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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특별한 강원인
김상겸 스노보더를 만나다
: 조은노
사진 : 주민욱 본지 객원작가, 연합뉴스, 2018평창기념재단홍보팀



평창 봉평 들판을 달리던 육상 선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평균대회전 은메달리스트가 되다



올해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2월 8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대회 방송 생중계에서 캐스터의 흥분한 해설이 울린다. 

“맏형의 꿈 김상겸, 마지막 결승선까지! 피니시 라인 통과합니다. 

금메달 벤야민 카를이, 대한민국 첫 번째 메달, 그리고 올림픽 400번째 메달의 색깔은 은메달입니다!”

대한민국에 낭보가 타전됐다.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인근에 있는 리비뇨 스노우 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균대회전(알파인) 빅 결승에서 김상겸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44.41초 기록으로 주파, 0.19초 차이로 당당히 세계 2위로 등극했다. 37살의 나이로 4번째의 올림픽 도전 끝에 꿈의 시상식 무대에 오르게 된 그는, 당시 준결승에서 승리해 메달을 확보한 직후를 제외하고 시상식을 포함해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을 보이다가 출전을 마치고, 언론 인터뷰 중에 아내의 인내에 감사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선수의 은메달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개인 성적으로는 국내 최고령 메달리스트의 기록을 경신했으며, 한국 설상에서 역대 두 번째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또 한국 선수단이 동·하계 올림픽 대회에서 획득한 통산 400번째 메달이라는 값진 의미도 그의 것이 되었다.


2014년 소치 첫 올림픽 탈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16강 탈락, 2022년 베이징 예선 탈락.

3번 실패, 4번째 도전. 16년이라는 시간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그에게 우리는 환호했다.


하이원 스포츠단 소속으로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적인 지원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고,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도민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화답했던 평창 봉평 초중고교를 졸업한 그를, 특별한 강원인으로 지난 4월 중순 문화역서울284에서 만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네, 맞아요. 정말 빠르게 흐르네요. 인터뷰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재계약도 하고,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아직 부모님 얼굴도 직접 못 뵈었어요. 전화 통화만 했습니다. 귀국할 때 많은 취재진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메달을 땄다는 실감을 잘 못 했죠. 달라진 것을 잘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대외적으로 밀려오는 일들이 많아지고 보니 체감이 되더군요. 운동 선수에게 올림픽 메달이란 꿈 같은 일이잖아요? 이제 두 달 남짓 지났는데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요즘도 매일 운동은 하고 있지만, 실전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설상 훈련을 하기 위한 준비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천식으로 병원을 자주 가다 보니, 보다 못한 부모님이 운동을 시키신 거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육상을 했는데 꾸준하게 하다 보니까 건강도 좋아지고 중학교 3학년이 되니까 키가 178cm가 됐어요. 체격이 있으니까 다양한 운동을 했었는데 우연히 보드를 타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학교에 스노보드부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등록 선수가 전국에 300명도 안 되는 비인기 종목이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육상 80m와 멀리뛰기, 높이뛰기 선수로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힘을 쏟아내는 운동을 해왔던 터라 잘 맞았어요. 스노보드는 30~40초에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이죠. 그래서인지 성과가 빨리 나더군요. 2011년에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아시아 최초 금메달을 땄죠. 그땐 금방 무언가 될 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체육대를 졸업하고 나니 갈 데가 없는 거죠. 실업팀이 없었거든요. 국가대표에서 탈락하니까 한 달에 50~60만 원이던 수당도 끊기고 정말 막막했죠. 그래서 일용직 막노동을 했어요. 시즌이 끝나는 3월과 대표팀 선발전을 치르는 5월 사이의 4월 휴식기 중 약 20일은 막노동을 했어요. 훈련 기간에도 주말 중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뛰었죠, 닥치는 대로.





Q. 가족에게 감사를 전하는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예, 정말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아내를 언급하던 그 순간에 갑자기 먹먹해지는 거예요. 부상이 걱정돼서 생방송을 귀로만 듣는 아내와 가족이 생각났나 봅니다. 알파인(평행대회전 등)과 프리스타일(하프파이프, 슬로프스타일, 빅에어 등)이 부상 위험도가 좀 높은 편이니까요. 또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었는데 말씀하지 않았던 거예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었죠. 농사짓고 스키장 렌탈 숍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뒷바라지해 주셨거든요. 아버지 모습도 떠오르고 그랬죠. 또, 주변에서 도움을 준 많은 분도 스쳐 가더군요. 방송에서도 밝혔지만, 봉민호 감독님도 적금을 깨서 해외 전지훈련 비용을 대주셨죠. 묵묵하게 응원해 준 이 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니까요. 지금의 저는요.


되돌릴 수도, 포기할 수 없었으니 언젠가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한 지 24년 정도 됐는데, 힘든 상황을 좋은 결과로 보답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16년이란 긴 도전 끝에 얻은 성과를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Q. 16년이란 세월을 버티고 이겨낸 방법은 무엇인지요?

2019년 국내 첫 스노보드 실업팀이 창설되고 하이원 스포츠 소속으로 입단하면서 비소로 생계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훈련에 집중할 시간이 더 많아졌죠. 현 소속팀 입단 후에는 하루하루가 감사했죠. 온전히 훈련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이원에 입단하는 과정도 전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도 적지 않았고, 해당 지역 출신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단 초기에는 지역 내에서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처음 입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일을 알게 됐죠. 그런데도 저를 선택해 주었고, 그 선택으로 그동안 생계 부담에서 벗어나서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 지원 끝에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로 보답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도 국내에는 실업팀이 2개밖에 없어요. 대표팀에도 남자 다섯에 여자 한 명인데 실업팀 소속 선수는 4명이거든요. 아직도 여건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저변확대가 덜 되어있는 상태고요. 또 아무래도 눈이 점점 적게 오고 하다 보니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도 줄어들어 선수층도 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도전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예요. 저도 사실상 실업팀에 소속되고 나서야 현지 훈련 지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정신력 훈련 프로그램이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향기로 기운을 다스리는 아로마 요법을 받고 나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죠. 시합을 앞두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또 성적이 좋지 않아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도록 동요하는 마음을 누르고, 다음 시합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나만의 방식을 가질 수 있었어요. 제일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거죠. 





Q.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실까요?

4년 뒤 올림픽에 한 번 더 출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금메달을 노려보려고 해요. 세계 선수권과 월드컵에서도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려고요. 아직은 현역 선수를 할 수 있으니까 조금 더 도전해야지요.


할 수 있는 때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을 하고, 그 이후는 천천히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4월 21일에는 해외 전지훈련이 잡혀있고요, 5월부터 대표팀 훈련도 있습니다. 7월에는 개인 설상 훈련, 10월에는 대표팀 설상 훈련이 잡힐 겁니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중간중간 계속 눈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설상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제는 절박함에서 벗어나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현재 그의 거주지는 용인. 하이원 스포츠단 소속으로 당시 올림픽 시상식에 올라 큰절로 국민에게 한국식 인사를 하고 로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도민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화답했던 김 선수는, 지난 3월 31일 고향 평창을 찾아 2018평창기념재단을 방문해 자신이 올림픽에서 착용한 헬멧, 고글, 장갑, 경기복, 보드를 기증했다. 누군가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앞으로 동계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4년 뒤 올림픽 경기에서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