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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Feature Article
여름 강. 인제 내린천 포트홀
: 전영민
자료출처 :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사진출처 : 한국관광콘텐츠랩


인제 내린천에 새겨진

지질 역사 기록

8월 지질 생태 명소

내린천 포트홀

 

인제를 두루 흐르는 내린천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화강암 바위 위에 동그란 구멍들이 여기저기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찻잔만 한 것부터 사람이 들어갈 만큼 깊은 것까지 크기와 형태도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파놓은 흔적일까, 운석이 떨어진 자국일까. 이 구멍들은 사람이 만든 것도, 특별한 재난의 흔적도 아닌 오직 내린천 물길이 오랜 시간 새겨넣은 자연의 조각이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 흐르는 내린천

2014년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로 지정된 내린천은 하천 침식 지형과 한반도의 지형 발달 과정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질 유산이다. 구멍 난 바위로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사실 이 포트홀들은 한반도의 지각이 어떻게 솟아올랐고 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는지를 증명하는 '살아 있는 지질 문서'이자 '자연 실험실'이다.

 

홍천군 내면(內面)의 ‘내’와 인제군 기린면(麒麟面)의 ‘린’을 따서 이름 붙여진 내린천(內麟川)은 남서쪽 산악지대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른 뒤 소양강 상류와 합류한다. 산줄기의 경사와 지각 변동의 영향으로 일반적인 하천 방향과 다르게 흐르는 '역류형 하천'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원형 그대로의 암반하천으로 보존돼 왔다. 야외 지질 학습장은 물론, 여름철 래프팅과 리버버깅 등 하천 레포츠의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포트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혈(甌穴), 돌개구멍이라 불리는 포트홀(Pothole)은 하천의 회전하는 물살(와류, Vortex)이 만들어낸 침식 지형이다. 하천 바닥 암반의 작은 홈에 갇힌 모래와 자갈이 강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회전하면서 마치 맷돌처럼 바위를 갈아내는데, 연마석이라 부르는 이 자갈은 지속적으로 바위를 깎아내는 '마식(Corrasion)’ 작용을 반복한다. 수천 년 이상 마식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들어가던 홈이 넓어지고, 더 큰 자갈이 들어와 강하게 회전하면서 마침내 항아리처럼 매끄럽고 깊은 구멍 포트홀이 만들어진다.

 

내린천의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 기반암 위에는 다양한 크기의 포트홀이 분포해 있다. 특히 일부 포트홀 내부에는 암반을 갈아내던 둥근 자갈들, 연마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수천 년에 걸친 '자연의 드릴'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린천 포트홀이 들려주는 한반도의 지형 진화사

우리나라의 여러 하천 중에서도 내린천은 우수한 보존 상태와 규모 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계곡의 경사가 가파르고 유속이 빠르며 단단한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어 포트홀 형성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추진되었던 대규모 내린천댐 건설 계획이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의 보전 운동으로 1998년 백지화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던 귀중한 지질 기록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지질학자들은 포트홀을 과거 자연환경의 변화를 담은 '지질학적 기록체(Geological Archive)'로 다룬다. 포트홀이 형성된 위치와 높이를 분석하면 과거 강물의 수위와 유속, 흐름의 방향을 역추적한다. 서로 다른 높이의 바위에 남아있는 포트홀은 강물이 계단식으로 바닥을 절개하며 내려온 흔적인 '하안단구(River Terrace)'의 형성 단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내린천 포트홀은 강물의 흐름뿐 아니라 한반도 지각이 수백만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담고 있는 자연의 연대기다.

 



흐르는 강은 오늘도 바위를 깎는다

최근 조성된 내린천 무장애나눔길 데크는 암반 구간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덕분에 어린이와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포트홀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크기별 포트홀의 형성 단계와 내부의 연마석, 암석의 틈(절리)을 함께 관찰하며 침식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물이 줄어드는 갈수기에는 암반 전체가 드러나 지질 탐방의 적기로 꼽힌다.

 

내린천 포트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지만, 지구의 시간 속에서는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쉼 없는 변화가 이뤄진다. 바위 위에 조용히 새겨지는 한반도의 새로운 지질사, 내린천 포트홀을 지속해서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