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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2
95호
Food
강원의 산나물밥
VIEW.9217
황교익 유명 맛 칼럼니스트, tvN 수요미식회 패널리스트, 강원도 명예도민
사진 송병량 강원도청 대변인실
촬영협조 정강원(강원도 대표음식 전문점, 033-333-1011, 평창군 용평면 금당계곡로)

인간은 무엇이든 먹는 동물이다.


   


지구상의 덩치 큰 포유류 중에 인간만큼 다양한 먹이를 가지고 있는 동물은 없다. 이렇게 인간이 무엇이든 먹는 동물로 진화해온 까닭은 먹이 활동을 잘 할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육식도 하고 초식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육식동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강인한 발톱도 송곳니도 없다. 민첩하지도 않다. 


초식동물로서의 능력도 바닥이다. 후각은 여느 동물에 비해 극히 떨어지며 생풀을 씹어 소화시키는 기능도 약하다. 이 악조건의 몸으로 지구에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무엇이든 먹어내자.’




무엇이든 먹어내려면 금기의 본능을 버려야 했다. 시고 쓰고 이상야릇한 냄새가 나는, 그러니까 먹으면 탈나거나 죽을 것 같은 음식물도 먹어낼 수 있어야 했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음식쾌락이었다. 동물인간의 본능으로는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것에 쾌락을 붙임으로써 먹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이 맛을 즐기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쾌락을 얻게 되는 음식은 달리 나타난다. 내륙에 사는지 바닷가에 사는지 사막에 사는지 고원에 사는지 북극에 사는지 열대 우림에 사는지에 따라 인간집단의 쾌락음식은 제각각 다르다. 


나는 산나물에서 한민족의 음식쾌락을 발견한다. 단군신화에서 한민족 음식쾌락의 흔적을 본다. 

   


미식의 산 나물밥


예전에는 산나물이라 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뜯은 것은 아니었다. 도시화의 결과로 사람 사는 곳과 자연이 먼 거리에 있지만, 옛날에는 집 바로 옆 논밭이나 뒷동산이 ‘산나물밭’이었다. 


곤드레, 미역취, 개미취, 머위, 고비, 나물취, 둥굴레, 참나물, 중댕가리, 분주나물, 삽취, 왜수리, 곰취 등등이 지천으로 자랐다. 한철 바짝 나는 것이니 이를 뜯어다 갈무리를 하여야 했는데, 데친 후 말려 묵나물로 보관하여 1년 내내 먹었다.




산나물이 흔하다 하여 산나물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나물에 약성이 있다 하나 또 그만큼의 독성도 있다. 한 종류의 산나물만 사나흘 지속적으로 먹으면 배탈,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산나물을 탈 없이 넉넉히 먹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음식이 나물죽과 나물밥이다. 곡물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옥수수, 콩, 팥 따위의 잡곡에다 산나물을 함께 넣고 죽을 쑤거나 밥을 지어 먹었다. 


산나물이 많이 들어가면 여물 냄새가 나는데, 간장이나 된장으로 비비면 입에 넣을 만한 것이 되었다.




1970년대 녹색혁명의 결과로 한반도는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산나물은 잊혀져갔다. 채소의 상업적 재배가 활발해지면서 나물이라 하면 재배 채소를 뜻하는 말이 되었고, 산나물은 봄철 시골에 가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갑자기 산나물밥이 한국 외식시장에 번지기 시작하였다. 궁핍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건강음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의 것이 건강에 좋다는 관념에 따른 것인데, 웰빙 트랜드가 거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산나물 죽은 식감과 냄새가 만족스럽지 못한 탓인지 외식업체에서 파는 일이 거의 없다.




산나물밥은 산나물비빔밥과는 그 조리법이 다르다. 산나물비빔밥은 산나물을 따로 조리하여 밥 위에 올리고 양념장을 더하여 비벼 먹으나, 산나물밥은 밥을 지을 때 산나물을 아예 넣어 같이 조리한다. 


보통은 뜸을 들일 즈음에 산나물을 밥 위에 올린다. 이렇게 하면 산나물의 향이 밥에까지 베어들어 맛이 더 풍성해진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음식으로 비빔밥이 널리 홍보되고 있다. 비빔밥의 주요 재료는 나물이다. 나물밥이라 하여도 된다. 


이 나물밥의 고대적 형태를 찾자면 산나물밥이 될 것이다. 밥에 푸성귀의 향과 맛을 더하는 방법으로 산나물밥 조리법은 꽤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다양한 산나물밥이 비빔밥과 함께 한국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산나물밥 중에 가장 흔한 것이 곤드레 밥이다. 곤드레는 한민족이 가장 즐겨 먹은 산나물 중의 하나이다. 전국의 산야에서 많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밥이나 죽, 국으로 먹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산나물은 톡 쏘는 휘발성의 향이 있어 가끔씩 기호음식으로는 먹을 만하나 끼니마다 먹을 수 없는데, 이 곤드레는 향이 은근하여 삼시세끼 몇 달을 먹어도 질리는 일이 없다. 또 아무리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조선의 달 항아리 같은, 한민족의 무덤덤한 정서에 닿아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