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기고
검은 골짜기의 다정한 맛,
태백·삼척의 물닭갈비
타지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강원도에 둥지를 튼 지도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내게 강원도는 겨울에 스키 타러 오는 곳에 타향에 불과했다. 하지만 계절이 열두 번 바뀌고 낯선 길들이 점차 익숙한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나는 이곳의 풍경 뒤에 숨겨진 진짜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낯선 이방인이었던 나를 진정한 강원도민으로 뿌리내리게 해 준 가장 특별한 계기는 다름 아닌 도내 곳곳의 낯설고도 따뜻한 음식이었다.
강원도 생활 3년 차에 접어들며 다녀온 미식 여행길, 태백과 삼척 도계, 정선 사북 일대의 탄광 지역을 지나다 우연히 접한 ‘물닭갈비’라는 이름은 내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외지인인 나에게 닭갈비란 무릇 매콤한 양념에 닭고기와 양배추를 넣어 철판에 볶아 먹거나 숯불에 구워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닭갈비인데 국물이 자작하다니,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 조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간 식당에서 나는 강원도 탄광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된 압도적인 음식을 만났다.
커다란 전골냄비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닭고기 위로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인 푸른 채소들이었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며 붉은 양념장이 국물에 퍼지면 먼저 아삭한 채소와 함께 우동이나 라면 사리를 건져 먹는다. 칼칼하면서도 깊고 깔끔한 국물 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어째서 닭갈비를 끓여 먹는가’에 대한 의문은 단번에 감탄으로 바뀌었다.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 속 부드러운 닭고기를 골라 먹고, 마지막으로 볶아 먹는 고소한 밥 한 숟가락까지 모든 과정이 즐거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를 진짜 매료시킨 것은 그 훌륭한 맛 뒤에 숨겨진 서사였다. 식당 한편에 걸린 옛 탄광촌 사진들을 보며 알게 된 물닭갈비의 내력은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했다. 칠흑 같은 지하 막장에서 온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고된 노동을 마친 광부들에게는 목구멍의 먼지를 부드럽게 씻어내 줄 따뜻한 국물이 절실했다. 귀하던 닭고기에 국물을 넉넉히 붓고 푸짐한 채소와 사리를 넣어 여럿이 배불리 나누어 먹던 지혜와 애환. 물닭갈비는 단순한 지역 별미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화의 그늘에서 묵묵히 땀 흘리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지탱해 준 진정한 ‘영혼의 음식’이었다.
타지에서 온 젊은 청년에게 물닭갈비 한 냄비는 강원도라는 땅이 품은 역사와 사람들의 온기를 일깨워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이제 나에게 강원도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직장이나 거주지가 아니다. 어두운 막장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빨간 국물을 함께 나누던 이들의 정이 숨 쉬는 따뜻한 고향이다.
바닥에 눌어붙은 볶음밥을 긁어 먹으며 생각한다. 조만간 타지에서 놀러 올 친구들을 데리고 가장 먼저 데려갈 곳은 바로 여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