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황골 엿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3리의 마을을 황골이라 한다. 치악산 서쪽 사면에 있는 조그만 산골이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이 마을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눈이 녹는 이른 봄이면 이 동네에 맛있는 엿 먹으러 가야 한다. 겨우내 곤 엿이다.
예부터 엿은 겨울에 곤다. 보통은 설날 전에 한다. 설날에 엿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황골에 엿 고는 집들이 여럿 있다. 이 마을의 엿을 흔히 황골 엿이라 한다. 마을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황골 엿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유명하였으며, 서울 경동시장의 한약재시장에서 황골 엿은 다른 엿의 두 배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황골은 논밭이 적다. 엿 골 곡물은커녕 먹고 살 곡물도 넉넉지 않았을 동네이다. 산골이라 땔감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생계유지를 위해 곡물을 외부에서 가져와 엿으로 가공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황골 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으로 엿을 곤다. 쌀과 엿기름을 더하여 2시간 동아 가마솥에서 끓인다. 이때에 주걱으로 계속 저어야 한다. 이를 1시간 정도 식혔다가 '허리 질금'(중간에 넣는 엿기름)을 넣고 4시간가량 그대로 둔다. 이를 다시 1시간쯤 끓인 후 엿물을 짜내고, 이 엿물을 4시간 이상 가마솥에서 졸이면 조청이 된다. 이 조청을 더 끓이면 엿이다. 쌀을 불리는 시간부터 따지면 꼬박 24시간 이상 걸리는 공정이다.
슈퍼에 가면 요리당, 물엿 등이 진열되어 있다. 라벨을 보면 산당화 엿, 맥아 엿 두 종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당화 엿은 쌀, 옥수수 등의 녹말에 산 처리를 하여 얻는 것이다. 이 엿으로 음식을 하면 반짝반짝 윤이 나기는 하지만 금방 질리고 만다. 또 오래 두면 딱딱해진다. 맥아 엿은 전통 엿인 듯이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한다. 맥아, 즉 엿기름에서 추출한 효소를 더하여 만드는 것이 많다. 곡물을 갈아 엿기름을 더한 후 가마솥에서 끓여서 당화시켜야만 가장 맛있는 조청과 엿을 얻을 수 있다. 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엿을 고는 일은 무척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방법의 전통 엿은 귀하며, 제대로 맛을 내는 장인은 더더욱 귀하다.
황골 엿에는 구수한 곡물의 향이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 이 구수한 곡물의 향이다. 누룽지의 향이라 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 음식에 잘 어울린다. 꿀, 설탕 따위를 쓸 음식에 이 조청을 쓰면 그 맛이 풍성해진다. 이런 엿은 많이 먹어도 속이 다리는 일이 없다.
양양 송천마을 떡
황골 엿을 샀으면 이 엿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한다. 바로 떡이다. 양양 송천마을로 가야 한다. 여기는 떡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매일 아침에 떡을 빚는다.
요즘 떡, 참 맛없다. 맛있는 떡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이다. 까닭은, 공장에서 가공한 쌀가루를 받아다 떡을 하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쌀가루 공장에서는 쌀의 전분이 변성되지 않게 습식으로 분쇄한다고 하지만 고운 입도의 쌀가루를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온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전분에 손상이 오기 마련이다. 또, 보관과 이동 중에도 손상이 있다. 이렇게 전분이 변성된 쌀가루로 떡을 하게 되면, 백설기와 시루떡은 퍽퍽하고 가래떡과 절편은 단단하며 찹쌀떡은 뻐득뻐득해진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는 한계령 동쪽 아래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30여 가구가 산다.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다. 물 맑고 숲은 우거져 산천이 아름다우나 이 마을 사람들이 기대어 살 수 있는 논밭은 아주 적다. 마을 뒤로 계단식 논이 있으며 밭은 텃밭 수준을 조금 넘고 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절반 정도의 가구가 떡 빚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예전부터 설악산 관광객과 동해안 피서객을 상대로 떡을 만들어 파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많아 떡마을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부녀회에서 나서 아예 떡 가공 공동사업을 하게 되었다.
송천마을의 떡이 맛있는 것은 좋은 쌀로 그 자리에서 빻아 떡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밖의 재료들도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주로 쓴다. 여기에 떡 빚는 기술까지 더해져 있는데, 떡을 강하게 치지 않는다는 게 큰 특징이다. 그래서 쌀의 맛이 살아 있다. 찰떡은 입안에서 쌀알이 덜 뭉개진 느낌을 주며, 멥쌀의 떡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풀린다. 전분의 변성이 없어 질긴 느낌이 없다. 가래떡을 예로 들자면, 공장 쌀가루 떡은 '질긴 쫀득함'이고 쌀로 빚은 떡은 '부드럽게 입에서 스스르 녹는 쫄깃함'이다. 송천리 떡은 단지 이 차이 하나만으로도 맛있는 떡이다.
송천마을은 택배를 한다. 찰떡같은 것은 냉동하여 보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빚은 떡이라 하여도 냉동을 하게 되면 맛이 떨어진다. 떡은 갓 했을 때 가장 맛있다. 마을 입구에 떡 판매장이 있는데, 그날 빚은 떡만 판다. 황골 엿이 있고 송천 떡이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속초 명란젓
원주와 양양을 거쳤으니 동해로 가야 한다. 속초가 좋겠다. 속초 아바이 마을은 1년 내내 붐비는데, 3월이면 한가한 편이다. 마을 한 바퀴 돌고, 기념으로 뭔가 하나 사야 하는데, 3월이면 명란젓이 괜찮다.
동해가 명태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베링 해에서 잡아온다. 주로 잡는 계절이 겨울이다. 이때가 산란기라 가장 맛있고 또 가장 많이 잡힌다. 알을 밴 것은 원양어선에서 바로 할복을 하고 알을 뺀다. 이런 알을 선동이라 한다. 동태로 들어와서 육지에서 할복하여 빼낸 알은 육동이라 한다. 선동이 낫다. 선동이든 육동이든 명태 알은 겨울에 많이 들어오고, 이를 숙성하여 만드는 명란젓이 맛이 날 만한 때가 3월이다.
아바이 마을에 자그마한 명란젓 가공공장이 몇 있다. 이 동네의 명란젓이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동해에 명태가 많이 잡힐 때부터 명란젓을 담아오던 집안들이 대를 물려 영업을 한다. 오랜 경험에서 오는 명란젓의 맛 차이는 분명히 있다.
명란젓에 아질산나트륨을 흔히 쓴다. 일종의 발색제이면서 방부제이다 . 한국의 식품공전에서는 햄이나 소시지 등 육류 가공품과 명란젓에 쓰게 되어 있다.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아질산나트륨을 넣은 명란젓은 그 때깔이 고운 분홍이다. 알의 막에 붙어 있는 핏줄도 그 분홍색에 의해 보이지 않게 된다. 아질산나트륨의 발색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숙성 기간도 짧게 해준다
명란젓에 아질산나트륨을 안 넣어도 된다. 예전에는 안 넣었다. 아질산나트륨을 안 넣으면 색깔이 아주 예쁘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된,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오던 명란젓이다. 소금만 넣고 숙성을 하고 양념을 더한 것이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맛있다. 아바이 마을에 이런 명란젓이 있다. 포장지에 첨가물은 적도록 되어 있으니 아질산나트륨이 없는 명란젓 고르기는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