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근 현대 조각사의 거장 권진규 미술관 춘천에 들어서다!

흩어진 추억을 조립해본다. / 중략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
인간 속에는 심지가 있는가
상처가 있는가?/ 중략
속이 빈 테라코타가
인간의 속에 대해 속의 말을 한다.
인간에게 또 어떤 다른 속이 있었던가?
(황동규, 권진규의 테라코타,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 지성사, 2003)

故권진규(權鎭圭, 1922~1973).
천재이자 비운의 조각가로 불리는 한국의 근 현대 조각사의 거장인 그의 생전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권진규 아틀리에 (등록문화재* 제134호: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1973년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한 그 곳은 구불구불한 골목길 위에 살림집뒤에 자리했다.

* 등록문화재란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커 지정, 관리하는 문화재로
등록 주체는 문화재청장이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흙 작업을 위해 만든 우물, 굴뚝처럼 솟은 가마와 선반, 책상과 작업대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높은 천장에서 내려 온 선반과 간결한 계단은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가족들의 살림 채였던 공간은 이제 사무실과 다목적실, 화장실이 되었다. (www.nationaltrust.or.kr에 오른 소개 글)
2006년 여동생 권경숙씨가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해 1년 여 기간 동안 보수와 복원 공사를 거쳐시민문화유산*으로 보전되면서 부엌은 실내의 안과 밖을 연계한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예술가 입주(Artists in Residence)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작업 도구들과 유품, 미완성작품들은 늘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개방되는 곳이다.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이렇듯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근접할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권진규 미술관’이 춘천시 동면 금옥 길 480(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천재로 추앙 받았음에도 이제껏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었기에 미술관 개관이 갖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초대 관장은 여동생 권경숙(88. 권진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씨가 맡았다.
춘천 옥으로 유명한 대일광업의 김현식 대표가 오랫동안 수집해 온 소장품을 내어놓았다.
유족들도 흔쾌히 합의를 하고 가지고 있는 러프 스케치들, 크로키들과 작품들, 기록들도 꼼꼼하게 챙겼다. 수 차례논의가 오가고 지역에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노력도 더해졌다.
전시실 바로 앞에 놓인 백윤기 조각가의 권진규 등신상(等身像•사람의 크기와 같게 만든 조각품)도 그렇게 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옥 광산 부지 내의 달아실미술관 건물 1, 2층에 상설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75년 전 춘천 역에서 오빠를 만난 열세 살 소녀를 추억하는 권관장은 도록 서문을 통해 “작품들을 내게 맡긴다는 글 한 줄을 남기고 떠난 오빠를 키워준 춘천에 권진규 미술관이라는 꿈을 허락해 주어 감사하다”고 밝히고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국민이 자금을 모아 자연 환경이나 사적(史跡) 따위를 사들여서 보존하는 제도이다.
2000년 1월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했다.
강원도에는 2004년 6월엔 남한강 상류의 동강 보전을 위해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의 땅 5,200평이 있다.

“사실 몇 년 전에 제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미 다른 곳과 논의 중이던 때여서 더 이상 진전되지는 않았었는데 돌고 돌아 결국 춘천에서 미술관을 열게 됐다”며 허경회 교수(권진규의 외종질)가 회상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필요한 일들을 챙겨보고 있다”고 했다.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17세이던 1938년 춘천고등보통학교(현 춘천고)에 입학해 1943년 3월에 졸업했다.
그 후 1949년 무사시노 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교)에서 세계적 조각가 부르델의 제자인 시미즈 다카시에게 조소를 배웠다. 1953년 일본 최고의 재야 공모전인 이과전에서 기사와 말머리로 특선을 수상하고 동경과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작품 활동을 벌였다.(권진규와 여인, 권진규 미술관 개관기념전 도록, 2015.12) 석조와 테라코타(구운 점토), 건칠(모시나 삼베를 심으로 하여 칠을 입히는 협저라는 옻칠 기법:두산동아)로 지인과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수많은 초상과 자소상을 빚었다.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영희’ ‘혜정’ ‘상경’.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가여서일까. 작품의 이름들은 모두 실명으로 기록된다.
학력고사 세대인 필자는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지원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최 열 미술평론가는 “인간의 심연을 이토록 심오하게 형상화한 조각가가 어디에 또 있을까”라고 했다. 허 교수는 “앞으로 어린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 줄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고 또 전세계에 퍼져있는 외삼촌의 작품들을 확인해서 목록을 만드는 일을 미술관과 함께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필 조각가는 “조각가 권진규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생전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떠난 이 후 조명 받기 시작했다”며 “근대 한국 미술사의 획을 긋는 조각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지역에 마련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종합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으로 ‘요술•미술 3D’전이 오는 3월31일까지, ‘권진규와 여인’ 개관 기념전은 5월31일까지 열린다.


‘와……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미술관 탐방기 / 이일청
다소 쌀쌀했지만 햇볕이 따스한 날씨.
꾸불꾸불 좁은 길을 따라가다 노란 빛의 건물과 마주쳤다. 달아실 갤러리.
월곡리(月谷理)를 순 우리말로 표현한 말이 ‘달아실’이라고 한다.
옥구슬 소리처럼 맑은 울림을 가진 이름이지 않은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입구에 들어섰다. 아직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내부가 한산했다. 로비에는 갤러리의 이름과 짝꿍 같은 골짜기 다방이 있었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전시된 작품을 감상했다.
걸음을 옮겨 ‘요술·미술 3D’ 기획전이 열리는 전시실로 향했다.
로비에 있던 백남준 作인 ‘비디오 가이’ 그리고 건물 바깥에 있던 타이어 오브제를 비롯해서 흥미롭고독특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조각이 시선을 끌었다.
이용덕 조각가(서울대 미술대학장) 작품 ‘The couch’와 ‘playing’.
‘와….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몸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된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 하나하나 감상했다. 여성 신체의 곡선을 표현한 입상이나
여성 모델을 묘사한 두상, 흉상들이 있었다. 기념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기사’.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일본 ‘이과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이 말을 탄 듯한 모습에서 우리 고대 석조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로잉에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간결하면서 거침없는 선들이 3D인 조각을 2D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유화 속 과감한 색채가 여인의 모습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개관기념전이 끝나면 권진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차례로 전시될 거라고 한다.
앞으로 3, 4층도 전시실로 개방해 다양한 기획전을 열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된다.
+ 문의
- 권진규 미술관 : 033-243-2111. 춘천시 동면 금옥길 ‘옥산가’ 내, 033-243-2111
- 권진규 사이버미술관 : http://www.jinkyu.org
- 권진규 아틀리에 : http://www.nationaltrust.or.kr , 02-739-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