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아침이면 느지막하게 일어나 밥을 욱여넣고마당을 거닐고한숨을 뱉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날을 보내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쯤에서야 그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아늑한 해안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낮은  사이 나란하게 자리 잡은 다홍빛 지붕들.


그리고 사람들.


마당을 벗어나 마을 산책을 시작한 이른 아침 포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생선 경매가 한창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아저씨  분이 집에 가서 구워 먹으라며 고등어  마리를 건네줬다

 나간 구경꾼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덕분에 그날은 고등어구이로 아침상을 차려서 맛있게 먹었다.






어느 날엔 경매가 끝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머니를 만났다

낡은 목장갑이  젖도록 손주 먹일 꽃게를 손질하던 할머니는 처음  여행자에게 당신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 놓으셨다

아마도 속마음을 들어줄 누군가가 간절했었나 보다

할머니는 대화 도중 주름 깊은 이마를 찡그리며 쓸쓸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가끔 포구 뒤쪽 횟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가 있었다

사장님은 혼자서도 먹을  있도록 매운탕이나 찌개를 끓여 주며 하얀 민들레 무침 같은낯설지만 맛난 반찬들도 내어 주셨다

매운탕도 반찬도 어찌나 맛났던지 아직도  맛이 생각난다


바닷가 마을에서 가을을 보내며 시나브로 상처가 아물었고덕분에 일상으로 돌아올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겪은 포근한 기억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그해 겨울 다시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도착한 안타깝게도 보일러가 고장  있었다

거실 수첩에 적혀 있던 보일러 기사 연락처로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문 앞에서 서성이던  우연히  아주머니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알고 보니 바로 뒷집에 사는 분이셨다.


 이후로 아주머니는 내가 밥도 제대로   먹는  같다며 임연수어 구이나 맛있게 무친 나물 등을 가져다줬다

어느 날은 당신 집으로 초대했고 어느 날은 함께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자며 불러냈다


이듬해   번째로 찾았을 때엔 아주머니가 호미를 들고 오셨다

함께 냉이며 쑥을 캐러 다니면서 미처 가보지 못했던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볼  있었고아주머니는 길가에  작고 알록달록한  이름이 송엽국이란 것도 알려 주셨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이고 싶어서외로워지려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도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낡은 여행 가방을 끌고 낯선 바닷가 작은 집으로 걸어가던  뒷모습이 가끔 그리워진다

바람이  때마다 뒷마당에서 서걱대던 신우대 소리며 자장가 같았던 파도 소리와 잠을 깨우던 갈매기 소리도 그립다.


가끔씩 반찬을 나눠주던 뒷집 아주머니이른 아침 경매장을 어슬렁대던 나에게 고등어를 건네준 아저씨손주에게  꽃게를 손질하며 당신의 삶을 들려주던 할머니도 여전히 그립다.


동해보다 서해를해돋이보다 해넘이를 좋아하던 내가 동해바다와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그리워하게  

순전히 낯선 여행자에게 무심한  친절을 베풀던 바닷가 사람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