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월정사 공양간에 스님 한 분이 들어서자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속세 나이로 일흔한 살. 갓 고희(古稀)에 접어든 눈매는 평온하고,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기운이 선연했다.
그때 알았다. 음식은 사람의 기운까지 바꾼다는 것을.
‘사찰음식 제1호 명장’이자 넷플릭스 요리 대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2’에서 화제를 남긴 선재 스님의 음식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화두를 던졌다.
무엇을 먹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먹는 음식이, 정말 당신을 위한 약인가?

# 제철 나물로 차려낸 ‘산사의 밥상’
‘청정한 땅이 주는 풍성한 음식 재료를 품은’ 강원의 자연 예찬으로 시작한,
철학을 담은 사찰의 음식은 역시나 담백한 상차림을 절제한 조리로 완성했다.
봄나물 김밥, 봄나물 장떡, 평창 메밀묵 구이.
재료인 쑥, 머위, 곰취, 세발나물, 메밀묵은 모두 평창에서 나는 것들이다.
봄철 최고의 식자재로 쑥과 머위를 꼽았다.

“봄은 자연이 활기를 되찾는 계절인 동시에 사람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시기예요.
봄이 되면 꼭 세 번은 먹어줘야 하는 나물이 쑥과 머위예요. 쑥은 따뜻한 성질을,
머위는 찬 성질을 가졌고 쓴맛이 나지만 겨울 동안 쌓인 노독을 빼 주는 역할을 해요.”
“쑥과 머위는 맛이 쓰고 강해서 그냥 먹는 게 쉽지 않아 쌀로 중화하기 위해 떡을 만들어 먹는다”라며
시연회인 이유로 이날은 김밥과 우리 밀로 반죽한 장떡을 부쳐냈다.
메밀묵은 들기름을 번철에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 찬 성질을 가진 메밀에 따뜻한 기운을 가진 들기름을 입혔다.
조리는 단순했고, 동작은 간결했지만, 정성이 가득했다.
재료 각각의 특성을 살려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이야기는 따스했다.
조리법은 단출하지만, 중심에는 ‘제철’과 ‘몸’이 있었다.

# 요리는 모든 생명과 소통하는 일
“제철이란 많이 나는 때가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는 시기”라며,
요리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하나라고 했다.
이 음식은 약이 되는가?
“요리하는 사람은 자연과 인간을 음식으로 연결하는 통역사와 같습니다.
재료의 성질과 먹는 사람의 몸 상태를 읽어 ‘약’을 짓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에요.
체질에 따라 내 몸에 맞게 먹어야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됩니다.”
음성에 실린 진심이 전해졌을까.
참가자들 저마다의 모습은 조심스럽고 손끝에 정성이 담긴 듯 보였다.
향긋한 나물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번지고 마침내 화사한 꽃밭 같은 봄나물 밥상이 곳곳에 차려졌다.

# 사찰음식이 인기를 얻는 이유
사찰음식은 지난 2025년 5월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계종은 체계적인 학술 연구를 통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에게 재료 본연의 맛을 알게 하는 사찰음식은 특별한 건강식이 될 터이다.
흔하고 소박하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은 음식.
재료 준비에서 조리를 거쳐 음식 섭취까지, 그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수행과 같은 ‘음식’.
‘쉼’이자 ‘휴식’ 같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제철을 담은 음식을 찾고, 그 맛을 느끼는 기분 좋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음식이 주는 만족과 위로를 경험하는 일.
한 끼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건강, 평화, 지혜가 담겨 있는 듯했다.

# 한 끼의 음식에 담긴 우주의 생명
39살. 간 경화 말기 판정을 받고 ‘음식이 약이라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생각했고, 약이 아닌 것을 하나씩 버리다 보니 식습관을 통해 1년 만에 완쾌한 기적의 경험이 ‘음식은 곧 치유이자 약’이라는 명제를 남겨주어, 선재스님의 사찰음식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재료는 땅, 물, 바람, 햇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온 우주의 생명을 먹는 것이죠.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들고, 오늘 먹는 것이 내일의 나를 결정합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사십니까.”
음식은 체질을 바꾸고, 건강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마침내 인생을 바꾼다는 것을 먼저 터득한 사람이 건네는 다정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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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지난 4월 11일 평창 월정사에서 열린 이 ‘강원 산사에서 특별한 미식’은 강원관광재단이 주관, 온라인으로 총 1만 1천101명이 접속하며 370대 1의 경쟁률을 기록, 단 20초 만에 매진됐다. 이날 전국에서 찾아온 34명의 참가자는 사찰음식 시연과 전나무숲길 걷기, 싱잉볼 명상 체험과 차담까지 먹고, 걷고, 듣고, 음미하며 쉼을 위해 쉼 없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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