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에 문화유산자료가 하나 더 늘었다.
금강산의 수려한 산세가 시작되는 첫 봉우리, 신선봉. 그 웅장한 품속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고성 화암사에 반가운 소식이 찾아들었다. 지난 9월 4일, 강원특별자치도가 '고성 화암사의 승탑군 및 탑비'를 강원문화유산자료로 공식 지정했다.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 깊은 산중에서 묵묵히 수행의 길을 걸었던 역대 고승들의 흔적이 마침내 그 묵직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화마를 견뎌낸 16기의 돌, 그 속에 새겨진 화암사의 시간
이번에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유물은 1874년에 조성된 춘담대사의 승탑과 탑비를 위시해 총 15기의 승탑과 1기의 탑비다. 승탑(부도)은 산사에서 정진하다 입적한 스님들의 삶과 가르침을 돌에 새긴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다. 화려한 목조 전각들이 세월의 풍파와 거듭된 화재 속에 스러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이 16기의 돌무더기는 화암사가 얼마나 굳건한 수행 공동체로 이어져 왔는지를 조용히 증명해 왔다.

묘탑의 의미를 넘은 예술품이자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은 승탑군. 원당형, 석종형, 원탑형 등 다채로운 조형미를 뽐내며 조선 후기 강원 동북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석조 미술의 정수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표면을 장식한 정교한 문양에서는 석공의 경건한 숨결마저 느껴질 정도다. 특히 조선 불교 인물사 연구의 귀중한 지표가 되는 탑비는 그 학술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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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의 중심에는 1874년에 조성된 춘담대사의 승탑과 탑비가 자리한다. 탑비에 기록된 춘담대사는 서산대사 청허휴정의 10세 법손으로, 석왕사 성지를 수호하는 선교양종 도총섭과 오대 금강계단 도원장을 지내는 등 조선 후기 불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의 법맥이 금강산 남쪽 자락의 이 산사까지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수바위 전설을 품은 미륵도량, 화암사
천년고찰 화암사는 우리나라 4대 미륵도량 중 하나로 꼽히는 명찰이지만, 그 위세에 비해 산세 속에 폭 안긴 소박하고 고즈넉한 자태가 오히려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찰 앞마당을 병풍처럼 두른 웅장한 수바위(쌀바위)는 화암사의 또 다른 명물. 객스님의 탐욕 탓에 바위 구멍에서 솟아나던 쌀이 뚝 끊겼다는 흥미로운 전설과 함께,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영험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지금도 간절한 소망을 품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화암사의 역사는 소실과 재건의 반복이었다. 1623년 대화재로 불탄 것을 1625년에 중창했고,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또다시 법당이 잿더미가 되었다. 지금 마주하는 사찰의 모습은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를 앞두고 전면 재건되었다. 그렇기에 화려한 전각들 너머 고요한 숲길에 자리한 승탑군은 화암사에 남은 가장 오래되고 진실한 흔적으로 다가온다.



Tip. 고성 화암사.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길 100. 033-633-1525. https://hwaam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