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 조개의 또 다른 이름 ‘자잘하고 복스러운’ 째복
여름의 동해는 아름답다. 따가운 햇볕과 습기 가득한 공기로 인하여 땀이 질질 나고 숨을 할딱이는 계절인 탓에 시원한 동해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적어도 사흘은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그 어느 바다이든 좋다. 철모를 때는 큰 해수욕장이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작을수록 편안하다. 눈앞에 바다로 곧바로 떨어지는 절벽 끝이 보이면 더없이 좋다.
절벽을 양끝으로 하고 그 안에 고운 모래로 만을 이루고 있는, 조그맣게 가두어진 해수욕장이 의외로 많다. 파도도 잔잔하다.
몸을 담그면, 일단은 누워야 한다. 하얀 뭉게구름 덕에 더 푸른 하늘을 푸른 바다에 누워 온 몸으로 맞는다. 속으로 조용히 이렇게 되뇐다.
“그래, 세상의 중심은 나야. 이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어.”
여름의 동해 바다는 위로의 바다이다.
채집의 즐거움
위로만 얻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을 위한 놀이가 있어야 한다.
이제, 바다에 뉘었던 몸을 세운다. 물의 깊이는 목까지 오는 것이 딱 좋다. 명치 정도도 괜찮다. 발로 모래 속을 슬슬 더듬는다.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그러다 탁 하고 걸리는 게 있다. 조그만 돌멩이처럼 느껴지나 돌멩이가 거의 없다. 10에 9는 조개이다.
몸을 뒤집어 잠수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수경 쓰고 재미 삼아 하여도 된다. 발가락의 감각과 힘을 믿고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재미나다. 발끝으로 모래를 살살 달래어 조개를 발가락 사이에 끼운다. 빠지지 않게 발가락에 온 힘을 준다. 그리고 발을 살짝 올린다. 손이 닿는 선까지만 올리면 된다. 발이 손에게 조개를 넘긴다.
“이야, 조개다.” 채집의 즐거움은 주변에 알려야 더 커진다.
동해에는 여러 조개가 산다. 해수욕장의 얕은 바다에서 사는 조개는 민들 조개이다. 작은 조개이다. 납작하고 조가비가 제법 두꺼우며 겉이 매끈하다. 신통한 것이, 이 민들 조개는 조가비 색깔과 문양이 제각각이다. 다양한 색깔로 온갖 기하학적 무늬를 조가비에 새기고 있다. 개체마다 이처럼 뚜렷한 개성을 보이는 조개는 드물다. 모래 위에 모아놓으면 꽃 같다. 꽃 조개.
시인 백석 선생(1912∼1996)이 동해를 참 좋아하였다. 1938년 6월 7일자 동아일보에 멋진 글을 남겨놓았다.
“동해여! 오늘 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중략) 이러케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를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헤를 빼어 물고 물속 십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래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비 부실거리는 저녁엔 물 우에 떠서 애원성이나 불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인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나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러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려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굼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라고 한 문장이 눈에 든다. 명주조개는 지금도 명주조개라고 한다. 꽃조개와 강에지조개가 낯설다. 백석 선생은 꽃조개는 어린아이, 명주조개는 청년, 강에지조개는 늙은이에 비유하였다. 크기로 따져보면, 꽃조개는 민들조개, 명주조개는 명주조개, 강에지조개는 대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해의 대합을 개조개라고도 부르는데, ‘강에지’는 강아지, 즉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백석 선생 눈에도 민들조개가 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꽃같이 예쁜 민들조개를 동해안 사람들은 비단조개 또는 째복이라고 부른다. 사투리이다. 비단조개가 예쁜 이름이기는 하나 이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달고 있는 다른 조개가 있으므로 되도록 쓰지 않는 게 좋다. 째복도 동해안에서 널리 쓰이는데, 맛도 멋도 없는 명칭으로 보이기도 한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살피니, “째째하고 보잘것없어서 째복”이라는 말이 번져 있다. 동해안의 조개 중에 작은 것은 맞다. 조갯살도 작으니 맛도 여느 조개에 비해 덜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째째하고 보잘것이 없다니, 이건 아니다. 학술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어원의 경우 언중이 느낌대로 ‘어원 스토리’를 만들면 된다. 째복의 어원에 대해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다.
“자잘하고 복스러운 조개여서 째복이라 부른다.”
먹는 즐거움
채집은 먹는 즐거움으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물론 방생도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년에 또 보자, 하고 바다에 던져주는 것이다. 나는 먹는다. 조심해야 할 것이 해감을 잘해야 한다. 안에 모래를 머금고 있어 적어도 하룻밤은 맑은 물에 담가두어야 한다. 끓일 때는 입이 딱 하고 벌어지는 그 순간까지만 불기운을 주어야 한다. 더 지나면 질겨진다.
민들조개의 진미는 살보다 국물에 있다. 맑고 여리다. 감칠맛이 얇다. 동해를 닮았다. 그래서 동해안에서는 깔끔한 순두부찌개를 끓일 때에 민들조개를 흔히 쓴다. 맑은 국물에는 파만 있으면 된다. 안날 잡아두었던 민들조개로 소박한 아침상을 차릴 수가 있다.
라면? 괜찮다. 물이 파르르 끓을 때에 민들조개 몇 알을 넣으면 국물이 그야말로 예술로 변한다.
좀더 호사스럽게 즐기자면 아무래도 식당을 찾아야 하는데, 그리 많지가 않다. 크고 맛있는 조개가 많으니 뒤로 밀린 것이다. 드물게 전문점이 있다. 양양에 있다. 이 식당에서는 째복이라고 부른다. 기본으로 탕이 있고, 고추장을 넣은 국도 있다. 째복을 넣은 장칼국수도 유명하다.
물회도 있다. 동해안에서는 가자미와 오징어 물회를 흔히 먹는데, 새로운 재료로 째복을 선택한 것이다. 최근에 물회가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는데, 그 변주 중의 하나이다. 조개는 차갑게 먹으면 식감이 더 잘 산다. 바닷가에서는 조갯국을 차게 식혀 두었다가 해장으로 훌훌 마시기도 하는데 째복 물회를 그 계통의 음식으로 보아도 된다.
백석 선생이 요즘에 다시 동해에 오셔서 째복 물회 드신다면 혹 이런 글 한 줄 남기시지 않을까 싶다.
“잔잔한 물밑 보드러운 세모래 속에 누워 있던 나를 쑤시려 오던 그 어여쁜 처녀들이 아름다운 동해에서 아적도 어여삐 잘 살고 있나 봅네.”
촬영협조
수산항 물회. 033-671-0750. 양양군 손양면 선사유적로 185.