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사지에 보물이 다섯 개가 있다.
이 절은 언제, 누가 창건하였으며 절의 이름은? 왜 폐사가 되었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이 내촌 물걸리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동창 마을이라면 ‘아~ 거기’ 하며 반색한다. 큰 재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물거리(物巨里)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물걸리(物榤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곳은 영서 내륙 교통의 중심지였고 강을 이용해 물품을 운송하던 곳이다. 서석, 내촌, 인제 일부 지역의 특산물과 대동미를 수집 보관하고 서울에 있는 경창으로 운송하던 창고가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 자연스럽게 장마당이 형성되고 주막거리와 마방이 들어섰으며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니 큰 절이 있었을 것이다.
물걸사지에 남아 있는 석재와 돌부처, 탑을 보면 규모가 아주 큰 절이 있었을 것이다.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조각 양식을 지닌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42호), 대좌( 보물 제543호), 광배( 보물 제544호), 삼층 석탑 (보물 제545호) 다섯 개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석조여래불의 얼굴과 나발은 마모가 많이 되었다. 머리가 크고 투박한 석조 비로자나불의 광배는 깨졌으며 왼발을 위로 올린 항마좌를 취하고 있고, 불 대좌는 온전하다. 탑은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탑 오른쪽에는 팔각의 석불 대좌와 장대석,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절의 기둥을 받치고 있던 주춧돌이나 축대 또는 기초로 쓰였음 직한 돌들이 길옆 축대가 되었다.
대부분 절에는 금을 입힌 불상이 모셔져 있고 석불은 귀하다. 금동불은 화려하면서도 위엄을 갖추고 있어 근접하기 어려운데 석불은 이웃집 아저씨같이 편안해 보인다.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는 돌의 성질은 찾기 힘들고 무채색이라 부드럽다. 격식을 갖추지 않고 내 가슴속에 있는 기도문을 끄집어내면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은 모습이다.
불교는 우리나라의 고유 토착 신앙을 수용하여 대중화를 이룬 융합 종교다. 절은 신앙을 초월하여 정신의 안식처이며 울타리같이 든든한 버팀목이고 화합의 장이 된다. 동양 최대의 불상을 만들고 동양 최대의 절을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재를 내버려두면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신앙의 잣대로만 재지 말고 석불들의 격식에 맞게 절을 복원하는 것이 옳은 처사라고 여긴다.
땅의 넓이가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홍천군은 문화재의 보고요, 예술품 전시장이고, 청정지역으로 노후생활이나 휴양지로서 가장 알맞은 곳이다.
아담한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법문을 들으며 욕심을 내려놓고 노후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