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기고
세상을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맛이 있다.
배가 고파서 생각나는 맛이 아니라, 그 시절의 풍경과 냄새, 사람의 온기까지 함께 되살려 주는 그런 맛 말이다.
내게는 강원특별자치도, 특히 평창과 정선 땅의 싱싱한 송어 비빔회가 그렇다.
어릴 적 살던 고향엔 송어양식장이 있었는데 워낙 비싸고 고급 어종이라 불리던 탓일까?
그 근처에서 가볼 수는 있어도 먹어 볼 수는 없었던 송어.
지금은 여러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송어는 연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어 담백하고 살이 좀 더 단단해서 좋다.
양어장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송어에 간장과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다. 그리고 양배추 등 여러 채소를 썰어 고추장을 섞고 콩가루를 뿌린 것을 곁들여 먹는다. 고소한 콩가루를 추가하는 이유는 송어가 지방이 적어 고소함을 더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그저 회에 채소와 콩가루를 버무린 민물고기 비빔 음식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젓가락을 드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아삭한 채소들의 식감은 강원도의 시린 계곡을 품은 듯 시원했고, 갓 잡아 올린 송어는 싱싱했다.
새콤하고도 매콤한 비빔회가 혀끝에 닿자마자 무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태백의 시리고 맑은 계곡이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그릇 속 오이와 채소는 아삭거렸고, 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다. 그 조화는 한 폭의 풍경화처럼 완벽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비빔회가 생각나는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창밖으로 보이던 푸른 신록, 텃밭에 가득하던 옥수수들, 맑은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함께 웃으며 젓가락을 들던 사람들.
송어 비빔회 한 그릇에는 평창과 정선의 여름이 담겨 있었고, 고향의 넉넉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속에 남아 있다. 어느 날 문득 지친 일상에서 평창이나 정선을 떠올리게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오대산의 웅장함이나 정선아라리가 아니다. 얼음에 살짝 올려져 냉기 가득하던 그 붉은 생선 한 점이다.
어쩌면 사람은 맛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맛에 깃들어 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창과 정선의 송어 비빔회는 내게 음식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느 여름날의 푸른 추억이다. 송어는 연어과 물고기로 하천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간 후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 ‘모천 회귀성 母川回歸性’ 어류라 한다.
이제 객지에 나와 수십 해를 살던 내가 이토록 강원도 고향 땅의 송어 비빔회를 최고로 치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강 母 川의 그리움이 아닐까?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가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산란을 하러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한다는 이야기.
올여름도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송어회를 찾을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나도 먼 타지로 떠났다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된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