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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Nature & Travel
원주 용소막성당
글ㆍ사진 : 김시동 본지 객원작가




톺아보는 근대 건축 시리즈 1

사람과 공간이 만나는 말씀의 성당 


강원유형문화유산 ㆍ 지정일 1986.5.23 ㆍ 건립시기 1915년




근대건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가 빚어낸 유산으로,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숨 쉬며 공존하고 있다. 최근 레트로 감성을 찾는 여행자들과 시민, 전문가들의 노력을 통해 그 문화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으나, 지역의 소중한 건축 자원을 기록하고 복원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필자는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아키비스트이자 사진가로서 지역 근대건축의 흔적을 읽어내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건물을 살피는 행위를 넘어 우리 지역이 간직한 장소의 기억을 현재와 미래로 잇기 위한 작업이다.





# 시간의 견딤으로 지켜온 공동체의 성지

언제 찾아도 변함없는 아름다움과 계절의 아늑한 빛을 머금은 용소막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원주와 제천을 잇는 5번 국도를 따라 금대리 치악재를 넘으면 강원자치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신림면(神林)에 들어선다.


‘신성한 숲’이라는 지명이 품은 의미를 되새기며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 용의 형상을 닮았다는 용소막마을에서 백년의 시간을 품은 단아한 성당을 마주한다. 용암리의 넓은 벌판을 굽어보며 자리한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성당은 그 존재만으로도 장소의 영성을 자아낸다. 순례자들은 수려한 건축미에 매료되고, 성전을 수호하듯 둘러싼 다섯 그루의 거대한 느티나무로부터 백년 전의 기억을 읽는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이 조화를 이루고 뾰족하게 솟은 종탑과 균형 잡힌 건물이 한 폭의 수채화다. 때마침 엄숙한 미사가 진행 중이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진 인연의 순간일까.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장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벽돌 한 장에 깃든 신심과 수난의 역사

용소막성당 터에는 전설이 있다. 본래 성당이 들어설 곳은 옛 중앙선 신림역 인근이었으나, 어느 날 나타난 수염 긴 노인이 “30년 후 이곳으로 철마(鐵馬)가 지나갈 것이니 건너편 산 밑에 지으라”는 조언을 남겼고, 그 말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성당이 세워졌다는 이야기다. 예언처럼 훗날 성당 터 앞으로

기차가 지나가게 되었으니,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용소막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며 공동체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1915년에 건립된 이 성당은 횡성 풍수원성당(1888년)과 원주 주교좌 원동성당(1896년)의 뒤를 잇는 강원도 내 세 번째 성당으로, 모진 풍파를 견디며 지역 신앙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소중한 건축 유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민초들의 정성과 서구 건축 양식의 만남

현재의 벽돌조 양옥 성당은 1914년 부임한 제3대 주임 시잘레(Chizallet) 신부가 직접 설계했다. 신자들은 마을 가마터에서 직접 벽돌을 구워 날랐고, 뼈대가 될 소나무 기둥들은 장마철 불어난 하천의 물살을 이용해 운반하며 정성을 다했다. 이러한 헌신 끝에 1915년 가을, 마침내 330㎡ 규모의 장엄한 성전이 완공되었다.


종교개혁 이후의 서양식 고딕 건축양식의 일반적인 형태와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회색 벽돌조 성당이다. 정면 중앙에 높은 종탑을 갖춘 네모난 모양의 평면으로 된 붉은 벽돌 구조이다. 창의 모양은 모두 아치형이며 테두리는 회색 벽돌로 장식했다. 전형적인 8각형 제단과 내부의 목조 기둥, 낡은 널빤지마루는 근대건축의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아름다움과 반원형 아치, 창의 형태 그리고 창 테두리의 벽돌 장식이 아름답다.





# 역사의 상흔을 딛고 지켜낸 원형의 가치

용소막성당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증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종(鐘)과 제단의 철제물이 공출되어 일본의 야만스러운 전쟁 도구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군의 군수 창고와 마구간으로 사용되는 모욕을 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사목 문서들이 불타 없어지는 시련을 맞았다. 전쟁으로 인해 부서진 마루 바닥과 총탄 자국들로 엉망이 된 성전 내부는 1952년 부임한 11대 주임 이종흥 그리산도 신부가 보수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 한국 성서 번역의 요람, 선종완 신부 유물관

성당 옆에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성서 번역과 연구에 몰두한 선종완(라우렌시오,1915 ~1976) 신부의 삶을 기리는 유물관이 있다. 선종완 신부는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구약성경을 번역한 인물로 근대 천주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성서학자다. 세계 각국의 성경과 함께 그가 평생 작업한 번역 및 교정 원고 뭉치, 그리고 번역 작업을 위해 직접 고안한 삼단 책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성서 번역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는 공간이며, 우리의 현재가 과거의 역사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장소이다.




# 과거와 현재의 걸음이 만나는 치유의 길

용소막성당은 멈춰진 유산을 넘어 오늘날의 발길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길의 중심이다. 이곳은 천주교 순례길인‘님의 길’ 중 ‘선종완 신부길’의 종착지이자, 순교자들이 미사를 위해 배론성지까지 오갔던 ‘성사길’의 시작점이다. 또한 치악산 둘레길 7·8코스가 만나는 지점으로 과거 선조들의 고난과 현대인의 위로가 조우하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신앙의 선조들이 걸었던 고난의 길과 현대인이 위로를 얻기 위해 걷는 둘레길이 만나는 이곳은, 과거와 현재의 걸음이 만나 대화하며 깊은 울림을 주는 진정한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온전한 계절의 향기를 느끼며 영혼의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시간의 견딤으로 지켜온 이 성스러운 공간으로의 여정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