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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2
111호
Food
황교익의 강원의 맛 이야기 ‘붉은 대게’
VIEW.9485
황교익 강원도 홍보대사이자 유명 맛칼럼니스트
사진 이제욱 본지 객원 작가, 박상운

대게 하면 영덕과 울진이다. 붉은 대게 하면?

그 앞에 지역명을 붙이기가 애매하다. 동해 전역에서 나기 때문이다. 동해 포구마다 붉은 대게를 볼 수가 있다. 특히 겨울에 들면 동해에서 붉은 대게 한 접시는 먹고 와야 한다. 이때가 맛있다. 근래에 붉은 대게 앞에 속초가 붙기 시작하였다. 속초에 붉은 대게 어선이 많고 가공업도 활발하기 때문이다.
붉은 대게는 원래 이름이 홍게이다.
붉은 대게도 의미 있는 개명 작업이다.대게에 밀려 대접을 받지 못하자 이름을 바꾸었다. 대게만큼 맛있으니 대게로 취급해달하는 어부의 '희망'이 붙어 있다.



깊은 동해의 맛이 있다
대게는 수심 200~800미터의 깊은 바다에 산다. 대게를 먹을 때면 동해의 신비로운 깊은 바다를 말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맛있다. 붉은 대게는 더 깊은 바다에서 산다. 수심 400∼2,300미터.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심해이 다. 빛도 들어오지 않을 깊은 바다인데 붉은 대게의 몸 빛깔이 화사하게 붉다. 사진으로 보는 심해 생물들이 대체로 이렇게 화려한 몸을 가지고 있다. 사는 공간이 검게 어두우니 제 몸이라도 화려하게 빛을 내게끔 진화해온 것인가 싶어 붉은 대게를 볼 때마다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니 내 입에는 붉은 대게가 더 맛있다. 대게보다 더 신비로운 맛을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바다의 수압을 견뎌내어야 해서일까, 대체로 대게보다는 몸이 작다. 다리도 가늘다. 사실 붉은 대게가 대게에 밀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몸집이 작으니 먹을 살이 적다. 그러니 가격이 싸다. 나는 이 ‘싸 다’는 것이 최대 미덕이라고 여긴다. 대게는 정말 비싸다. 한 가족이 가서 배불리 먹자면 허리가 휜다. 붉은 대게는 그 정도는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우리 서민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준다. 보통은 싸니까 맛이 덜할 것이라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대게 보다 맛있는 붉은 대게를 많이 먹어보았다. 대게든 붉은 대게 든 고르기 나름이다. 작아도 단단한 것이 맛있다. 몸의 부피에 비해 무게가 나가는 붉은 대게를 고르는 것이 요령이다. 장의 향도 대게보다 더 강렬하다.



붉은 대게는 가공을 많이 한다.
다릿살을 발라 말끔하게 포장하여 판매한다. 게맛살의 딱 그 모양이다. 시중에 팔리는 게맛살은 어묵이다. 게살이 일부 들어 있는 제품이 있기는 한데 생선살로 게 다릿살 맛을 낸 것이다. 다릿살 은 게맛살에 익숙해져 있는 입에는 외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탄력도가 떨어지고 게 향이 덜한 듯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진짜이다. 깊이 음미하면 어묵의 게맛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다. 특히 바닷내가 있다. 깊은 동해의 맛이다. 중국집에서 내는 게살스프의 원료가 이 붉은 대게 다릿 살이다. 조금 고급한 레스토랑에서는 게맛살 대신에 이 붉은 대게 다릿살을 쓴다. 속초에 붉은 대게 가공공장들이 있으며 일본과 대만, 홍콩 등에 수출한다.



장으로 만든 가공품도 있다. 대게나 붉은 대게는 이 장 맛으로 먹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장이 아예 없거나 맛이 영 엉망인 경우가 허다하여 복불복 게임이 벌어진다. 가공품은 다르다. 맛이 일 정하다. 특히 비린내가 적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고 가끔 밥을 비벼먹으면 마치 동해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라면을 끓일 때에 조금 넣으면, 여기에 다릿살도 한두 토막 넣으면, 동해 바다가 따로 없다.



속초를 추억하게 하는 가공품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의지와 정책은 많으나 그 효과는 실로 미미하다. 속초 같은 바닷가 도시는 그 경제 기반은 관광에 기대고 있다. 그런 데, 외지인이 관광 와서 먹는 것이 대부분 1차 산물이다. 2차 가공품을 먹고 또 사가야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속초가 붉은 대게 가공품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당장에 소비자가 맛보고 또 사갈 수 있는 가공품이 붉은 대게살(다릿살), 붉은 대게장, 붉은 대게 꼬치, 붉은 대게 고로케 등이다. 속초 관광을 하다 보면 이들 제품을 만날 것이다. 속초의 어부들이 잡고 속 초의 회사들이 만든 제품들이다. 이 작은 것 하나하나에 애정을 보여주는 일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 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 작은 것 하나 사서 집에 돌아와, 게살이며 장을 냉장에서 넣어두었다 가 조금씩 꺼내어 속초를 추억하는 음식을 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맛의 8할은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