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가에서 시작된 기적,
관계를 심어 마을을 살린 청년들
홍천 와썹타운
“저희가 만든 건 숙박시설도, 관광상품도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도시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죠.
그것이 지역 소멸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홍천군 서석면 풍암2리. 굽이진 산길을 한참 들어가 닿은 작은 산촌.
거리는 조용했고, 논과 밭 사이로 오래된 농가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조금 더 마을을 살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20~30대 청년들이 가마솥에 밥을 짓고 해가 지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하루를 마무리한다.
익숙한 농촌의 풍경 위에 새로운 삶의 방식이 겹쳐진, 보통의 시골과는 다른 낯설고 독특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조용했던 산골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지역 소멸이라는 오래된 과제에 도전장을 던진 청년 공동체 ‘와썹타운’(업타운) 덕분이다.
2021년 봄, 외지 청년 6명이 컨테이너 하나를 들고 마을에 들어와 당시엔 생소했던 '촌캉스'(시골 촌과 바캉스를 합성한 신조어)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청년만 1만 명, 그중 60명은 정착했다. 전국 61개 청년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 기관 표창을 받았으며 전국이 주목하는 성공적인 로컬 비즈니스 모델을 일궈낸 와썹타운, 이들의 출발은 거창한 사업이 아닌 한 가지 질문이었다.
"지역에서 사라진 것은 정말 인구일까?"

인구보다 먼저 사라진 관계
"지역 소멸을 인구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저희는 관계가 먼저 사라졌다고 보았습니다."
업타운 조현우 총괄이사는 지역 소멸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달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서울에서의 외식사업을 정리하고 대학 시절 9박 10일 동안 농촌봉사활동의 기억을 따라 학생회 다섯 명의 친구와 홍천으로 향했다. 청년들의 기획력으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목표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홉 마을에서 겪은 문전박대, 열 번째로 찾은 풍암2리 이장님이 흔쾌히 “한번 해보라”며 폐가 한 채를 내어주었다. 와썹타운의 서막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착 후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첩에서 풍암2리가 바로 10년 전 농활을 왔던 그 마을이었다는 것. 미처 알아보지 못할 만큼 크게 변해버린 마을과의 운명적인 재회는 오히려 이들의 다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반드시 이곳을 다시 살아나게 만들겠다"고

촌캉스가 아닌 관계를 만드는 플랫폼
많은 사람이 와썹타운을 촌캉스로 기억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것은 여행이 아닌 관계다. 도시와 농촌, 청년과 주민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농활을 1박 2일 버전으로 유쾌하게 비튼 ‘낭만촌캉스’가 만들어졌다.
‘청년 이장과 함께하는 컨트리타운’이라는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참가자들은 하루 동안 마을 주민이 되어 함께 밥을 짓고 농사를 돕고 식사를 준비한다.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서로의 고민과 이야기를 나눈다. 도심 속에서의 나이, 직업, 사회적 페르소나를 잠시 내려놓고 오직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소통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되는 경험, 와썹타운은 이를 '소셜링(Socialing)'이라 부른다.
"와썹타운에서 관계 에너지를 얻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에요.
농촌 주민으로서의 하루를 살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관계 형성이 큰 매력이죠."
이 특별한 경험은 계절마다 풍암2리를 찾는 청년들을 늘게 했고, 자연스럽게 장기 체류와 정착으로 이어졌다. 때마침 2023년 정부 청년마을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폐가와 폐공장을 활용해 숙박·체험 공간 11곳을 조성했다. 생활 인구 확대는 결국 60명의 청년 정착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진심으로 풍암2리 마을 사람 되기
처음부터 주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몰려드는 청년들과 노랗게 칠한 폐가, 시끌벅적한 분위기, 달라진 마을 풍경을 곱게 보는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결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마을 사람이 되려고 했을 뿐입니다."
와썹타운 청년들은 설득 대신 행동을 택했다. 폭설이 내리면 가장 먼저 제설 작업에 나섰고, 마을 회의와 마을개구리축제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어르신들과 여행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쌓아갔다.
특별한 전략은 없었다. 그저 마을 식구가 되겠다는 진심뿐. 굴러온 돌의 진정성 있는 땀방울에 박힌 돌들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제 풍암리 어르신들은 이 청년들을 외지인이 아닌, 친손주처럼 아끼고 챙긴다. 관계는 그렇게 천천히, 단단해졌다.

상생이 비즈니스가 되다
공동체만으로는 지역이 지속될 수 없다. 결국 정착을 위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 일자리와 소득이 필요했다. 와썹타운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청년과 주민이 공생하는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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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가 연 매출 10억 원의 신화를 쓴 '방앗간 막국수'다. 정착 청년 한승재 농부와 주민들이 함께 메밀을 재배하고, 마을 부녀회에서 만두와 부꾸미를 만든다. 여기에 청년들의 브랜딩과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100% 순 메밀 막국수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패션 브랜드 '몸빼' 역시 같은 구조다. 농촌의 상징인 몸빼 바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청년 디자이너가 기획하고 주민들이 봉제와 포장, 배송을 맡는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직접 모델로 나선 화보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청년은 기획하고 주민은 경험을 더하는 구조. 와썹타운은 지역 자원을 활용해 마을이 스스로 돈을 버는 상생 모델을 만들어냈다.

진정한 세대 통합, 사회연대경제를 꿈꾸는 ‘MXZ 프로젝트’
지난 7월, 또 하나의 큰 결실이 맺혔다. 행정 절차로 무산될 위기에 놓였던 ‘청년 공유주택’이 주민들의 협조로 완공됐다. 마을 이장이 주민들을 설득해 부지를 제공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정부 지원사업은 끝났지만 와썹타운은 청년(MZ)과 어르신(X)을 연결하는 'MXZ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어르신들은 평생 일궈온 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해 노후를 보장받고, 청년들은 시골에서도 서울 못지않게 주체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며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더 큰 비전은 전국이다. "홍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와썹타운을 거쳐 간 청년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져 또 다른 와썹타운을 만드는 것. 그래서 지역과 도시의 관계망을 촘촘히 연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지역 소멸을 막는 해결책이 될 거예요."
풍암2리에서 만난 청년들과 주민들은 지역을 살리겠다고 거창한 구호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밥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역을 살리는 일은 결국 거대한 개발사업보다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일이라는 사실.
홍천의 작은 산골 마을은 그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답을 조용히 증명해 가고 있다.

Tip. 와썹타운. 홍천군 서석면 아미산길 40-17. https://upptown.co.kr. 070-8841-7979. https://www.instagram.com/upp__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