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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Letters to the Gangwon
태백 귀네미골에서
글ㆍ사진 : 이재형(강원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독자기고


강원도의 산길을 다니는 일이 잦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만 알고 싶은 풍경 하나쯤은 품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도에는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 입에는 잘 오르내리지 않는 곳, 태백 귀네미골 풍력발전단지가 내게는 그런 곳이었다. 남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아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 능선에 다다르자, 새하얀 풍력발전기들이 구름 사이로 천천히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발아래로는 배추밭이 초록빛 융단처럼 펼쳐졌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잎사귀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붉은 차 한 대를 세우고 밭두렁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며칠 쌓였던 피로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사람의 손길과 자연의 힘이 같은 능선 위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밭에 꽂힌 하얀 표지판들 사이로 바람개비 같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광경은, 애써 찾아오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가지를 스치는 나뭇잎 사이로 다시 올려다본 언덕에는, 더 많은 풍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구름은 낮게 깔려 산등성이를 어루만졌고, 그 아래 좁은 길 하나가 순례길처럼 이어졌다. 걸어서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득히 작게 보였다. 산 아래 마을은 보이지 않고 오직 바람 소리와 풍차 돌아가는 소리만이 귓가를 채웠다. 그 순간, 굳이 명소가 아니어도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야말로 진짜 숨은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풍경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장면이었다. 


귀네미골을 뒤로하고 태백산 자락의 바람의언덕까지 올라 다시 한번 풍차의 행렬을 마주했다. 파란 하늘 아래 나무 팻말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같은 바람이지만 장소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귀네미골이 고요하고 은밀한 감동을 준다면, 바람의언덕은 탁 트인 시야로 시원함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태백 365세이프타운이었다. 재난안전 체험관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는 화재와 지진, 응급 상황을 몸으로 직접 겪어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실내 클라이밍과 하강 체험이었다. 오렌지빛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채 나무 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직접 안전벨트를 매고 그 벽을 올랐다. 몇 층 높이의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안전장치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자 어느새 정상에 닿아 있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서야 비로소 성취감이 밀려왔다. 재난은 언제든 닥칠 수 있지만, 준비된 사람은 두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고요한 능선과, 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세이프타운의 체험은 전혀 다른 색깔의 감동이었다. 하나는 자연이 주는 위로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시험하며 얻은 용기였다. 두 곳 모두 화려하게 꾸며진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꾸미지 않았기에 마음 깊숙한 곳까지 와 닿았다. 태백은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창밖으로 멀어지는 풍차들을 바라보며, 여행이란 결국 낯선 풍경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이 길을 찾을 때는, 또 다른 숨은 풍경 하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바람이 알려준 길을 따라, 나는 또 한 뼘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