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닫기
2016.08
90호
Tour
메밀 꽃 필 무렵..., 소설 속으로 걷다.
VIEW.9383
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을 부르는 결정적 순간’의 저자

하얀 여름그리고 오는 가을

메밀꽃 필 무렵소설 속으로 걷다

책 속을 걷다소설 속 그 길나도 주인공

이효석 생가서 메밀 밭 따라 대화에 이르는 길

흥정천 물소리에 귀를 열고팔석정에 앉아 눈을 감다


평창 효석 문학 100리 길’ 

1구간 문학의 길’(7.8㎞)

 

평창 봉평에 하얀 메밀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너른 들녘, 비탈진 산허리, 심지어 집 텃밭까지 메밀꽃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눈 깜짝할 사이에 봉평 땅 전체에 하얀 융단이 깔릴 듯합니다. 

달 뜬 밤, 메밀꽃밭을 거닐면 이효석의 묘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또 아름다웠는지 실감하게 될 터입니다. 

달빛을 받은 메밀꽃이 밤하늘에서 한 소쿠리쯤 딴 별을 좌악~뿌려 놓은 듯 황홀합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산 이효석(1907~1942)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장돌뱅이 허 생원은 흥정천을 따라 길을 걸었습니다. 봉평에서 장평을 거쳐 대화에 이르는 100리 길입니다. 


지금은 아스팔트 길로 15km에 불과하지만 강과 산을 끼고 도는 길은 구불구불 서두름이 없습니다. 

가산이 생전 걸었던 길도 그와 닮아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효석문학 100리길’ 이 생겼습니다. 

이효석의 학교 가는 길이자 삶과 문학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강, 들, 숲을 걸어 허 생원과 동이가 오가던 장돌뱅이 길이기도 합니다. 

 


  

효석 문학 100리 길이 생긴 건 2012년 여름이다. 

2년에 걸쳐 봉평에서 평창까지 5개 구간을 만들었다. 실제로 장돌뱅이들이 이용했을 길은 짐을 가득 진 당나귀가 갈 수 있는 완만하고 널찍했을 것이다. 금당산(1174m)과 백적산(1142m)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지금의 안부쯤이 소설 속 배경으로 제격이다. 

 

하지만 그 길은 영동고속도로와 6번, 31번 국도가 지난다. 시멘트 도로를 걸으며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라는 허 생원의 대사를 곱씹을 수는 없다. 

 


 

그래서 1구간은 산길을 에돌아 서두름이 없다.  

늦여름의 햇살이 반짝이던 날, 5개 코스 중 1구간인 ‘문학의 길’(7.8㎞)을 걸었다. 걷기 여행길 종합안내 포탈에서 강원 지역에 등록된 길 중 가장 많이 방문한 길이다.

이효석 생가를 출발해 남안교~팔석정~판관대~노루목 고개~여울목까지, 소설의 향기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자박자박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들머리인 생가주변에는 소설 속 풍경을 담은 '문학의 숲'이 있다. 메밀꽃 밭은 초입에 있다. 초반부터 소설 속 명장면과 마주한 것이다. 




지금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당시 산허리까지 덮인 하얀 메밀꽃은 실로 장관이었으리라. 

문학의 집 주변엔 허 생원이 나귀 몰아 향했던 봉평 장터, 주막집인 충주집, 물레방앗간이 있다. 


멀리 회령봉 등 1000m가 넘는 고산준령들이 아련하다. 

그 안쪽의 산촌마을 위로 메밀꽃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봉평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당시 대처였던 평창에서 초등학교를 마쳤다. 

필경 평창에서 하숙을 했을 텐데,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허 생원이 다녔던 이 길을 따라 평창과 봉평을 오갔을 게다. 



 

길을 걷는다. 

 

왼편으로 흥정천이 함께 길동무에 나선다. 길은 부드럽고 늦여름 바람에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춘다. 

한 2km쯤 걸었을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팔석정이다. 

강릉부사 양사언(1517~1584)이 빼어난 경치에 반해 정사를 미루고 8일간 노닐고 바위 여덟 곳에 

글을 새겨 놓아 팔석정이라 불린다고 한다. 

 



맑은 흥정천이, 적송이 어우러진 팔석정을 휩쓸며 흘러가는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하다.

각각의 바위에는 석대투간(石臺投竿 낚시하기 좋은 바위), 석지청련(石池淸蓮 푸른 연꽃이 피어 있는 듯 한 바위), 석실한수(石室閑睡 낮잠을 즐기기 좋은 바위), 석요도약(石搖跳躍 뛰어오르기 좋은 바위), 석평위기(石坪圍碁 장기 두기 좋은 바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글씨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판관대까지 이르는 숲길은 운치가 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하늘을 가릴 듯 빼곡한 숲길을 걷다 보면 절로 시심이 떠오르게 한다.

한 비평가는 그가 소설에서 아름답게 고향을 묘사한 이유를 사회성 짙은 글에 회의를 품게 되면서 그동안 일관됐던 신념이 흔들리며 방황하다가 나온 작품이라는 것이다. 1936년, 30세 때 함경도 경성에서 숭실전문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걷는 이들이 느끼는 길은 소설 속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뎠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풍덩 빠져 버렸다. 허우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이나 흘렀다.’ 

 



눈에 띄는 장소마다 이정표를 세워 구체적으로 설명을 곁들였다. 장평으로 이어진 고개 노루목을 허 생원 일행이 쉬어갔던 곳으로, 여울목에는 동이가 물에 빠진 허 생원을 업고 개울을 건넌 곳이라고 적었다. 


마치 실존했던 인물들인 것처럼 꾸며 걷는 이로 하여금 소설 속 장면을 상기시키도록 한 것이다.

문학의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발길을 이끄는 곳도 있다.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 태어난 판관대와 신사임당(1504~1551)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궁궁소다. 

판관대는 율곡의 부친인 이원수의 당시 벼슬이 수운판관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금씩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백옥포리 들판과 새하얀 메밀꽃밭이 장관이다.

메밀꽃밭과 황금들판 사이로 난 오솔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보면 구름 위를 걷는 듯 발걸음이 가볍고 즐겁기만 하다. 

그 시절 장돌뱅이들도 이런 길을 걸었을까? 


걷는 길이 정겹다. 백옥포교를 지나면 1구간 종착지인 노루목 쉼터다. 

노루목 고개는 허 생원이 고개를 넘을 때 마다 몇 번이고 다리쉼을 했다고 할 정도로 험한 고갯길이다. 

소설 속 풍경처럼 쉼터에서 다리쉼을 하고 땀을 훔친다. 한참을 그렇게 숲을 쳐다봤다. 

길은 2구간으로 이어진다.


 


+여행메모 : 문의(033-330-2762,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에서 장평 나들목으로 나와 봉평읍으로 가면 이효석 생가와 효석 문학 100리 길이 나온다. 


- 먹을 거리 : 봉평면 기풍로 미가연(033-335-8805)은 메밀음식 특허를 3개나 보유하고 있는 메밀요리 전문점이다. 이대팔 메밀국수, 메밀싹 육회 비빔밥은 주인장의 손맛이 담긴 별미. 평창한우마을(033-332-8300)에서는 30%이상 싸다. 상차림 비용은 별도다. 


볼거리 : 9월 2일부터 11일까지 봉평면 일원에서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축제 때는 언제라도 메밀꽃 핀 풍경을 볼 수 있다. 흥정ㆍ막동ㆍ노동ㆍ이끼 계곡이 유명하다. 


효석 문학 100리길


1구간 ‘문학의 길’ 이효석 생가~팔석정~판관대~노루목 고개~여울목 7.8km.

2구간 ‘대화 장터 가는 길’은 여울목~용평면 재산리~대화장터까지 13.3km. 

3구간 ‘강따라 방림 가는 길’은 대화장터~대화천~하안미리~방림삼거리 10.4km. 

4구간 ‘옛길 따라 평창강 가는 길’은 10.2km. 

5구간 ‘마을길 따라 노산 가는 길’ 5-1구간은 7.5km, 5-2구간은 4.3k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