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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1.
Nature & Travel
천년 은행나무와 영월 하송리 이야기
글 : 전영민
사진 : 박상운



평범한 마을 한가운데 뿌리내린 

1,200 살 거목의 이야기

 



구불구불 산세와 굽이치는 동강의 웅장한 자연을 따라 영월로 향하는 길.  

영월읍의 중심부 하송리(下松里)에 들어서면 풍경은 사뭇 단정해진다. 과거 커다란 소나무 숲 아래에 자리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을은 오늘날 영월군청과 소방서, 학교와 대형 스포츠단지가 들어서며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발걸음이 바쁘게 교차하는 평범한 도심 한가운데, 천년 넘게 묵묵히 세월을 버텨온 거대한 생명이 숨 쉬고 있다.

 


관공서와 상가가 늘어선 길을 지나 한적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목과 마주하게 된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하송리 은행나무’다. 마을을 호위하듯 우뚝 선 나무는 수령이 1,000년에서 1,2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23m, 가슴높이 둘레만 약 15m에 달해 국내에 생존하는 은행나무 중에서도 허리둘레가 꽤 굵은 편으로 손꼽힌다. 

 


가까이 다가가 나무의 밑동을 바라보면 기나긴 세월의 궤적이 선명히 묻어난다. 천 년의 풍파 속에 나무의 본래 중심 줄기는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새싹들이 메우고 자라나 지금의 형태를 이뤘다. 소멸의 자리에 돋아난 새 생명들이 엉켜 하나의 거대한 기둥을 만들어낸 경이로운 생명력 앞에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진다. 

 


나무에는 마을의 역사와 토속 신앙이 켜켜이 묻어 있다. 본래 대정사(對井寺)라는 사찰 앞에 서 있었으나 세월이 흘러 절은 자취를 감추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는 이야기, 영월 엄씨 시조 엄임의가 이 나무를 심었다는 전승이 함께 얽혀 있다. 둥치 안에 신령한 뱀이 살아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정성껏 빌면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민속도 전해 내려온다. 거목이 오랜 시간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기원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전승이다. (영월군청)

 


가을이 짙어지면 은행나무의 존재감은 한층 뚜렷해진다. 

하송리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길에서 함께 늙어가는 나무. 

이 거대한 암나무가 뿜어내는 샛노란 잎들이 골목 전체를 온화한 빛으로 물들인다. 

세월 따라 주변의 풍경과 삶은 쉴 새 없이 변해왔지만,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너른 품을 내어주는 거목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마을에 큰 위안이 되어 준 듯하다. 


올가을 영월을 찾는다면, 천년의 시간을 묵묵히 품고 있는 하송리의 고요한 골목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