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의뢰 받고 이것저것 적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일들이 꽤나 있다.
지난 십 수년간 산악 전문 잡지 사진기자로, 국내 유명산의 트래킹 코스와 암벽과 빙벽을 수 차례 등반했던 필자에게도 설악산은 단연코 최고다.
‘설악산을 빼고는 우리나라 클라이밍의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결코 과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구분 없이 대부분의 클라이머들이 도전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적벽은 암벽 등반가들에게는 최고의 꿈이자 성지 중 하나다.
장군봉과 나란히 위치한 적벽을 올라야지만 이른바 ‘좀 한다’는 축에 들어간다고들 했다.
기울기가 거의 직각으로 100°에 가깝고 전 구간이 *오버행으로 90미터 가까이 되는 고도가 주는 정신적 압박이 대단하다.
그러니 사진 촬영은 오죽할까.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적요한 곳에 거친 호흡만이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국내 최고라 불리는 이들조차도 뿜어내는 열기는 못내 뜨거워 주변까지 번져 후끈 달아오른다.
떠오르는 기억은 또 있다.
몇 년 전 국내 최고로 불렸던 최석문‧이명희 부부를 동반 촬영했을 때다. 그들은 일정 때문에 당시 장기 해외 원정을 막 끝내고 피로도 채 풀지 못한 상태로 올라탔다. 여지없었다. 자꾸 몇 미터를 추락했다.
“어휴, 예전에 추락 없이 올랐던 구간인데, 안 되네요.”
적벽은 그렇게 조금의 실수도 용하는 법이 없다.
적벽 등반의 역사는 꽤나 깊다.
1978년 크로니 산악회에서 처음 개척해 이름을 붙이면서 시작해 같은 해 ‘에코’ 길도 개척된다. 당시에 장비를 바위에 꽂아 넣은 후 등반용 사다리를 이용했다면 80년대 후반에는 기술 발달과 가볍고 견고한 장비들의 등장으로 자유 등반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식지 않은 도전 대상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속 중이다.
1980년 인천교대 산악회에서 크로니 길 왼쪽에 교대 길, 1988년 이성주씨가 에코 길과 교차하는 60미터에 이르는 독주 길을 냈다. 90년대 들어서는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추락사한 故김형진씨가 고난도의 *인공 등반 코스인 무라 길을 내고, 정승권씨가 난이도 A5에 이르는 ‘트랑고의 꿈’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의 능력이 선보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한 번 올라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들 실력을 인정했다.
설악산 적벽은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벽’ 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유 등반가들의 힘찬 도전이 시작되었다. 악우회의 윤 대표씨가 1988년 크로니길 첫 번째 마디를 등반, 가능성을 열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부분적으로 시도되었지만 전 루트를 오르지 못해 한국 등반계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 과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우리나라 최초로 5.14급 루트를 등반한 손정준씨. 그는 1999년 조규복, 김명학씨와 함께 에코-독주길을 연결해 성공한다. 2001년 전용학씨는 에코길 우측에 인공 등반 루트 *2836을 개척했고 2008년 그 루트를 오르면서 ‘자유2836’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2009년, 이명희 씨가 3년을 준비 끝에 성공했다. 국내 여성 최초였다.
적벽.
시대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숱한 도전을 받아온 암벽.
남은 도전 가능성은 무엇일까. 인공등반 루트의 자유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