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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People in Gangwon
박미령 재독 강원특별자치도민회장
: 조은노
사진 : 박상운, 강원특별자치도 아카이브



2026년 4월 1일.

이날 ‘폐광 지역’이라는 단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석탄산업 전환 지역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죠. 경제의 부흥을 일으킨 국가기간산업의 하나였던 석탄산업의 1989년 합리화 조치 이후, 탄광 지역이 급격하게 피폐해지자 1995년 「폐광 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후에 이 지역들을 불러왔던 이름이기도 한데요 강원특별자치도에는 유독 많았죠.


해외에도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1963년부터 독일로 파송한 광부 7,936명, 간호사 10,500명이 바로 그들인데요, 정부가 최초로 시도한 해외 취업 진출이죠. 파독(독일 파견) 광부·간호사로 불렸던 이들 중에 강원자치도 출신도 있었습니다. 현재 70~90대 나이로, 1세대로 불린 이들은 국가 간의 협정으로 해외 진출한 것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었죠. 


1세대 파독 간호사로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한 박미령 재독 강원특별자치도민회장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들어봤습니다. 

박 회장은 2026년 4월 25일 재독한인문화회관에서 제19회 도민의 날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했습니다.


– 편집자 ()




한국은 자주 오시나요?

예전에는 자주 오지 못하였으나 몇 년 전부터 어머니를 뵈러 매년 와요. 퇴직 이후부터죠, 올해 8월 2일(2025년 10월 1일 인터뷰 당시)에 *재독강원특별자치도민회(이하 재독강원도민회) 총회가 있었는데,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회원들이 요구한 일이 도청과 협의해야 할 사항이어서 방문했어요. 회원들은 6·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현재는 회원 모두 고령으로 현업에서는 물러났지만, 고향 발전에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미 돌아가신 분도 계시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는 항상 그리워하고, 방문하고 싶어 해요. 고국을 떠나 젊은 시절에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었던 우리의 고생과 헌신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또 다른 바람도 있거든요. 조금 더 우리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1966년부터 10,300~10,400명에 달하는 간호사가 독일로 왔어요. 그런데 광부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금 덜 언급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는 특수한 목적에 의해서, 해외 교민이 되었잖아요? 개인의 성취를 위한 유학이나 이민 사례와는 확연히 다르거든요. 오로지 일하러, 국가에서 선발해서 보낸 일꾼이었죠, 경제성장을 위한.


고국으로 돌아올 날을 정하고 떠난, 소위 외화벌이로 나선 그런 사람들이니까 서로 간의 아픔과 기쁨을 이해하고 나누는 관계 안에서 끈끈한 정은 두텁고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는 교포 사회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었죠. 강원도민회가 진행했던 청소년 연수 프로그램을 다른 도민회에서도 시도했는데 다 고향을 잊지 못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노력한 거지요.






타국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말해 무엇 해요. 재독 동포 사회는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 뿌리를 내리는 데 역할이 매우 컸어요. 특히 간호사는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자녀교육과 사회생활을 헌신적으로 감당했어요. 자녀 교육에 철두철미한 한국인 특성이 어디 가겠어요? 독일 현지 맞춤이다 보니 방식은 달랐지만, 성심을 다했죠. 2세들이 독일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애를 썼어요. 


수구초심은 말할 것도 없어요. 오죽하면 수백 명이 모여 대화하고 망향가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을 현지에 건설했을까요. 바로 에센에 건립한 재독한인문화회관인데요. 우리네의 상징적인 기념 광장이며 만남과 대화의 광장으로도 불리는데, 자부심의 결정체지요.



당시에 첫 월급이 9백몇십 마르크(Mark)였어요. 환율로 계산하면 한국 월급의 3배가 넘는 돈인데 최소 생활비만 남기고 돈을 전부 고국으로 보냈어요.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요. 동생들 학비나 생활비로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려니까 모은 돈이 없어서 집기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게 다반사였어요. 저도 마찬가지여서 어렵게 신혼을 시작했어요. 모두가 사연이 있는 인생사를 갖고 있죠.


작게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문화회관에는 이런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자료와 영상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어요. 역사의 한 페이지였던, 이런 기록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할 수 있지요.






회원 동포를 위해 중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재독 강원도민회는 2003년 3월에 창립됐어요. 첫 번째로 뜻을 모았던 사업이 고향 후배들을 초청하는 거였어요.

당시 남편이 초대 회장이었는데(인터뷰 당시 함께 도청을 방문한 남편 이유환씨는, 묵호 태생으로 1977년 파독 광부로 탄 캐는 광부이자 태권도 사범으로 독일 태권도계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재독 5~6대 태권도회장, 강원도 해외 명예 협력관, 1~2대 재독 강원도민회장을 맡기도 했다)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죠.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때였으니까요. 교육청에서 학생을 추천하면 도청, 강원랜드, 시도의회에서 일정 행사비와 항공료를 지원해 학생들이 견학을 오게 됐죠. 교민들은 현지 체류와 일정을 책임졌죠.



지금 돌이켜봐도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고향에서 청소년이 온다니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협조했지요. 2019년까지 16번을 진행했어요. 도청에서는 협력관 제도로 큰 도움을 주었어요. 12일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5개국에서 괴테 생가, 쾰른 대성당, 노트르담 사원 같은 곳을 다니는 역사 문화 탐방을 실시했죠. 홈스테이로 현지 생활을 체험하는 기회도 제공했는데 아직도 연락이 닿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에게서 “그때 연수가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꿈이 변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환경이 어려워서 해외 방문이 어려운 청소년을 초청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가능할지는 모르지만요. 또 더 늦기 전에 회원 간 교류도, 국내 도민과의 교류의 폭도 넓히고도 싶습니다. 독일에서 매년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국내에 알리고 싶어요.






재외 동포로서 K-콘텐츠 시대를 실감하나요?

그럼요, 실제로 체감해요. 기쁘고 자랑스럽죠. 정말 대단해요! 유럽에서 이제 한국인들은, 반가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외국인이 되었음을 체감한달까요. 독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 한국을 알지 못했고, 안다고 해도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로만 생각했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경제 성장에서 잃은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이 너무 심하고 자본의 격차도 심각한 것 같아서요. 그래도 고향 산천은 늘 그립고 언젠가는 돌아오고 싶은 곳입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독일 교포들의 역사가 조금 더 되새겨지고, 고향 땅을 자주 밟을 수 있는 건강이 오래도록 허락되길 소망합니다.





재독 강원도민회는 600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현재 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2003년 8월에 2003년 영월 언덕 분교 학생 6명을 초청, 유럽 견학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2004년 모범 청소년 15명을 모집해 7박 8일간 유럽 5개국 연수, 4차 때는 9박 10일, 7차는 청소년 국제화 마인드 함양 국외연수, 2019년까지 16차까지 진행했다. 또한, 매년 2명~4명의 장학생을 선발, 각 개인에게 500유로의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초, 강원도가 수해로 심각한 피해를 보자, 십시일반 지원금을 모아 2000유로 상당의 모금액을 전달했으며 코로나 시기에도 위로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