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구간 총 거리 131.7km
올림픽 길이 되었다
산이 불타고 있습니다
눈부신 봄과 화려했던 여름의 기억 훌훌 털어내고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입니다. 산자락은 가장 화려하게 치장하고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능선에서 맞는 바람은 이제 묵직합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바람개비처럼 춤을 춥니다. 알록달록 눈부신 대관령 풍경이 물결칩니다. 한없이 깊고 아늑한 숲길을 걷습니다. 길섶 산비탈의 소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금강 송들이 쏟아내는 향내에 온몸이 찌르르 울립니다.
비밀의 통로를 헤집듯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의미를 되새기고 강원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 올림픽 ‘아리바우 길'입니다. IOC(국제올림픽 위원회)가 ‘올림픽’이라는 명칭을 쓰도록 한국 내 유일의 트레킹 트레일(걷기여행길)입니다. 가장 강원도다운 길이기도 합니다. 평창(올림픽)과 정선(아리랑), 강릉(바우길) 세 고장을 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세상을 하나로 잇는다는 점에서 길과 올림픽은 닮았습니다. 9개 코스에 총 연장 131.7km에 달하는 트레일은 역사· 문화생태 탐방로입니다. 정선 5일장에서 출발해 아우라지, 백두대간, 대관령(옛길), 금강 소나무 숲을 지나 강릉 경포 해변에서 멈춥니다. 그야말로 강, 산, 호수, 바다가 함께 합니다. 9코스 중 평창과 강릉을 연결하는 8자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굽이굽이 대관령 옛 길과 솔숲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 강릉 단오재 시작을 알리는 산신당이다. 국사성황사 왼쪽 오솔길은 대관령옛길이다. 후심국 궁예가 명주성을 칠 때 군시를 몰았고,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이 강릉 고향집을 넘던 그 길이다. 선자령 정상으로 간다. 해발 1157m.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쓰인 표지석이 압도한다. 백두대간 준령의 당당함에서 남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능선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풍차 너머로 하늘목장의 초지와 숲이 노을에 물든다. 순간 몰려온 구름이 신을 타고 넘는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구름 세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은 대간을 지나간다.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6코스대관령옛길
14.7km 강릉 바우길 2코스
구름도 쉬어가는 산, 선자령 (1157m)과 대관령 옛길은 평창과 강릉 경계에 선 백두대간 봉우리다. 사방이 높고 낮은 산들로 물결친다. 높이만 보면 해발 1000m가 넘어 위압적이다. 하지만 산길 초입인 대관령 고갯마루가 832m다. 정상과 표고 차는 325m에 불과하다. 산길도 가파르지 않다. 오르다 보면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알펜시아 스기점프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은 풍경에 반하고 가슴은 올림픽에 취한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가 6코스 들머리다. 등산로 초입을 조금 지나면 ‘국사성황사’가 나온다.
선자령은 풍경도 뛰어나지만 동행과 조곤조곤 대화를 하며 오를 수 있어 좋다. 소설가 이순원은 ‘대관령의 봄은 어디에서 오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선자령 풍차처럼 우리가 하는 여행의 아름다움 역시 느림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나 걷기 여행은 더욱 그렇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그리고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다.” 맞다. 아리바우 길은 바로 그런 곳이다. 트레커들은 자연에서 만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강원도를 느낀다.
KT통신탑에서 옛 길을 따라 보광리 길은 내리막이다. 경사가 급해 대굴대굴 굴렀다'해서 ‘대굴령’, 이것이 변해 대관령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걸어보면 가파르지 않다. 갈지자 모양으로 접고 또 접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굽이가 아흔아홉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는 이곳의 풍경에 반해 '대관령도'를 그렸다. 길을 설계한 강릉 바우길 이기호 사무국장은 "백두대간인 선자령쪽은 봄부터 여름까지는 초록물결이 가을엔 오색 단풍, 겨울엔 설경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고 말했다.
7코스 보광리 명주군 왕릉
11.7km강릉 바우길 3코스
소나무와 함께 걷는다. 한 그루 한 그루의 존재감으로 빛나는 거송에서부터 숲을 이룬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짧은 길 이지만 그 깊이는 대단하다. 보현사 버스 종점에서 1km남짓은 포장길이다. 길동무를 자청한 계곡물 소리가 끊어지면 산길이다. 나무계단을 밟고 솔숲으로 든다. 길은 오르막이지만 유순하다. 숲을 지나자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소나무 오른쪽은 참나무 숲이 펼쳐진다. 극적인 대조를 보이지만 가장 조화롭고 이름답다. 단풍 숲을 이룬 골짜기 너머로 선자령의 풍차가 바람을 맞고 있다. 한동안 숲길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어명정 길이다. 광화문 복원에 시용된 금강소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 위에 세운 정자다. 그때 베어낸 3그루의 금강소나무는 밑동 지름 90cm의 대목이었다.
당시 산림청과 문화재청 은나무를 베기 전에 위령제를 지냈다. 그리고 도끼로 소나무를 내려치기에 앞서 ‘어명이오!’를 외쳤다고한댜
정자에서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로 오른다. 활엽수립 가운데 우람한 이름드리 소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룬다. 눈을 맑게 하는 푸른 숲이 한동안 이어진다. 어명정에서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신불감시초소가 있는 쉼터다. 동쪽으로 강릉 시내와 동해, 남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을 가득 안을 수 있다.
억새가 배웅하듯 늘어서 있는 임도를 지나면 7코스 끝인 명주군 왕릉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5 대손이자, 강릉 김 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가 있는 명주군 왕릉은 천 년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가는 발걸음이 아쉬워 뒤돌아보자 소나무 숲에 안긴 단풍나무들이 단풍 향연을 펼쳐낸다. 왕릉을 지나면 경포해변으로 이어지는 바다 ·호수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