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태백은 자연과 역사, 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특별한 곳이다.
수려한 자연 환경, 산악지형과 함께 옛 탄광 산업의 흔적이 남아있어 자연 탐방과 산업 유산 투어가 동시에 가능한 고원도시이다.
그중 해마다 야생화 축제가 열려 주목 받는 곳. 산상의 화원인 만항재.
우리나라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해발 1330m의 고개. 야생화 단지로 유명한 이곳의 5월은 신록으로 눈부셨다.
꽃 피고 지고 나비 날고 벌떼 잉잉거리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꿈꾸는 언덕이랄까.

만항재 숲길체험(조정희 강원관광사진공모전)
처음 보는 족두리꽃. 착한 사람만 볼 수 있어서인가.
땅에 붙어 있는 꽃은 엎드려서 잎사귀를 제쳐야 그 오묘한 보랏빛 자태를 드러낸다.
쥐오줌풀은 쥐가 뿌리에 오줌을 눠서 이런 이름이 됐다니 참 억울하겠다.
그러나 예쁜 이름 대신 얼마나 시적인가.
바람난 여인이라는 얼레지는 왜 고개 숙이고 있는지. 이단의 사랑이 부끄러워서인가. 고개 들고 당당히 제 사랑 지키기를 -
자연의 신비는 들여다볼수록 경이롭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만항재 야생화(김영희 강원관광사진공모전)
도란도란 꽃들과의 시간.
살면서 세찬 바람이 불때도 있었던 나날을 헤쳐왔다는 생각.
그래서 오늘 이 꽃들 앞에 설 수 있는 나도 존재 자체로 충만한 꽃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빠진다.
오오, 나의 영감(靈感)을 일깨우는 만항재여 영원하라. 오늘의 빛인 인생이여 -
시에 다가가는 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연약한 듯 보이는 야생화의 강인함. 그 부드러움 속의 청초함. 높은 언덕에서 흔들리면서 지켜내는 음조들은 시와 닮았다.
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새로 알게 된 꽃을 오래 들여다보듯 그 이름을 기억하고 채집하는 일.
예민해진 촉감으로 흔들리는 꽃의 눈빛을 살피는 일은 설렘이다.
그리하여 이런 서정이 한 편의 시를 낳는다면 나는 바람 부는 만항재에서 얼레지처럼 바람 나고 싶다.
‘자연과 우리는 책. 너와 내가 만난 우리 모두는 바로 우주의 신비한 책’ 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검룡소로 향했다.
그날 나는 검룡소를 보고 느낀 감회와 벅찬 마음을 담아 '나의 은하, 검룡소'라는 한 편의 시를 낳았다.
<나의 은하, 검룡소>
지금도 그려진다
눈 덮힌 태백산 주목 군락지
두 눈에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한 세계가 펼쳐지던
천년 동안 땅에 묻힌 원시림이
검은 순금으로 깨어나던 곳
이제 암석 사이 용틀임하는
태고의 신비인 검룡소에서
내 마음의 발원지를 찾으리
생명의 젖줄 그득 채워가리
찰나의 숨결 불어넣는
폐 속 혈맥 따라 흐르는 들숨의 은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