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들의 눈물도 헤어진 이들의 눈물도 분단된 탄식도
휘돌아 깊게 잠긴 漢灘江 고석정을 안고
1억년의 사연도 품었구나.
북한의 강원도 평강군의 추가령곡에서 발원하여 철원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였다는 한탄강.
큰 여울이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한탄(漢灘).
약 50~13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으로 형성된 현무암들 사이로 오랜 시간 동안 물결이 타고 흘러 만들어진 수직 절벽과 주상절리, 그리고 협곡들이 쏟아내는 폭포들로 절경을 이뤘으니 예부터 유명세를 탔을 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이기도 하다. 얕아진 바닥과 강폭이 좁아져 물살이 급해지지는 ‘여울’도 많아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이 즐기는 래프팅 코스로도 인기다. 철원의 한탄강은 그렇게 남과 북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이끌어낸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 평화라는 대전제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이니 만큼 ‘다시 보자, 철원’ 컨셉트를 기획하고 영상을 맡은 팀원들 10여명과 함께 집결지인 고석정을 향했다.
항상 지나치던 곳, 새로울 것은 없을 줄 알았다.
매년 6·25 전후가 되면, 또 외국인들이 늘 관심을 갖는 소재인 ‘DMZ’을 다뤄야 할 시기가 되면, 다르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기에 기대보다는 모처럼 익숙한 장소들이니 편하게 다녀오자 싶었다. 목적은 달라도 해마다 한두 번 이상은 꼭 다녀가곤 하는데다 사진을 보는 게 일상이었고, 또 이날 동반했던 동료들 중에는 ‘난생처음’이라는 이들도 넷이었으니 소개한다는 생각이었달까.
그런데 웬걸?
10여년 만에 마주 선 고석정은 낯설었다.
동료들의 물음에도 선뜻 답을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데 ‘나 원 참!’
세월 따라 느낌도 변하는지, 아니면 당시에 너무 훌쩍 지나친 것인지.
분명 다녀갔던 곳은 맞는데 이날 따라 눈에 들어오는 문구들이 새로웠다.
1억년.
고석정(孤石亭) 표지 석에는 시간의 흐름이 새겨져 있었다.
신라 진평왕이 한탄강 중류 지점인 이곳에 정자를 세운 이후 주변 지역까지 통틀어 고석정으로 불려 왔다고 한다. (www.cwg.go.kr)
그 정자에 올라서면 10m 높이로 솟아오른 고석 암과 바위가 시야에 잡힌다.
강 양쪽으로 자리 잡은 기암괴석들 사이로 통통배가 유유히 지나칠 때면 한 폭의 그림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질적인 건물이 보이는 데 거기서부터 경기도와의 경계란다.
고석암 가까이로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래사장인데 바닷가 해변마냥 곱다.
바위 아래 고석암 끝에 걸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이들도, 래프팅 순서를 기다리며 도시락을 펼치는 이들도 모두 정취에 흠뻑 녹아 들었다.
고려의 충숙왕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주민들은 조선 최고의 의적으로 불리는 명종조의 임꺽정이 고석정 건너편에 돌 벽을 높이 쌓아 은신처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더 마음속에 더 깊이 새기는 듯하다. 철의 삼각 전적관 주변으로 기념비까지 세워놓은 것을 보면.
고석정 국민관광지 안에도 볼거리가 늘었다. 아이들은 위한 놀이기구들도 있지만 작은 농업전시관 호미뜰은 관람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농부의 부엌, 선반, 사진, 창고 그리고 공간에는 벼를 모르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정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직접 도정한 쌀은 가져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팀이 찾은 곳은 북녘 땅이 훤히 보이는 평화전망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데 ‘정말 일 년에 며칠 안 되게 맑은, 운이 좋은 날’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이 들린다.
남측 감시초소(GP) 너머로 남과 북에 걸쳐있는 태봉국 도성 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풍천원 벌판(본보 76호 게재)에 지어진 궁예 도성 터는 남북군사분계선 사이에 거의 반반씩 걸쳐 있는 역사 유적지다. 서기 901년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가 905년에 도읍을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국호를 태봉(泰封, 911년)으로 고친 뒤 918년 멸망하기까지 수도였지만 분단으로 역사적 고증이 막혔다. 외성 12.5킬로미터, 내성 7.7킬로미터에 이르는 규모라고 한다.
동·서로는 군사분계선이, 남·북으로는 경원선 철로가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학술 교류가 시작될 수 있다면 한 국가의 수도였던 철원의 역사가 다시 복원될 터이다.
어서 빨리 민간 교류가 활발해 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옛 얼음 창고, 농산물 검사소 터, 금융조합건물 같은 근대문화유산들도 볼 수 있다.
항상 지나치던 곳, 새로울 것은 없을 줄 알았다.
매년 6·25 전후가 되면, 또 외국인들이 늘 관심을 갖는 소재인 ‘DMZ’을 다뤄야 할 시기가 되면, 다르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기에 기대보다는 모처럼 익숙한 장소들이니 편하게 다녀오자 싶었다. 목적은 달라도 해마다 한두 번 이상은 꼭 다녀가곤 하는데다 사진을 보는 게 일상이었고, 또 이날 동반했던 동료들 중에는 ‘난생처음’이라는 이들도 넷이었으니 소개한다는 생각이었달까.
참 사연 많은 곳이다, 철원은.
그 질곡의 과정들이 어찌나 한국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하는지……
남측 감시초소(GP) 너머로 남과 북에 걸쳐있는 태봉국 도성 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을 다니면 유독 처절했던 부분들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격전의 현장이었던 백마고지, 월정역사, 한탄강의 협곡 사이 건설된 승일교(昇日橋). 광복 직후 김일성 치하에서 시공되어 휴전 직후 이승만 치하에서 완공된, 어찌 보면 남북 합작품이다. 밑으로 내려와 올려다보면 절반을 경계로 구조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늘 때가 되면 회자되는 6·25 전쟁 당시 세워진 노동당사와 통일 시계탑. 그 맞은편에 자리 잡은 소이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남아있고 눈으로만 갈 수 있는 평강고원이 코앞이다.
산책로로 조성한 둘레길 안쪽은 아직도 미확인 지뢰지대로 남아있다. 산책 길목에 세워진 안내판에 새겨진 정춘근 시인의 시구 한편이 오늘따라 선연하다.
지뢰 꽃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그시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 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