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는 송편을 감자로 빚는다. 그래서 감자 송편이라 한다. 감자 떡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도 감자 송편이다. 대충 빚어 뭉툭하고 못나 보이지만 차지고 감친다.
송편은 추석에 먹는 떡으로 알려져 있다. 옛 문헌을 뒤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추석=송편’은 근대화 과정에서 굳어진 풍습인 듯하다. 아래 노랫말은 민요 ‘떡 타령’이다.
“정월 대보름 달떡이요 이월 한식 송병(松餠)이요 삼월 삼진 쑥떡이로다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사월 팔일 느티떡에 오월 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칠월 칠석에 수단이요 팔월 가위 오려 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떡 사오 떡 사오 떡 사려오.”
추석엔 오려 송편
요즘은 떡을 잘 안 먹으니, 알 만한 떡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떡도 있을 것이다. 팔월은 가위라 하였는데, 한가위 즉 추석을 줄여 말한 것이다. 그때 먹는 떡을 오려 송편이라 하였다. 송편이기는 한데 그 앞에 ‘오려’가 붙어 있다. 또, 이월 한식에 송병이라는 떡이 나온다. 이도 송편이다. 멥쌀가루를 익반죽하고 풋콩, 깨, 밤 같은 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빚어서 시루에 솔잎을 켜켜로 깔고 찐 그 떡이다. 그러니까 송편이 반드시 추석에만 먹었던 떡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추석에 먹는다는 오려 송편은 대체 무엇일까.
추석을 흔히 한반도의 추수감사절이라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추석 때면 대부분의 곡식과 과일이 익지 않는다. 근대화 초기에 서양에는 추수 감사절이 있는데 그런 의미의 한민족 명절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추석에다 감사절이란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이다. 추석은 1년 중에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보름이라 조상께 제를 올리는 날로 정한 것이라 보면 된다. 날씨도 선선해지고 농사도 수확만 남아 노동에서 잠시 해방되어 놀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떡 빚을 쌀은 아직 거두지 못했는데 달은 휘영청 높이 돋았다. 무슨 수를 쓰던 떡은 빚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려 쌀이다. 덜 익은 벼를 거두어 만든 쌀이 오려 쌀이고, 그 오려 쌀로 빚은 송편이 오려 송편이다.
오려 쌀은 올벼의 쌀이란 뜻도 있고, 덜 익은 벼의 쌀이란 뜻도 있다. 올벼는 일찍 거둘 수 있는 극조생종의 벼인데, 대부분 찰벼이다. 송편은 멥쌀의 떡이니 이 올벼의 오려 쌀로 빚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추석에는 덜 익은 벼의 쌀인 오려 쌀로 송편을 빚었다는 말이 된다. 덜 익은 나락을 훑어 솥에 쪄서 말린 후 겉겨를 털어낸 쌀을 오려 쌀이라 한다. 시골 장날에 가면 찐쌀이라고 파는 그 쌀이 오려 쌀이다. 그 오려 쌀로 빚은 송편이 오려 송편인 것이다.
강원도엔 오려 쌀도 없어
강원도는 추석이어도 오려 쌀조차 없었다. 하늘 아래 바로 높다란 산인, 논 한 뙈기 없는 땅에서 쌀을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추석인데, 떡은 빚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여 감자를 선택하였다. 감자를 갈아 채반에 내려 전분을 모으고 여기에 감자 비지를 더하여 반죽을 만든 다음에 콩이며 팥, 깨 등을 넣고 송편을 빚었다. 쌀에 비해 반죽이 거칠어 곱게 빚어지지가 않으니 모양이 나지 않고, 그래서 주먹송편이니 머슴송편이니 하였다.
이 감자 송편도 먼먼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겨우 1820년대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순조 갑신·을유(1824~1825) 양년 사이 명천(明川)의 김씨가 북쪽에서 종자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 당장에 감자가 크게 번진 것은 아니었다. 189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강원도와 함경도, 평안도 등의 산간지로 재배 면적을 넓혀나갔다. 일제는 감자 재배에 적극적이었다. 일제가 우리 땅에서 쌀을 공출하면서 대체 식량작물로 감자를 보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자 송편이 강원도 지역의 추석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었다.
삭힌 감자로 빚은 송편
나는 감자 송편을 참 좋아한다. 내 가족들은 밋밋하다며 한두 개 먹고 마나, 나는 한 자리에서 댓 개는 먹는다. 맛있는 감자 송편을 발견했다 하면 한 박스 사다가 냉동실에 채워두고 먹는다. 내 고향 마산에는 감자떡이 없었다. 청년기에 동해안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할머니가 광주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던 감자떡에 필이 딱 꽂혔던 것은 아닌가 싶은데, 그래서인지 집에서 감자떡을 먹을 때에도 동해의 맑은 바다 냄새를 맡는다.
그렇다고 강원도의 모든 감자떡이 맛있는 것은 아니다. 쫀득하면서 약간 서걱서걱한 듯한 식감이 있어야 하고 감자의 아릿한 향이 있어야 한다. 감자의 전분만으로 만든 감자떡은 질기기만 하고 향도 없어 꺼린다. 더더욱 맛있으려면, 약간 감자 삭은 냄새가 나야 한다. 이런 기호를 갖게 된 것은 작가 황석영 때문이다.
황석영이 북한에 갔을 때 김일성과 개인적인 자리를 여러 번 가졌었다. 이때의 일을 황석영은 글로 남겼는데, 그 자리에서 김일성은 감자 이야기를 꺼낸다. 감자는 언 것으로 음식을 해야 한다면서 빨치산 시절 민가에서 얻어먹던 그 언 감자 음식을 추억하였다. 김일성에게 언 감자는 혁명을 상징하는 음식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중수교 이후 서울에 연변 출신 동포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생겼다. 그 식당의 주요 음식 중 하나가 감자만두이다. 감자를 갈아 그것을 피로 하여 빚은 만두이다. 그 속에는 채소도 들고 돼지고기도 들었다. 그 감자만두 중에 연변 동포들이 맛있다 여기는 것은 언 감자로 빚은 만두이다. 언 감자로 빚어 거무스레하다. 언 감자 음식은 강원도에도 있었다. 언 감자로 떡으로 빚었으며 그 안에 팥소를 넣어 언감자 송편이라 하였다. 연변의 언감자만두나 강원도의 언감자 송편이나 같은 음식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감자는 흔히 썩혀야 맛있다고 말한다. 언 감자란 곧 썩은 감자와 같다. 이런 감자를 갈아서 음식을 하면 거무스레한 색에 아릿하고 큼큼한 향이 난다. 이 묘한 향에 한번 중독이 되면 헤어나지 못한다. 언 감자가 없어도 이 향을 보탤 수 있다. 감자를 갈아서 삭히면 된다. 상온에 두면 갈아놓은 감자는 서서히 갈변을 하면서 아릿하고 큼큼한 향이 진해진다. 오래 삭힐수록 색은 짙어지고 향은 올라간다.
요즘 강원도 감자 송편은 대부분 하얗다. 바로 갈아서 빚기 때문이다. 강원도 감자 송편 할머니들께 여쭈니 삭힌 감자로 하면 관광객이 맛없다 하여 그렇게 빚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은 감자 송편에서 삭힌 감자의 향이 날 때가 있다. 아마 할머니가 잠시 딴 일을 하다가 갈아놓은 감자가 삭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강원도 감자 송편 할머니들이 더 바빴으면 한다. 감자 갈아놓은 것을 자주 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