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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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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신월리 달뜨는마을과 꽃풀소 이야기
: 전영민 강원특별자치도 대변인실
사진 : 박상운 강원특별자치도 대변인실



폐교에서 국내 최초의 소 생추어리가 되기까지



“소를 살리려고 시작한 일이, 결국 마을을 살리는 일이 되었어요.”

위기에 처한 생명을 품겠다는 인제 산골 마을의 작은 선택은 소멸해 가던 마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은 거대한 기적이 되었습니다. 도축 위기에서 구출한 소들과 그들을 따뜻이 품어준 신월리 사람들. 문 닫힌 산골 학교가 생명 존중의 상징인 ‘생추어리(Sanctuary, 동물보호보금자리)’로 거듭나기까지 고군분투한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 생명과 공존이라는 눈부신 희망의 대서사시를 써 내려간 신월리 마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제의 첩첩산중, 푸른 보석처럼 맑고 청량한 기운을 품은 신월리(新月里)로 들어서는 길은 묘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산과 호수가 빚어낸 지형이 마치 초승달을 닮아 ‘달뜨는마을’이라 불리는 마을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방 소멸의 파도 앞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1973년 소양댐 건설로 정든 고향이 수몰되는 아픔을 뒤로하고 산비탈 고지대로 터를 옮긴 주민들. 50여 가구, 80여 명의 주민 중 절반 이상이 65세를 훌쩍 넘긴 적막한 산골 마을은 놀랍게도 지금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생명력과 청년들의 푸릇한 생기로 요동치고 있다. 이 거대한 기적은 버림받은 여섯 소에서 시작했다.




# 벼랑 끝 생명들, 달뜨는마을에 불시착하다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옛 폐교. 비탈길을 따라 올라간 뒷동산에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이며 여유롭게 풀을 먹는 홀스타인 소들이 보인다. 


머위, 메밀, 창포, 부들, 엉. 

어엿한 이름을 가진 이들은 한때 도축장의 서늘한 칼날 앞에 서 있던 생명들이었다.


2021년, 동물권 시민단체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은 인천의 한 불법 개 농장 옆에서 도살 위기에 처한 홀스타인 수소 여섯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들꽃처럼, 들풀처럼 강인하게 살아남으라는 염원을 담아 ‘꽃풀소’라는 다정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문제는 이 덩치 큰 소들이 평생 살아갈 안식처를 찾는 일.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청년들의 간절함이 DMZ 평화생명동산 정성헌 이사장의 도움과 인제군 로컬투어사업단의 연계로 신월리에 닿았다. 구조된 후, 인제 서화면 하늘내린목장에서 1년 3개월간 따뜻한 셋방살이를 하던 소들에게 영구적인 안식처가 마침내 생겨났다.


“처음엔 마을 어르신들이 소를 반려동물로 키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청년들이 진심을 담아 연 마을설명회를 듣고 마음을 움직이셨어요. 남들은 엄두도 못 내는 일,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그 마음이 참 귀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얼마 전 우리 마을 인구가 드디어 100명을 넘었어요. 꽃풀소와 청년들이 이주해 온 덕분이에요.” (김경림 달뜨는마을 신월리 체험마을 사무장)





# 폐교의 화려한 부활, ‘달뜨는보금자리’와 ‘풀무질’

신월리 주민들은 마을의 새 식구를 위해 2019년에 문 닫은 신월분교 터를 30년 동안 소 보금자리로 기꺼이 내어주었다.

꽃풀소들이 마을에 정착하자, 자연스레 청년들의 이주도 뒤따랐다. 소의 평균 수명에 맞춘 ‘30년 업무협약’은 쇠락하던 마을에 청년들이 뿌리를 내리겠다는 다정한 약속이 되었다. 이주를 앞두고 안타깝게도 미나리가 급성 패혈증으로 숨을 거두는 슬픔도 있었지만, 남은 다섯의 꽃풀소는 이제 어엿한 신월리의 식구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지자체도 팔을 걷어붙였다. 인제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 26억 원을 투입해 청년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주거 시설을 조성했고, 2024년 신월리가 행정안전부 ‘생활권 단위 로컬 브랜딩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국내 최초 비건 마을 건립이라는 원대한 꿈에 닻을 올렸다. 그렇게 버려진 폐교는 국내 최초의 소 생추어리 ‘달뜨는보금자리’로, 낡은 교사(校舍)는 복합문화공간 ‘인제 풀무질’로 소생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책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풀무질은 1986년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문을 열어 민주화 운동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2019년 동물해방물결 전범선 이사장이 인수한 뒤, 비건 청년마을 조성 사업과 맞물러 버려질 위기의 책들을 이곳에 가져와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서고를 가득 채운 책들은 지역 공공도서관과 전국 각지의 후원자(살리미), 학자들로부터 기부받았다. 동물을 구조해 살리듯, 헌책을 순환 시켜 ‘책살림, 마음살림, 마을살림’을 실천하겠다는 청년들의 굳은 의지가 책장마다 촘촘히 배어 있다.





# 30년의 약속, 비건(Vegan) 촌(村)으로 피어나다

지금까지 신월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청년은 총 11명. 적은 수일지 모르나, 이들이 만든 파동은 거침이 없다.

마을 청년회를 번듯이 꾸리고, 달뜨는마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청년회장을 맡은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를 주축으로 ‘비거니즘(Veganism)’을 기반으로 한 로컬 브랜딩 사업을 펼치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마을 로고 아래, 꽃풀소 돌봄 체험과 비건 문화 체험 등 차별화된 체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적했던 마을에는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년에는 빵 굽는 청년 둘이 이사를 왔어요. 

연관 지원사업 덕분에 비건 베이커리(달빵, 달쿠기)를 개발해 팔 수 있었죠. 

꽃풀소 키비주얼을 활용한 포장까지, 축제에 방문하신 분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청년들은 로컬 브랜딩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농산물을 활용한 비건 음식을 개발해 자생적인 수익 창출에 나섰다. 이들의 감각적인 SNS 홍보는 마을 농산물 직거래와 체험관 숙박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마을 경제 활성화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3일, 달뜨는보금자리 개관식과 함께 마을 첫 커뮤니티 축제 ‘뉴문페스티벌(New Moon Festival)’이 열려 비건 플리마켓과 꽃풀소 영화제,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한때 우려했던 원주민과 이주 청년 간의 세대 차이는 기우일 뿐. 어르신과 청년은 한데 모여 마을의 내일을 이야기하고, 동물과 사람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다정한 내일을 함께 그려갔다.





# 에필로그: 공존이 빚어낸 아름다운 로컬 브랜딩, 소멸을 희망으로

“마을이 조화롭게 발전해나가길 바라요. 올해는 디지털한 방식으로 관계 인구를 모으고, 이분들이 커뮤니티로 이어져 마을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사업이 커지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변수도 많아지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청년과 어르신이 잘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소를 살리기 위해 시작된 청년들의 무한도전은 

그 낯선 진심을 넉넉한 품으로 안아준 신월리 주민들을 만나 

마을을 살리는 일이 되었다. 


지방 소멸 위기를 생명 존중과 공존이라는 따뜻한 방식으로 돌파해 낸 신월리. 

자연과 사람, 그리고 동물이 동등하게 호흡하는 새로운 공동체는 대한민국 로컬 브랜딩에 혁신적이고 감동적인 이정표로 자리 잡았다.

이제 막 서막을 올린 달뜨는마을이 앞으로 써 내려갈 또다른 기적의 이야기가 벌써 애틋하게 기다려진다.


문의 : 신월리 달뜨는마을 체험관. 인제군 남면 신월로 414. 033-461-8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