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북한의 옥류관 냉면이 등장하였다. 남쪽에서 준비하는 만찬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옥류관 냉면을 회담장 만찬에 가지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북측에 제안을 하였고 북측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회담을 시작하면서부터 냉면이 화제였다. 외신도 냉면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냉면은 평화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기획에 나도 참여하였다. 세계인이 주목을 할 것이라 부담이 컸다.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여 내린 컨셉트는 이랬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과 관련한 음식을 내자.” 남북의 정상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판문점에서 만나는 일이 한민족의 오랜 염원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대 정주영 회장의 서산목장에서 쇠고기를,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 문어를,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신안에서 민어과 해삼을, 노무현 대통령의 김해 봉하마을에서 쌀을 가져와 만찬을 차리자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사람이 빠졌다. 김구 선생이다. 많은 분들이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을 하셨는데, 그 중에 가장 앞에 놓일 분이 김구 선생이다. 해방되고 분단이 고착화 되어가고 있던 1948년 김구 선생은 목숨을 걸고 삼팔선을 넘어 김일성과 담판의 자리를 가졌다. 물론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통일의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함을 김구 선생은 몸소 실천하여 우리 민족 가슴 깊이에 남겼다. 그런데, 김구 선생을 상징할 수 있는 음식이 눈에 들지 않았다.
해주가 고향인데 독립투쟁을 위해 타국에서 오랜 기간 떠돌아 딱히 김구 선생을 기리는 음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나가 있기는 하였다. 냉면이었다. 김구 선생이 김일성과 담판을 하기 위해 평양에 갔을 때에 하루는 숙소에서 몰래 빠져 나와 냉면을 드셨다. 김구 선생께서는 냉면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 냉면을 드시면서 “50년 만에 평양냉면을 먹는데, 그 맛은 여전하네!” 하셨다. 그렇다고 남측에서 만찬을 준비하면서 냉면을 내자고 할 수는 없었다. 냉면은 북한의 상징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북측에서 기분 나빠할 수도 있었다. 이 문제를 문재인 대통령이 풀었다. 평양 옥류관 냉면을 가지고 오게 북측에 제안을 한 것이다. 회의 자리에서 나는 김구 선생의 일화를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고민만 하고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나는 문 대통령이 북측에 한 제안을 전해 듣고 “아!” 하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분이다.
북측이 가져오는 냉면에 김구 선생의 스토리를 입히지는 않았다. 북측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은 스토리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만찬의 냉면을 보며 김구 선생을 떠올릴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jtbc의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이를 언급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하면 통하는 법이다.
“막국수와 비슷해요” 그렇게 하여, 냉면 붐이 일었다. 회담 당일부터 냉면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언론마다 냉면을 화제로 다루었다. 또 하나, 이런 말이 돌았다. “평양의 평양냉면이 평양냉면의 원본일 것인데, 그 평양냉면이 남쪽의 평양냉면과 다르다. 남쪽에서 평양냉면을 잘못 알고 또 잘못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평양 옥류관 냉면이 남쪽의 유명한 냉면집의 냉면과 너무나 다른 때깔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다 식초와 겨자 심지어 고추양념장까지 더하면서 먹는 것이 “식초와 겨자를 넣지 말라”는 남쪽 평양냉면 마니아들의 주장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냉면을 더 맛있게 만드는 ‘말’로 여길 뿐이나 어떤 이들은 정말로 심각하게 이를 따져 물어 머쓱해지기도 하였다. 분단이 길어 냉면에 대한 착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기획에 나도 참여하였다. 세계인이 주목을 할 것이라 부담이 컸다.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여 내린 컨셉트는 이랬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과 관련한 음식을 내자.” 남북의 정상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판문점에서 만나는 일이 한민족의 오랜 염원과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대 정주영 회장의 서산목장에서 쇠고기를,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 문어를,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신안에서 민어과 해삼을, 노무현 대통령의 김해 봉하마을에서 쌀을 가져와 만찬을 차리자 하였다.
일단은, 메밀국수를 내려 찬 국물에 말아 먹는 음식은 다 냉면이다. 북한에서는 이를 그냥 국수라고 부르는 일이 더 많다. 이 냉면 중에 평양의 가게들이 내는 냉면이 더 맛있다 하여 냉면에 평양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평양냉면이라는 특별 난 조리법의 냉면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냉면의 조리법은 식재료의 사정에 따라 무수한 변형을 만들어내는데 평양의 냉면집, 그러니까 옥류관의 냉면도 그 수많은 변형 안에 있는 한 냉면일 뿐이다. 음식에는 원본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된장찌개며 김치찌개에 원본의 조리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냉면에도 원본의 조리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양의 냉면가게에서 내는 냉면이 맛있다는 말이 ‘평양냉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었고 분단이 길어지면서 모든 냉면의 원본으로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이 평양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만들어낸 것이다.
메밀국수를 내려 찬 국물에 말아 먹는 음식이 냉면이면, 막국수도 냉면인가? 맞다. 냉면이다. 막국수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지 평양 옥류관의 평양냉면과 그 계통이 같은 음식이다. 강원도의 그 수많은 종류의 막국수가 다 냉면이다. 단지 이름이 다르다고 다른 음식인 듯이 여기면 안 된다. 재료와 조리법으로 음식을 분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나는 먹어보지 못하였다. 먹어본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맛을 구성해보면 이렇다. 일단은, 옥류관은 메밀국수의 전분 함량이 상당히 높다. 예전에는 메밀 함량이 높았는데 점점 줄었다는 말이 있다. 북한의 곡물 사정이 반영된 일일 것이다. 국물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로 낸 듯하고 육 향이 진하다. 여기에 식초와 겨자, 고추양념장을 더한다. 고추양념장은 홍고추를 갈아서 간장과 파 등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옥류관의 냉면을 맛본 몇몇 분은 이렇게 말했다. “막국수와 비슷해요. 단, 단맛은 없어요.”
다양한 냉면이 있는 고장
한반도에서는 밀은 귀하였고 메밀이 흔하였다. 따라서 메밀국수를 흔히 먹었으며, 일제강점기만 하더라고 국수라 하면 으레 메밀국수를 뜻했다. 메밀국수는 금방 퍼진다. 그래서 찬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구한말에 외식산업이 만들어지면서 찬 국물의 메밀국수가 식당에서 팔리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어느 지역의 냉면이 더 맛있다는 말이 돌았다. 북한의 전통문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민속전통>에는 “냉면은 평양과 진주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는 구절이 있다. 한반도 천지에 냉면 가게가 있었고 그 냉면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달랐다. 그 냉면 중에 강원도의 것도 있었다.
1990년대 초에 강원도 막국수를 취재한 경험에 의하면 강원도의 많은 분들이 막국수라고 부르지 않았다. “뫼밀국수”라 하였다. ‘뫼’라 하였는데 ‘메’와 ‘모’의 중간 발음이었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막국수라는 말이 크게 번졌다. 강원도는 산골이고, 메밀을 ‘막’ 갈아서 거칠게 메밀국수를 내려 먹는다는 스토리를 붙이기에 적당한 음식 이름으로 ‘막국수’가 눈에 띄어 이를 퍼뜨린 것이다. 그러면서 막국수는 냉면과 그 계통이 전혀 다른 음식인 듯이 여기게 되었다.
서울의 냉면은 스타일이 있다. 맑은 고기국물에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쓴다. 깔끔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덕에 평양의 냉면도 스타일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면이 검고 메밀 함량이 적으며 진한 고기국물에 고추양념장을 더하기도 한다. 강원도의 냉면인 막국수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강원도 막국수는 다양했으면 한다. 한 스타일을 내밀 것이 아니라 가게마다 다 달라 다양한 냉면 맛을 즐길 수 있는 고장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