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650.3m 봉황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내려온 바람이 홍천강 지류인 내촌천과 몸을 섞는 용포 마을.
그림 같은 하안단구가 펼쳐진 마을에 들어서면, 어느새 코끝으로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막걸리 내음이 훅 끼쳐온다. 19년간 매달렸던 치열한 도시의 대기업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 2015년 김경찬 대표와 구은경 이사 부부가 새롭게 뿌리를 내린 터전 '두루전통양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넘치는 향기다.
김경찬 대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건넨 말에는 두루양조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행복하고 건강한 술을 향한 부부의 고집은 원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 두루양조에서 태어나는 모든 술은 철저하게 '메이드 인 홍천'을 고집한다.
술맛의 뼈대가 되는 누룩을 위해 부부는 땀 흘려 직접 밀 농사를 짓는다. 발효의 마법을 부리는 효모 역시 실험실의 것이 아닌, 양조장 주변 자연에 자생하는 풀과 나무에서 직접 채취해 배양한 '야생 효모'를 쓴다. 여기에 생수 공장을 차려도 좋다는 정부의 극찬을 받은 지하 100m 암반수를 끌어올려 술을 빚으니, 자연을 통째로 병 안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조장 앞뒤로 펼쳐진 논밭은 국화, 쑥, 엘더베리 등 각종 허브가 자라나는 부부만의 거대한 '술 실험장'이다.


"잘못 만들어진 술이 나오면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호기심을 갖고 학문적으로 파고들어요."
이들의 양조는 직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실패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분석해 온 부부는 지난해 나란히 양조학 박사 학위 취득해, 진정한 '박사 양조장'으로 거듭났다. 지독한 탐구열은 8종에 달하는 주류 면허 취득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소주, 약주, 청주, 과실주, 리큐르, 증류식 소주, 기타 주류까지. 1인 양조장 규모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지역 특산주 라인업을 갖춘 곳은 전국을 뒤져봐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부부의 실험 정신은 두루양조의 다채로운 술안에서 만개한다.
술헤는밤. 홍천 쌀과 물을 1:1이라는 파격적인 비율로 섞어, 전통 이양주 방식으로 빚어낸 무감미료 막걸리다. 상업 양조에 전통 기법을 완벽하게 녹여낸 첫 사례로 업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홀리엠(Holy M). 붉은빛이 맴도는 홍천 오미자를 활용한 하이볼용 리큐르. 세련된 풍미와 압도적인 활용도로 젊은 층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효자 상품이다.
용 소주 시리즈 & 용 24. 전문 심마니가 험산에서 채취한 마가목 열매를 더해 쌀 특유의 깔끔함과 밀 누룩의 묵직한 바닐라 향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특히 청룡의 해 한정판으로 출시된 '용 24'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증류주 부문 대상을 거머쥐며 그 압도적인 품질을 증명했다.
물론 귀농 후 흙을 만지고 술을 빚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역 특성상 다양한 곡물을 구하기 힘든 원재료 수급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직접 시험 재배에 성공한 뒤 인근 농가에 계약 재배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단절을 상생으로 바꿔냈다. 1인 양조장이 겪는 고질적인 마케팅과 판로 개척의 어려움 앞에서도 그는 정부의 실질적 지원과 선배 귀농인들과의 연대,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의 힘을 강조하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10년, 눈코 뜰 새 없이 끓어오르는 술독 앞에서 청춘을 보낸 두루양조의 시선은 이제 '지역과의 상생'이라는 더 넓은 바다를 향해 있다. 올여름 두루 양조는 양조장 일대에서는 허브 채취와 칵테일 제조, 대자연 속 산책이 어우러진 색다른 관광형 주조 프로그램을 준비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용포 마을에의 전통주 한잔은 홍천의 맑은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양조 부부의 철학을 함께 들이켜는 셈.
두루두루 행복하고 건강한 취기가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