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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Letters to the Gangwon
철원을 걷다, 학저수지의 아침을 만나다
글ㆍ사진 : 이옥경 작가



독자기고



철원의 사계절은 경계가 없다.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고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여름인가 싶으면 가을, 가을인가 싶으면 어느새 또 봄을 품은 겨울로 이어진다. 연둣빛에 초록이 더해지고 세상의 모든 빛깔이 물들어 마침내 순백이 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서로서로 어깨를 비비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철원은 사계절을 두루 만나 봐야 하는 곳이고, 언제 어느 때든 경계 없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아름다움은 아픈 역사를 증언하는 길로 이어진다. 

철원이 남한의 최북단 지역이자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고,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무장 지대를 품고 있는 전 세계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상징성을 보여 주는 문화생태탐방로 ‘쇠둘레평화누리길’이다. 철원의 순우리말 ‘쇠둘레’에 평화와 통일을 소망하는 뜻을 담은 ‘평화누리’를 붙여서 만든 이 길은 기도하듯 걸어야 하는 길이다. 

   


노동당사(이옥경)



제1코스 ‘한여울길’은 승일교-고석정 관광지-마당바위-송대소-직탕폭포-무당소-칠만암에 이르는 총연장 11km로 국내 유일의 화산 강인 한탄강 기암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와 도보 여행길이다. 제2코스 ‘금강산 가는 길’은 용담마을-수도국지-소이산-노동당사-동철원역-한다리-도피안사-학저수지-덕고개-대야잔평을 잇는 총연장 16km로 논두렁길, 산등성이 군 교통로, 신작로 등 비포장길이 많다. 제3코스 ‘근대 문화유적길’은 노동당사-철원역-월정리역-태봉국 도성에 이르는 길이지만 일부 구간이 민통선 안에 위치해서 지금은 걸을 수 없는 가상의 길이자 지난 시절 철원의 영화를 재현할 미래의 길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나는 ‘금강산 가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길 중간쯤에 있는 학저수지를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다. 이틀쯤 날을 잡아 작정하고 ‘금강산 가는 길’을 모두 걷기도 하지만 일정에 쫓길 때는 점을 찍듯이 학저수지에서 노동당사까지 걷기도 하고, ‘한여울길’의 직탕폭포까지 걷기도 한다. 내게 철원은 학저수지와 동의어인 셈이기도 하다. 학저수지를 따라 걷는 둘레길은 4.5㎞, 학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빨ㆍ주ㆍ노ㆍ초ㆍ파ㆍ남ㆍ보 7개의 코스를 지닌 철원무지개길이 원을 그리듯 이어진다. 

   


학수저수지(이옥경)


학저수지의 아름다움은 조붓한 흙길과 덱이 놓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온몸으로 알게 된다. 하늘과 구름과 산그림자, 새의 날갯짓, 풀꽃의 떨림까지 담고도 수면은 너른 호수처럼, 깊은 강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다. 학저수지의 일몰은 또 어떤가. 잔잔한 물 위에 거울처럼 드리워진 풍경, 그리고 그 위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 여기에 철새의 군무까지 더해지면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북극성을 중심으로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며 도는 별의 일주 운동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마니아도 많다고 한다. 


학수저수지(이옥경)

   

하지만 내가 학저수지를 찾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학저수지의 여명(黎明)을 만나기 위해서다. 어둠이 물안개에 젖어 드는 것일까, 물안개가 어둠을 걷어내는 것일까. 생명의 순환을 보여 주는 듯 물안개 피어오르는 학저수지는 가히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화려함이었다면 여명의 아름다움은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그윽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다. 저수지 가운데 있는 섬(조류 전망대)에서는 온갖 새가 노래하고, 우렁이가 사는 논에서는 개구리가 개굴개굴, 꽃잎이며 풀잎에 맺혔던 이슬은 또르르…. 학을 닮았다는 봉학산, 뱀 모양이라는 둔지산(뱀산), 개구리처럼 생긴 개구리산도 저만큼에서 정답다.

   

학수저수지(이옥경)



학저수지의 겨울은 철새들의 천국이다. 학저수지라는 이름처럼 약 1,000여 마리의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7,000여 마리가 넘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를 비롯해 고니(천연기념물 201호), 쇠기러기, 독수리(천연기념물 245호) 등 다양한 철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철원을 말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지질 명소인 한탄강 협곡을 따라 형성된 기암절벽과 빼어난 풍광의 주상절리가 빚어낸 천혜의 자연과 역사의 상흔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석정, 송대소, 순담계곡, 총연장 3.6km에 달하는 주상절리길, 그리고 직탕폭포에서 순담계곡까지 강물 위를 걸으며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총연장 8.5km의 한탄강 물윗길이 그것이고,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리는 직탕폭포와 현무암 돌다리의 아기자기한 풍광, 3단으로 장쾌하게 쏟아지는 삼부연폭포,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매월대폭포도 빼놓을 수 없다. 

   


직탕폭포(이옥경)



여기에 창건 당시 조성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과 삼층석탑(보물)을 품고 있는 통일신라 천년고찰 도피안사, 봄가을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고석정 꽃밭과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소이산 전망대 아래 끝없이 펼쳐진 철원평야의 풍요, 한탄강 협곡을 탐험할 수 있는 짜릿한 레포츠 래프팅, 은하수교 출렁다리와 횃불 전망대까지. 여기에 제2땅굴~평화 전망대~월정리역~노동당사를 잇는 ‘DMZ 평화관광’, 민통선 안에 있어 군인들의 인솔을 받아야 하는 용양늪 생태탐방, 북에서 놓다 만 다리를 남에서 완성했다는 승일교도. 

   


도피안사(이옥경)



모내기를 끝낸 봄이라면 논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 보시라. 하늘 가득 별이 총총 돋는 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마치 고향 집에 온 듯,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 주말에 은하수교 근처에서 열리는 ‘철원 DMZ 마켓’도 강력 추천! 청정 대자연인 철원 땅에서 농부가 직접 재배한 특산물과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DMZ마켓(이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